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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근대, 우리의 근대, 그리고 공통의 근대
통권 : 52 / 년월 : 2015년 7,8월 / 조회수 : 2360
<다시 만남 : 한일 근대 미술가들의 눈-“조선”에서 그리다(日韓近代美術家のまなざし-『朝鮮』で描く)>, 가나가와현립근대미술관, 2015년 4월 4일~5월 8일

일본의 근대, 우리의 근대, 그리고 공통의 근대

전시 <다시 만남 : 한일 근대 미술가들의 눈-“조선에서 그리다(日韓近代美術家のまなざし-朝鮮)>, 가나가와현립근대미술관, 201544~58

 

박석태

근대라는 시대는 어쩌면 우리에게 족쇄와 같은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알다시피 잘못 끼워진 첫 단추처럼 일본에 의해 이식된 근대라는 개념은 이후 우리 역사에 큰 콤플렉스로 작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는 비단 예술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은 근대의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적 각성과 경제적 자유라는 두 축으로부터 출발한 서구의 근대와는 달리 동아시아의 근대는 모순과 왜곡으로 가득 찬 기형의 모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맹목적으로 서구를 추종한 일본은 군국주의로 무장하게 되고 식민지의 피지배 민족에게 굴절된 근대화를 강요하게 된다. 탈 아시아를 외치던 그들의 오만함의 근원에는 서구 못지않은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자신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고, 여타의 아시아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명국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만남 : 한일 근대 미술가들의 눈-“조선에서 그리다> 전은 그렇게 굴절된 근대라는 문제의식을 당시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 화가들의 눈에 비친 식민지 조선의 재현 방식, 그룹활동과 사제관계 등을 통해 20세기 전반의 동북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제시하고 있다.

 

햇살이 따가웠던 5월의 셋째 날, 전시가 열리는 하야마葉山의 가나가와현립미술관神奈川県立近代美術館에 당도한 시각은 오전 940분경. 소박하지만 규모 있어 보이는 미술관의 회색 건물이 보였다. 수정 같은 바다물빛에 눈이 시리도록 눈부신 오월의 햇살이 부서져 퍼지고 있었다. 휴일 오전, 바닷가에 연한 이 아름다운 미술관은 한산해 보이기만 했다. 도로 옆 가로등에는 전시를 알리는 배너가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때때로 운동복을 입은 시민들이 잰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깨끗하게 정비된 주차장에는 드문드문 승용차가 서 있을 뿐, 오가는 관람객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가나가와현립미술관을 가기 위해서는 도쿄에서 요코하마를 거쳐 JR(일본 국철) 쇼난신주쿠湘南新宿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즈시逗子라는 작은 역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더 들어가야 한다. 현립이라는 말은 우리로 치면 도립 정도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얼핏 떠올려도 우리나라의 도립미술관 규모에서 인상 깊었던 전시라면 안산에 있는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렸던 몇몇 기획전 정도. 그 중 2008년의 <언니가 돌아왔다>전은 단연 기억에 남는 전시로, 우리나라 페미니즘미술의 변곡점을 찍은 전시였다. 또 광주시립미술관에서 2년마다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등을 제외하면 오랜 기획과 면밀한 준비를 거쳐 내실 있는 전시를 만들어내는 데는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는 듯하다. 지역 주민들의 눈높이를 만족시켜줄 만한 탄탄한 기획이 돋보이는 전시가 적다는 점은 정말 아쉬울 수밖에 없다. 사실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결국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와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를 외면하고 서울로, 서울로 향하는 현상은 다시 지역의 문화를 고사시켜 시간이 갈수록 소위 중앙과 지역의 문화적 격차가 벌어지는 불균형은 이제 그만 마침표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 하긴 이 같은 논의는 정책 입안자들의 획기적인 인식 개선, 지역 문화계의 질적 향상, 그리고 그에 따른 시민들의 실질적 지지가 있어야 하는 일이니 간단치는 않다. 그렇기는 해도 적어도 우리가 툭하면 예를 들기 좋아하는 OECD 국가 수준 정도에 맞추려면 전반적인 불균형 해소가 절실해 보인다. 그래야 나도, 너도 모두 행복해지지 않을지. 또 그것이 문화의 진정한 힘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이 전시를 통해 무엇보다 나는 그 동안 늘 가져왔던 묵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다. 첫째로는 서구, 특히 유럽의 미술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한 일본의 미술과 그런 일본의 미술을 소위 근대적 도구로 강제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미술이 어느 정도의 친연성을 갖느냐의 문제였다. 둘째로는 소위 서양화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서 좋건 싫건 그것을 소개하고 뿌리 내리게 한 일본인 화가들의 시선이었다. 그들이 조선이라는 외지(外地)를 어떻게 재현했는가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그 속에 담긴 식민주의적 시선과 근대적 소요자로서의 시선, 그리고 소재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한 여행자의 시선 등 많은 관점이 섞여 있을 터이고, 그것이 어떠한 선택과 재현 과정을 거치는지는 나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셋째로는 이 땅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미술가와 우리 미술가들과의 사숙관계, 혹은 계보의 파악 문제였다. 굴절된 서양화의 도입 과정은 차치하더라도 초기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인 화가와 조선인 화가 간의 제대로 된 사제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채 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점은 우리 미술의 연원을 밝히는 데 대단히 중요한 문제지만, 연구 성과는 너무나 일천한 것이 현실이다.

 

이 전시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미술 연구자들이 2011년부터 전시 직전까지 공동으로 기획하고 연구 성과를 공유한 결과로 열렸다는 점에서 뜻 깊다고 할 수 있다. 전시는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조선과의 만남, 근대 조선의 풍경, 근대인의 일상, 그룹 활동과 사제관계, 에필로그가 그것이다.

조선과의 만남장에서는 조선을 바라보는 일본인 미술가들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국적 정취를 자극하는 조선의 풍속을 담은 그림과 공예작품이 그것인데, 소위 오리엔탈리즘이 여전히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스기 호안小杉放庵<정선도井泉図(우물))>에서 조선 여인들을 마치 서양회화의 진선미 우의화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거나, 아라이 다츠오(荒井龍男)<지게에 기대는 파란 머리 남자의 초상花生けに蒼頭肖像>에서 보이는 흥미 위주의 조선 풍속 재현 방식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철저하게 일본의 채색화 방식으로 그려낸 마츠다 레이코松田黎光<검무剣舞><승무僧舞>에서는 조선의 옷을 입은 일본의 여성이 오버랩된다. 그러나 이 모든 예들이 부정적인 속성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브라이슨Bill Bryson이 지적했듯 오리엔탈리즘에는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요소가 혼재된 양의성이 존재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들의 손으로 재현된 우리의 모습이 불편해 보이지만, 그들에게 조선이란 사랑하고 교화해야 하는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전시에서는 일본인 화가들에 의해 재현된 조선의 기생 이미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기생을 단순한 대상으로 파악하고 조형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나카자와 히로미츠中澤弘光<조선 가기朝鮮歌妓>라든지 전형적인 일본화의 몽롱체로 재현한 기생의 모습을 담고 있는 츠치다 바쿠센土田麦僊<평상平牀>은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특히 <조선 가기> 등에서 보이는 인상파적 색채와 조형의지는 근대 조선화단의 그것과 상당 부분 맥을 같이하고 있어 앞으로의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근대조선의 풍경은 풍경화가 대부분으로 정책적으로 조선에 이주했던 일본인 화가와 단순한 여행 목적으로 조선을 방문한 화가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일본에서 조선을 방문했던 화가들은 경성의 왕궁 건축, 성문 등의 명소와 옛 사적에 눈을 뺏겼지만, 아예 조선으로 이주하여 생활기반을 둔 일본인 미술가들의 눈은 달랐다. 그들은 인왕산을 비롯한 조선의 전통적인 화제(畫題)를 다루거나 평범한 가정집의 풍경에 조형적인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전자의 성격을 갖고 있는 작품이 요시다 히로시吉田博<대동문大同門>인데, 우키요에浮世繪의 기법으로 평양 대동문을 그려내고 있다. 일본의 다색목판화로 재현된 우리의 산하가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관찰자의 시선이 개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해 다카기 하이스이高木背水<풍경風景>은 마치 파리 외곽의 한적한 시골풍경을 재현해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이 그림의 전경에 등장하는 한복을 입은 여인과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무국적의 공간으로 보일 공산이 큰데, 이러한 태도는 사실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재현하는 방식과 맥이 닿아 있다. 여기에 덧붙여 조선은 늘 문명의 혜택에서 비껴간 원시의 처녀지로 묘사되거나 과거의 영광이 가뭇없이 사라진 폐허로 그려지고는 하는데, 후지타 츠구하루藤田嗣治<조선풍경朝鮮風景>과 가나야마 헤이조金山平三<>, 그리고 고미 세이키치五味清吉<조선 개성 북문朝鮮開城北門>에서 드러나는 시선이 그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이 극대화된 형태로 제시되는 근대인의 일상부분은 더욱 우리의 흥미를 끈다. 앞서 언급한 원시적 처녀지로서의 조선의 모습을 재현한 안토 요시시게安藤義茂<자라 파는 여자泥亀売りの>, 모리 슈메이森守明<보리 찧기搗麦>와 마에다 세이손前田靑邨<조선오제 물 긷기 朝鮮五題 水汲> 등은 일본인이 바라본, 조선의 풍속을 소재주의적 차원에서 다룬 작품이다. 이들 그림에 등장하는 조선 여인들의 모습은 관찰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이색취미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일본인 미술가들의 태도와는 달리 우리의 미술가들은 신문물과 모더니즘에 경도된 조선인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흥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마동의 <남자>, 이인성의 <노란 옷 입은 여인>, 이유태의 <탐구> 등에 등장하는 소위 모던뽀이’, ‘모던껄은 일본인 미술가들이 천착하고 있는 이색적인 전통의 관찰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조선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간취되는 근대적 지식인의 자아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 미술가들이 서구의 양식을 빌어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들의 방식과 시선에 근거하여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타자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그룹활동과 사제관계장은 이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지만, 일천한 연구 성과를 반영하듯 새로운 내용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제도적인 미술교육 기관이 전무했던 조선에서 미술가로 입신하기 위해서는 독학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상하든지, 도쿄미술학교 등 일본에 있는 미술대학에 유학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당시 조선에서 일본인 미술가와 조선인 미술가가 어떠한 사제관계를 맺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그룹을 이루어 활동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현재 알려진 일본인 미술가가 운영한 사숙의 효시는 아마쿠라 신라이天草神來1902년 개설한 경성남산화실이다. 이는 이후 회화사진강습소’, ‘양화속습회’, ‘조선미술협회연구소’, ‘조선예술사 미술연구소’, ‘경성양화연구소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들의 설립을 주도했던 일본인 미술가들과 조선인 미술가들의 교류에 관해서는 의외로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이런 와중에 우리의 주목을 끄는 학교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다.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1927년 부임하여 장욱진, 유영국, 이대원을 지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인이 중심이 되어 활동한 그룹으로는 1914년 결성된 목석남화회’, 1915년의 조선미술협회전’, 1930년 결성되어 이후 청구회로 개칭한 여란회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끈 자유미술가협회의 친구들에서는 일본인 미술가들의 활동과 함께 김환기, 유영국, 조양규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유일한 신문물의 창구였던 일본.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식된 우리의 근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때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향토색을 강요받기도 했고, 때로는 그들과 수평적 네트워크를 이루는 그룹활동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또 때로는 군국주의적 재현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서는 군국주의가 절정을 치달을 때의 일본인 미술가와 우리의 미술가의 역할은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과 우리 사이의 아픈 역사 속에서 형성된 미술 활동과 그것을 담당했던 미술가들에 대한 언급 없이는 완전한 역사의 복원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록 전시를 보기 전에 가졌던 몇 가지 의문들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지는 못하였지만, 일그러진 과거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더욱 자주 만나 이야기하는 데서 오해는 풀린다. 그리고 함께 가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법이다.

가나가와현립미술관에서 바라본 그 맑고 투명한 바다, 가고 또 가다 보면 유럽과도 만나고 미국과는 만나게 해주는 저 바다, 과연 저 바다를 통해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왔으며 무엇을 주고 또 무엇을 취했는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참으로 부드럽고 투명한 햇볕 아래 아름다운 길과 바다가 이어져 있었다.

 

언급된 작품들을 저작권 문제로 싣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저자 약력
朴奭泰, 1971년 서울 생. 미술평론가, 본지 편집주간 stpark07@ifac.or.kr
글쓴이 : 박석태
작성일 : 20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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