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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통권 : 45 / 년월 : 2014년 / 조회수 : 2146

정연두 개인전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삼성미술관 플라토, 3월 30일~6월 8일),

황인기 개인전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사비나미술관, 3월 12일~4월 27일)

‘인기’를 뜻하는 ‘popular’의 줄임말인 ‘Pop’이라는 단어는 동시대의 대중문화 안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흔히 명사 앞에 ‘팝’을 붙여 팝스타, 팝뮤직, 팝아트 등의 합성어를 만들곤 하는데, ‘인기 있는 무엇’이 곧, ‘대중적인 무엇’ 이라는 공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소비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문화의 형식을 ‘팝문화’라는 카테고리 내에서 해석하곤 한다. 이를테면, ‘팝스타’는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스타’, ‘팝뮤직’은 ‘대중가요’, ‘팝아트’는 ‘대중문화를 소재로 하거나 그것을 대상으로, 또는 대중문화처럼 만들어진 미술’이라는 식이다. 사실 팝아트에 대한 개념은 미술사에서 논의되는 종래의 형태와 현재의 개념에 차이가 있다. 1950년대 팝아트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영국의 평론가 로렌스 앨러웨이(Lawrence Alloway)는 전후에 불어 닥칠 미국 중심의 산업사회와, 대량소비사회를 예견이나 한 듯 예술과 팝의 만남에 주목했다. 그리고 미술사에서의 팝아트는 대량생산이라는 현상에 근거하여, 유일함과 희소성에서 나오는 과거 예술형태에 반하는, 기계적이고 익명화되며 다량으로 복제된 소비사회의 모습을 투영한 앤디 워홀의 미국식 팝아트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대를 해석하는 예술가들의 시각의 변화, 매스미디어의 확장과 발달로 팝을 바라보고 이용하는 관점과 형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되고 있다. 현재 삼성미술관 플라토와 사비나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정연두와 황인기 작가는 ‘팝’이라는 동시대 현상을 기저에 두고 작업한 신작들을 선보였다. 두 작가는 현시대가 지니고 있는 팝의 속성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현대인들의 모습을 주제로 삼았다. 작품 자체가 ‘팝’인 ‘팝아트’가 아닌 ‘팝’을 둘러싼 현상을 해석한 작품들인 것이다.

 

플라토에서 열린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전은 동시대를 사는 보통의 사람들과의 소통 과정을 통해 대중들의 일상성을 시각화하였다. 6년 만에 선보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신작 <크레용팝 스페셜>, <베르길리우스의 통로>와 <영웅>, <상록타워>, <도쿄 브랜드 시티>, <식스 포인츠>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작업한 초기작들을 함께 선보였다. 머리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두 눈에 각각 다른 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하여 3D입체영상을 시각화하는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를 통해 로댕의 <지옥의 문>이 현대판 ‘지옥의 문’으로 재창조되도록 한 <베르길리우스의 통로>와 그와 반대로 화려한 껍데기의 팝문화를 다룬 <크레용팝 스페셜>이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 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전은 과거 장난감 블럭, 크리스탈, 비즈, 실리콘 등 현대의 물질적 재료로 과거의 풍경, 정물화를 재현한 ‘디지털 산수화’ 작업에서 변화되어 대중소비사회를 상징하는 고급브랜드를 차용한 작품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황인기 작가는 시간성에 주목하여 미래엔 과거가 될 수밖에 없는 현재를 그린 작품들,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을 표현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두 개인전에서 두 작가는 공통적으로 ‘대중’과 ‘팝’이라는 요소를 작가 나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무대 밖 ‘팝저씨’를 향한 애잔하고 유쾌한 시선

 

정연두 작가의 신작 <크레용팝 스페셜>은 걸그룹 ‘크레용팝’을 응원하는 아저씨 팬들, 이른바 ‘팝저씨’를 소재로 한 퍼포먼스 영상 그리고 설치 작품이다.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과 적당한 실패를 겪은 평균나이 34세의 팝저씨들은 대형 기획사를 통해 나오는 ‘A급 외모’의 걸그룹과는 다른 방식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른바 ‘B급 감성’의 걸그룹 크레용팝을 응원하는 팬덤이다. 중년으로 접어드는 그들이 갖는 취미는 과거엔 대체로 스포츠에 국한되었지만, 점점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되는 미디어의 생산은 고령 남성들의 관심사를 자연스럽게 흡수하였고,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신비주의에서 벗어난 아이돌 가수들은 다층적으로 팬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란 시사, 경제, 사회의 정보를 얻는 매체로의 기능만을 활용하는 것이 ‘어른스러움’의 미덕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트렌드를 빠르게 흡수하는 것이 오히려 ‘세련됨’이라는 인식의 변화는 중년 남성들에게도 아이돌 여가수에 열광할 수 있는 권리를 자연스럽게 부여하였다. 그리고 작가는 그렇게 변화된 미디어의 특징과 팝의 확장 양상을 팝저씨들을 통해 포착하였다. 또한 작가가 굳이 ‘삼촌 팬’이 아닌 ‘팝저씨’를 주목한 이유는 시각적 자극에만 초점이 맞춰진 대형기획사 출신의 섹시 컨셉 걸그룹에 열광하는 철새 삼촌 팬들과는 달리 무관심과 무명의 설움 속에서 노력으로 일궈낸 성공의 과정이 있는 크레용팝을 자신들의 삶과 동일시함으로써 만들어낸 팬심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

걸그룹의 일반적인 컨셉과는 거리가 먼 헬멧과 추리닝을 입고 땀 흘리며 춤추는 그녀들도 대단하지만, 그녀들을 위해 기꺼이 창피함을 감내하고, 단합하여 떼창하는 중년의 용기에서 작가는 팝을 바라보는 애잔하면서도 유쾌한 감동의 시선을 이끌어낸다.

전시장에 설치된 무대와 영상은 마치 당장이라도 크레용팝 맴버들이 등장할 것 같지만 결국은 나타나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가수가 아니라 팬들이기 때문이다. “크레용팝의 팬임을 나타내는 옷은 어쩌면 제 자신의 반영이자 제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반영하는 대체인물들로 생각해 주면 될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을 통해 중년의 작가가 팝을 바라보는 시선을 알 수 있다.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을 보는 성찰의 시선

 

황인기 작가의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은 내일로 비유된 미래, 어제로 비유된 과거, 그리고 오늘로 비유된 현재에 대한 ‘시간성’을 다룬 작품들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액자 속엔 비욘세, 소녀시대, 현아 등 현재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팝스타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앨범 속 사진처럼 빛바랬으며, 2층 전시장엔 루이비통 가방이 먼지를 머금고 여기저기 뜯겨진 채 갈고리에 매달려 있다. 또한 한 주의 소식을 가장 신속히 전하는 ‘현재’에 충실한 뉴스지 『타임즈(Times)』가 두꺼운 먼지 층과 함께 오래된 고서처럼 진열되어 있다. 작가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도민준처럼 500년이라는 시간의 겹을 두고(드라마 주인공은 404년 전의 사람이었지만) 2514년에 살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2014년의 대중매체속의 연예인들, 고급 브랜드 가방, 시사주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스토리를 설정했다. 500년 후의 사람들에게도 과연 ‘루이비통’과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계속 고급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이어나갈까? 다분히 유물로서의 가치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으로 판단했다. 액자작품에 부착된 사진 속 팝스타들에게도 현재는 지나간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스타들이 계속 생산되고 묵은 이슈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작가는 이러한 현대인의 물질적 욕구와 일시적 가치들의 순간성에 대해 질문한다.

매체에 잠식된 대중들은 팝스타들의 가공되고 설정된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고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 꿈 그리고 가치관까지 자신을 그 대상에 결부시킨다. 그리고 소비자본주의는 고급브랜드를 절대가치화하여 타인과 나 사이에 차별성을 부여하고 우월감을 조장한다. “부자는 자신이 부자로 보이지 않을까봐 불안해하고, 가난한 사람은 자신을 가난한 사람으로 보는 것을 창피해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위한 삶보다는 타인의 눈을 의식한 삶의 모습은 현대인들이 가지는 불안 심리의 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대중의 모습을 부패한 샤넬 로고와 먼지 씌운 루이비통 가방, 빛바랜 스타들의 사진으로 상징화하여 소비자본주의사회를 사는 현시대의 대중들에게 팝적인것, 표면적인 것들이 과연 절대적 가치인가를 질문하고 성찰의 시선을 제시한다.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흥미로운 현상을 추적하거나 기이하게 변형된 물질주의의 욕망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그려낸 정연두와 황인기 작가의 작품들은 동시대에 보이는 대중적 현상에 대한 관찰과 고민의 결과물이다. 다만 그것을 애잔함과 유쾌함, 감동의 시선으로 바라볼지, 비판과 성찰의 시선으로 바라볼지는 작품을 풀어내는 방법과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될 뿐이다.

팝의 소비주체는 대중이다. 팝을 생산하는 문화컨텐츠 제작자가 아니라면, 어찌 됐든 우리는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이라는 집단 내에 속해 있다.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를 “인간의 상호 관계와 행동의 척도나 형태를 만들어 내고 제어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 마샬 피쉬윅(M. W. Fishwick)은 “미디어는 그 형태에 관계없이 지배의 핵심도구로 쓰인다”고 맥루한의 설명을 뒷받침했다. 이는 미디어가 가진 속성 자체가 개개인의 개별성을 말살시키고 인간의 삶을 표준화하며, 단편적이고 기계적으로 만든다는 주장이다. ‘유행’이라는 수사적 언어로 아무렇지 않게 시대적 흐름에 애써 몸담고 흘러가는 대중들, 유행에서 뒤처지면 오히려 낙오자가 되는 불안을 감내해야 되는 것이 현재 우리 대중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예술가란 미디어와 유행의 정서가 만들어낸 정형화되고 몰개성적인 모습을 거부하는 존재로서 동시대의 특성을 특유의 감수성으로 작품에 반영한다. 때문에 대중매체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닌 제3의 위치에서 우리를 관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제3의 시선을 가진 예술가들의 눈을 빌려 현 시대의 모습을 새롭게 해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제공_삼성미술관 플라토, 사비나미술관




#저자 약력
崔宰赫 1985년 서울 생. 사비나미술관 어시스턴트큐레이터. dunemania@naver.com

#주석
1. 정연두, <크레용팝 스페셜>, 전시장 전경, 플라토
2. 황인기,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240cm×796cm, mixed media, 2014(detail), 사비나미술관
3. 황인기,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variable size, mixed media, 2014(detail), 사비나미술관
4. 황인기,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variable size, mixed media, 2014, 사비나미술관
글쓴이 : 최재혁
작성일 : 201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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