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부터 11월 18일까지 인천시립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김보섭의 화교이야기>전이 열렸다. 이 전시는 지난 7월, <도시기행-상하이, 요코하마 그리고 인천>으로 재개관한 인천시립박물관이 ‘화교-세계화의 주역’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에 곁들여 개최한 특별전이다. 요즘 인천은 인천의 역사, 그중에서도 개항기를 깊이 들여다보며 정체성을 찾고 있다. 개항 이듬해인 1884년에 중국인 거류 특별지구인 청국지계(淸國地界)가 설정됐으니 중국인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도 120년이 넘는다. 인천시립박물관이 인천에 있는 중국인 거주 지역인 청관에 관심을 갖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난 4월 <바다사진관>전을 통해 해질녘 인천의 후미진 부두에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김보섭은 꿋꿋한 사진가이다. 마침 그는 이 작업 이전부터 오랫동안 청관을 드나들었고, 화교들을 만나 친분을 쌓았으며 사진을 찍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전시와 작가를 소개한 둥근 간이 벽면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 비친 사진 슬라이드를 스쳐보고 왼쪽으로 몸을 틀면 단정한 흑백 프린트가 눈에 들어온다. 사진은 먼저 1980~90년대 청관의 외관을 보여준다. 어떤 것은 길에서 바라본 건물의 모습이고 어떤 것은 한 건물에서 건너다본 다른 건물의 모습이다. 이 집들은 낯설다. 이 낯섦은 건물의 노후 그 자체에서 연유하기도 하고, (현대와 구분한다는 뜻에서)근대적인 건축 양식에서 연유하기도 한다. 이 창, 이 문, 이 지붕들이 중국식인가 하고 생각하게 한다. 이 건물들을 지나면 여기서 사는 사람들, 주로 산둥 출신인 화교 1세대와 그의 자손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의식적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포즈를 취하다. 카메라는 그들 얼굴의 세부가 잘 드러나게 찍는다. 이들과 마주하는 것도 반가운 일이지만 이 사람들이 집 안에 어떤 세간을 들여 놓고 어떻게 사는지가 더 궁금하고, 카메라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장례식 때 쓰는 인형과 새장 안의 새 등을 지나면 산둥에 사는 중국인들의 사진이 있다. 작가는 청관에 사는 화교 1세대 유연서 씨와 동행해서 보름간 그의 고향에 다녀왔다고 한다. 이들은 바로 유연서 씨의 친척과 이웃들이다. 인천 사는 화교들의 고향 사람을 담은 사진들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지만, 비중이 높아 이야기의 초점을 흐리는 측면도 있다.

입구 쪽으로 되돌아 나오는 마지막 공간에 걸린 사진은 영화 <북경반점>의 촬영장소로 사용된 생춘당한의원과 한의사 강영재 그리고 약재와 의료 기구들이다. 사진을 찍은 장소가 청관이고 주요 인물이 화교라는 점에서는 앞서 본 사진과 같지만, 접근 방법은 사뭇 다르다. 인물은 과감한 클로즈업으로 담았고, 사물들은 마치 복제라도 한 듯 찍어냈다.

이번 전시는 1995년과 1996년에 <청관-인천 차이나타운>전, 그리고 2000년에 <한의사 강영재-내가 버린 나, 내가 찾은 나>전 사진들을 묶은 것이다. 다시 구성하는 과정에서 <청관>전의 사진들이 많이 빠진 점은 아쉽다. 그런데 <한의사 강영재>전의 사진들은 맥락이 완전히 바뀌었다. 원래 <한의사 강영재>는 명성이 자자한 한의사였으나 기(氣)의 세계에 몰두하게 된 후, 보통 사람들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돼버린 강영재의 모습을-아무렇게나 어질러져 있는 집안 구석구석을, 두텁게 쌓인 먼지를 털고 꺼낸 책이나 사진 같은 수집품을, 한약재와 의료 기구를 마치 유물을 다루듯이 사진에 담음으로써-건조하지만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였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사진 촬영의 기회가 됐던 영화 촬영이라는 사건을 주요하게 드러내고, 다른 사진들을 걸러낸 후 한의학 관련 사진만 남김으로써 ‘중국 의학’만을 부각시켰다. 이렇게 중국에 대한 대상화를 조장하고 영화 촬영지로서의 청관만을 부각시키면서 <한의사 강영재>는 가려지고 말았다.

같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시기마다 다르게 읽히게 마련이다. 이 사진들이 처음 전시됐던 10년 전만 하더라도 청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만큼 쇠락했었고 한정식은 사진집 <청관>에 실은 글을 통해 김보섭의 사진을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오마쥬’라고 해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저기에 중국 음식점과 중국 물품을 파는 상점이 새로 들어서고, 주말 저녁이면 온통 붉은빛으로 환한 거리가 자장면을 먹으러 온 차들로 붐빈다. 2006년 말에 다시 보는 <청관>은 커다란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에 대한 암시이다. 김보섭의 사진이 말하고 있는 것은 “더 많이 놀러 오세요.”가 아니라 여기에서 지금도 화교들이 “살아가고 있어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