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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교과서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통권 : 44 / 년월 : 2014년 3,4월 / 조회수 : 2332
한국 근현대 미술교과서전(2013년 12월 27일~2014년 4월 30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새봄, 교과서의 추억

 

언제나 새 학기가 되면 기다려지곤 하던 책이 있었다. 형형색색의 도판들로 이루어진 미술교과서. 그림도 드물고, 있다 하더라도 재미없는 도표 정도로 채워졌던 다른 과목들의 지루한 교과서들과는 달리 빳빳한 지질에 천연색 그림으로 채워진 미술교과서를 받고는 조심스레 한 장, 한 장 넘기던 학기 초의 기억들이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도 있음직 할 것 같다. 막 찍혀 나온 책에서 나던 향기로운 잉크 냄새, 피카소나 모딜리아니와 같은 화가들의 이름이 주는 무언가 알 수 없지만 고급스러운 어감, 아무리 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던 추상화의 오묘한 색채 등이 뒤엉켜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이루었던 미술교과서. 해서 미술교과서는 일상과는 단절된 ‘순수한’ 미의 세계를 표상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입시라는 오직 하나의 문으로만 연결됐던 다른 과목과 달리 적어도 미술이라는 과목은 우리에게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줬던 해방공간이었다. 그래서 미술교과서가 품고 있는 따사로우면서도 화려한 천연색의 세계는 모든 이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재미있는 점은 대개의 학생들에게 미술교과는 교과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입식 암기 학습이 아닌, 좁디좁은 책상에서 ‘지지고 볶으며’ 때로 교실 바닥을 더럽혀가며 진행되었던 실기 과목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미술 과목의 중추를 이루는 미술교과서는 몇 차례 교육과정의 변화를 겪었다. 즉, 미술교육을 바라보는 시각과 방법론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는 말로, 창의력 중심의 교육과정, 발달 특성 중심의 교육과정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실제 교육 현장의 중요한 주체 중의 하나인 학생들에게 체감되기에는 어려운 문제였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미술이라는 과목은 교과서 따위는 필요 없는, 그저 그리고 만들면 되는, 매우 개인적 차원의 기능이 위주가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의 상식 너머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겠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국가 정책과 가치관의 전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근현대 미술교과서전》(이하 《교과서전》)은 앞서의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보인다. 유리 장 안에 빼곡하게 들어찬 미술교과서들은 제도로서의 미술교육 이전 시기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른다. 서구식 학교 체제가 자리 잡히기 전의 학습교재를 기점으로 일제강점기 ‘도화’교육을 거쳐 해방 이후 서구의 미술사조의 유입에 따른 학습내용의 변화, 그리고 산업화 및 지식기반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내용들이 어떤 변화과정을 거쳤는지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각 교과서들의 삽화를 일부 전시하여 시대별 변화의 양상을 전달한 점도 눈길을 끈다.

앞에서 밝혔듯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미술이라는 과목이 과연 학기 초에 받았던 미술교과서처럼 상큼하고 순수하기만 할까? 손에 만져질 듯 사실적인 질감의 표현과 눈길이 미끄러질 것 같은 빛나는 색채만으로 미술의 많은 면이 설명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미술(작품)의 절대다수가 권력, 자본의 주문으로 생산되고 유통되었던 저간의 사정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미술교과서전을 이루는 교과서들의 내용과 그 흐름을 찬찬히 곱씹다보면 씁쓸한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다른 교과서들과 마찬가지로 미술교과서 역시 국가의 정책을 반영한다. 인간의 정서를 다루는 미술에 무슨 정치나 사회에서나 쓰이는 용어인 정책이 개입할 틈이 있을까 하는 순진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시 첫머리의 일제강점기 교과서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시의 도화교과서(미술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때는 한참 후의 일이다)는 조선총독부가 펴낸 데서 알 수 있듯이 황국신민이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기능의 숙달에 목적이 있었다. 1920~30년대의 도화교과서는 마치 오늘날의 색칠연습처럼 인쇄된 그림에 채색을 하도록 되어 있는 부분도 있는데, 이는 아동들의 디자인 교육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술의 역할이 개인의 정서 함양 내지 창의력 발달이 아닌, 전체주의 사회에서의 산업적 기능 신장을 목표로 했기 때문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교과서전》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국 미술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술이란 그래서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대다수는 아마도 일제강점기처럼 기능 위주의 미술교육에는 난색을 표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발행된 교과서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서구 중심 교육과정은 어떠한가? 미술이라는 말 속에 감추어진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의 조장과 그런 면에 대한 반성은 무의미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이는 우리가 ‘음악’이라는 말을 쓸 때 대부분 우리의 음악인 국악을 떠올리는 않는 이유와 같다. 해방 이후 교과서의 집필자가 (조선미술전람회를 계승한) 국전 제1회 수상자인 유경채로부터 미국에서 수학했던 장발, 초기 모더니스트 구본웅, 대표적인 추상화가인 김환기, 박서보 등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서구식 미술개념과 교육방법에 익숙한 그들 모더니스트에 의해 쓰인 미술교과서가 서구 중심적 성격을 지닌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해방 이후 우리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이 좀 더 가치 있는 변용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태도는 그 교과서로 배운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그대로 이어져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장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우리와 서구의 화가 이름을 떠올려보면 안다. 과연 우리 화가들의 이름이 몇이나 생각나는지를 말이다.

    

 

건강한 미술 개념의 회복

 

교과서전에 출품된 많은 수의 교과서를 일일이 거론하는 일은 불가능하거니와 의미가 크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이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미술이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어떤 경로를 거쳐 전달, 재생산되었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으면 족할 것 같다. 미술은 그저 무엇을 그리거나 만드는 행위와 결과물이 아니다. 우리의 가치를 높고 낮게 결정지을 수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두 손 모아 조용히 이끌어줄 수도,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는, 작지만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 미술인 것이다.




#저자 약력
朴奭泰 1971년 서울 생. 본지 편집위원, 미술비평가. stpark07@ifac.or.kr
글쓴이 : 박석태
작성일 : 201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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