김환기(金煥基, 1913~1974)와 유영국(劉永國, 1916~2002), 그리고 이규상(李揆祥, 1918~1967)의 이름이 한국근현대미술에서 가지는 무게는 여간 무겁지 않다. 그들이 소위 추상미술 1세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추상미술을 절대적인 위치에 놓고 한국근현대미술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게 되면 그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거기에다 이중섭(李仲燮, 1916~1958),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이 더해지면 1950년대 미술의 한 자락이 분명한 윤곽을 드러내게 되고, 다시 백영수(白永洙, 1922~)가 더해지면 서양화가 단체인 신사실파의 전모가 드러난다. 바로 이 신사실파 창립 60주년을 기념한 전시회가 지난해 환기미술관(2007,11.9~2008.1.3)에서 열렸다.

  1947년에 결성된 신사실파는 그 결성에서부터 동시대의 여타 미술가들과는 차이를 보였다. 창립회원인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은 이미 식민지시대에 일본에서 추상미술을 접하여 그 수용을 시도한 화가들이었다. 뿐만 아니다. 그들은 일본에 유학할 당시 일본인 미술가들이 1937년 결성한 자유미술가협회(自由美術家協會) 전시에 참가한 바 있다. 김환기는 일본대학 미술과를 졸업한 다음 재야단체인 니카카이(二科會)1914년 결성된 재야 미술단체를 거쳐 자유미술가협회 회우로서 이 단체의 제1회 전시회부터 참여하였고, 문화학원(文化學院) 출신인 유영국과 문학수(文學洙, 본명 문경덕, 1916~1988)도 1회전에 참여한 이래 1939년부터는 회우가 되었다. 1953년 신사실파 회원으로 참가한 이중섭 역시 문화학원 출신으로 자유미술가협회 전시에 참가한 바 있다. 말하자면, 이들 신사실파는 해방 전 자유미술가협회 조선지부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자유미술가협회는 1937년 2월 하세가와 사부로오(長谷川三郞, 1906~1957), 하마구치 요오조오(浜口陽三, 1909~2000), 무라이 마사나리(村井誠成), 쓰다 세이슈우(津田淸周), 야마구치 카오루(山口薰, 1907~1968) 등이 순수한 예술의지에 뜻을 둔 미술가의 대동단결에 의해, 각자 예술의 자유로운 발전과 시대의 예술정신 진흥을 기한다는 취지 아래 결성한 추상미술단체였다. 이 단체의 중심적 화가들인 하세가와 사부로, 무라이 마사나리, 야마구치 카오루는 원래 프랑스에서 야수파나 입체파, 추상미술 등을 수용하고 귀국한 다음 1934년에 개최한 신시대양화전에서 호흡을 맞춘 사이였다. 이미 일본에서는 1911년에 입체파가 소개되고 1914년 결성된 이과회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속속 새로운 사조들이 수용되어 미래파, 구성주의 등을 수용한 화가들이 활동을 전개해갔다. 1920년대의 삼과조형미술협회(三科造形美術協會), 프롤레타리아미술을 거쳐 1930년대 중반 이후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의 소개, 수용이 활발해진 것도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한 이 시기는 일본적 양화의 건설이 강조되던 시기였던 만큼 추상미술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화가들도 일본적인 회화표현을 찾아 노력하였다. 하지만, 침략전쟁이 격화됨에 따라 자유미술가협회도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단체의 이름 속에 있는 ‘자유’라는 단어가 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1940년 미술창작가협회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바로 이 단체의 전람회에 김환기와 유영국, 문학수가 1회부터 참가하였다. 특히 김환기는 처음부터 회우였고 1939년에는 조선지부장이 되었다. 이중섭은 2회부터, 그리고 이규상은 3회부터 참여하였다. 이들 외에도 주현(周現)과 조우식(趙宇植), 안기풍(案基豊), 송혜수(宋惠秀) 등이 참여하였으며, 박생광(朴生光)도 2회전에 참여한 바 있다. 1942년에 탈퇴한 김환기와 유영국을 제외한 일부 조선인 화가들의 활동은 1944년까지 이어졌다. 

  자유미술가협회에 참가한 일본인 화가들의 작품경향은 대부분 순수추상 혹은 반추상 경향이 주축을 이루었던 만큼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을 수용한 무라이 마사나리, 색면에 의한 화면분할과 순수추상의 전형을 보였던 하세가와 사부로오, 형태를 데포르메(deformer)(1)시키면서도 일본적 회화표현을 부분적으로 도입한 야마구치 카오루의 작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들과 함께 조선인 화가들의 작품 또한 추상, 혹은 반추상의 경향을 보였다. 이과회를 거친 김환기는 <론도>(1938), <려(麗)>(1939), <섬이야기>(1940)처럼 화면 일부에 대상의 형태를 남기면서도 기하학적인 구성원리에 의한 색면추상을 수용하였고, 문학수는 초현실주의를 수용하여 <비행기가 있는 풍경>(1939)이나 <춘향단죄지도(春香斷罪之圖)>(1940)처럼 조선적 모티프(motif)(2)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에 비해 이중섭은 이미 그 무렵부터 이후 작품의 중심 모티프인 소를 등장시켰으며, 유영국 역시 소위 합판부조로 명명된 작품들을 통해 구성주의나 기하학적 추상주의의 영향을 보여주었다. 이들이 자유미술가협회에 참가하게 된 것은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츠다 세이슈나 무라야마 마사나리를 통한 것으로 보인다.

  1947년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에 의한 신사실파 결성은 사실 자유미술가협회 조선지부의 부분적 재건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일제의 침략전쟁이 패전으로 마무리되고, 해방공간의 혼란 속에서 자유미술가협회 조선지부의 일부 화가들이 겨우 재결합의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역량이나 비중이 크긴 하였지만 이미 식민지시대 말기부터 평양을 활동근거지로 하여 교직에 있던 문학수는 여기에 참가하지 못하였던 만큼 남한에 정착한 화가들 가운데 일부가 해방 전의 모임을 재건한 것이 바로 신사실파였다. 그뿐만 아니다. 신사실파의 결성은 해방 이후 1948년 남북의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소위 해방공간에서 그들의 활동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해방공간에서는 좌우익 정치세력의 대립이 있었고, 미술계도 마찬가지로 조선미술동맹과 조선미술협회 대립이 있었다. 따라서 신사실파 단체 결성이 비록 예술지상주의적 조형이념을 표방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당시 그들의 입지를 생각하면  좌우 이념대립의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1949년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열린 신사실파 2회전에는 천진한 시정을 담은 장욱진이 가세하면서 단체의 분위기는 한층 다양해졌다. 일본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해방 후 짧은 시기 동안 국립박물관에 근무한 바 있는 화가로 2회 신사실파전에 <독>, <까치>, <마을> 등의 작품을 출품하였다. 소품 속에 담긴 정겨운 모티프들은 때로 한 모금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이내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사람들은 김환기의 <피난열차>(1950)처럼 열차에 시루 속 콩나물처럼 실린 채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 <판자집>(1951)에서처럼 축대를 쌓은 개울가 판자집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했다. 거기에는 신사실파 화가 그들의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신사실파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시절에도 피난생활을 보내던 부산에서 제3회전을 열었다. 1953년 5월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이 전시에는 이규상이 빠지고, 이중섭과 백영수가 참가하여 예술을 향한 그들의 열정이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건재한 정도가 아니라, 김환기의 표현대로 예술을 파고드는 악착같음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식민지시대 일본을 경유한 추상미술, 혹은 반추상미술이라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신사실파가 중요한 것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시기에 추상미술의 싹을 키워 간 단체였다는 사실에만 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혼란하고 피폐한 시기에 예술을 통해 정신을 순화하고 안식을 주려 했다는 점에 있다. 예술지상주의의 한계가 분명함에도 그들의 활동이 의미있고 소중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사실파의 활동은 1957년 모던아트협회로 이어지고, 1950년대 후반 앵포르멜(informel)(3)이나 추상표현주의를 수용한 소위 추상미술 2세대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즉,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의 앵포르멜이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중심으로 전개된 추상미술의 흐름 속에서 그 경향을 수용하는 한편, 경직된 국전(國展)대한민국 미술 전람회를 줄여 이르는 말의 아카데미즘과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내면세계 표출에 주력하였던 ‘격렬한 추상미술’과는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신사실파 회원이었던 화가들이 예술적 성과에 과도하게 얽매이고, 모더니즘이나 추상미술을 절대화하는 한국근현대미술 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신사실파에 대한 미술사적인 평가는 온전해질 수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신사실파를 둘러싼 이같은 사정을 고려해보면 <신사실파 60주년기념전>은 매우 의미있는 전시였다. 사실 국공립미술관의 대형전시가 상업주의로 흘러 유명 서양미술가의 작품을 안일하게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전시의 규모는 작았지만 분명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전시는 본전시와 자료전시로 이루어졌다. 본전시의 경우 적은 양이기는 했지만, 신사실파 시절과 그 후의 작품을 위주로 구성하여 간결한 인상이 두드러졌고, 당시의 문헌이나 회고의 내용을 설명문에 곁들여 보는 이의 이해를 도왔다. 본전시와 함께 당시의 전시홍보 전단과 방명록 등 관련자료의 전시와 학술행사를 통해 미술사적인 조명을 시도한 일은 충분히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다만, 전시를 통해 신사실파의 활동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전시기간 중에 카탈로그가 간행되지 못한 점 등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