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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미술프로젝트》를 보는 두 개의 태도: 정치의 예술화, 예술의 정치화
통권 : 41 / 년월 : 2013년 9,10월 / 조회수 : 2509
전시 제3회 인천평화미술프로젝트 <백령도 525,600 시간과의 인터뷰>

1937년 7월 18일과 19일, 독일 뮌헨에서 각각 《위대한 독일미술》전과 《퇴폐미술》전이 시작되었다. 두 전시 모두 큐레이팅을 맡은 것은 미술을 체제 유지를 위한 계몽의 도구로 이용하고자 했던 히틀러와 나치 정권이었다. 따라서 전시의 규모와 진열, 참여 작가와 전시 장소 등은 철저히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결정되었다. 이를테면 이들은 ‘퇴폐적 미술’의 시대착오성을 연출하기 위해 뮌헨 대학 2층 건물의 고고학 연구소를 전시장으로 선정했고, ‘건전한 미술’의 시의적절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 맞은편에 위치한 신축건물 독일미술의 전당을 선택했다. 이렇게 정해진 비좁고, 음침한 공간에는 퇴폐적 미술가 112명의 작품 700여 점이 빽빽하게 디스플레이 되었다. 이는 건전한 미술가 580명을 넓고, 환한 공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진열한 것과 사뭇 대조적인 것이었다. 전자를 가중된 혼란으로, 후자를 구축된 질서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들은 다양한 국적의 미술가들로 《퇴폐미술》전을 구성한 것에 반해 《위대한 독일미술》전은 ‘순수한’ 독일 혈통의 미술가들로 ‘순수하지 못하게’ 채워 넣었다.
미술을 정권 강화를 위한 학습 수단으로 삼았던 나치 정권이 퇴출시키고자 기획했던 ‘불명예’전에는 키르히너, 칸딘스키, 클레, 몬드리안 등 후대에 미술사에서 의미를 높게 평가 받는 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가 하면, 동일한 목적으로 이들이 강권했던 ‘명예’전의 미술가들 중 다수는 역사의 뒤안길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32년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 재생산시대의 예술』에서 이러한 예술의 정치적 이용을 ‘정치의 예술화’라 비판하였다. 나치 정권의 실질적 경험자이기도 했던 벤야민은 정치의 예술화의 폐해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사유한 이론가였다.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그가 정치의 예술화에 저항하기 위해 주장한 것은 ‘예술의 정치화’이었다. 기술 재생산 시대의 도래와 함께 아우라aura를 상실한 예술의 역할이 더 이상 제의적 혹은 종교적이거나 심미적 기능에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 그는 아름다운 가상으로 존재하는 예술을 염려했다. 언제든지 정치의 보조 수단으로 악용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예술에 당부한 것은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고려와 실제적인 삶과의 밀접한 연관이었다.

정전 60주년 특별 기획전의 형식을 띤 3회 인천평화미술프로젝트 《백령도 525,600시간과의 인터뷰》전(이하 ‘《평화미술프로젝트》’)이 개막되었다. 지역적 의제인 평화를 예술의 화두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에 대한 입장들은 갈등의 양상을 빚었다. 논의의 쟁점은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유럽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제기되었던 예술로 은폐된 정치,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예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평화미술프로젝트》를 둘러싼 갈등은 한 정치인이 “정전 60주년을 기념한다며 ‘평화미술프로젝트’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최전선 백령도를 찾아가 시민 혈세를 펑펑 쓰며 위장 평화놀음에 놀아난 것”이라는 내용의 의혹을 제기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프로젝트 객원 큐레이터는 “프로젝트의 의미와 성과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맞섰다. 또한 백령도에서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겨 시작된 제2차 전시 개막일에는 “프로젝트에 대한 정치적 이용과 왜곡에 대한 유감과 함께 프로젝트의 진정성과 참여 작가의 자존감 훼손에 대해 정치인의 책임”을 묻는 내용의 운영위원회의 성명서가 발표, 배포되기도 했다. 동일한 프로젝트에 대해 한 정치인은 특정 정치 집단의 색채를 드러내기 위한 쇼라고 주장했고, 운영 주체들은 이런 주장 자체가 예술의 정치적 이용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의 주장대로 《평화미술프로젝트》는 나치 정권이 진두지휘했던 두 개의 전시와 같은 정치의 예술화에 목적을 둔 행사였을까. 그렇게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백령도를 시작으로 인천아트플랫폼과 (송도신도시의) 트라이볼로 이어지고 있는 이번 프로젝트는 인천의 상징적 장소인 섬과 원도심 그리고 신도시를 ‘평화’라는 프로젝트 개념으로 아우르고자 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또한 ‘백령도 525,600시간의 인터뷰’라는 전시 타이틀이 드러내듯 올해에는 기존의 프로젝트에서 지속적으로 지적되었던 결과 과시적, 창조 계급 의존적 한계를 소통 중심적, 이웃 기반적 과정으로 극복하고자 한 일련의 모색도 주목할 만했다. 이러한 시도와 모색은 66명의 참여 작가들의 구체적 실천을 통해 군사와 외교, 자본과 권력과는 다른 예술적 각성의 힘으로 사적 공간의 개인들을 공적 장소로 이끌어 내어, 나와 공동체 곁에 온존해야 하는 ‘평화’의 가치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뜻 깊었다. 

그럼에도 올해로 세 돌을 맞은 《평화미술프로젝트》가 정치 행사라는 의혹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의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예술 축제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고민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가 지역 사회와 공유해야 하는 것은 규제적 규모로 프로젝트의 외연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보다 프로젝트의 진정성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진정성은 인천아트플랫폼과 운영위원 중심이 아닌 지역 예술계의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된 조직위원회의 구성, 운영위원회 성명서의 표현처럼 ‘아무런 물질적 보상이나 혜택’ 없이 순수하게 참여한 작가와 주민들을 프로젝트의 주체로 조명하는 개·폐막식의 형식, 프로젝트 진행 상황에 대한 지역 사회와의 원활한 소통을 전제로 할 때 확보될 것이다. 평화로운 《평화미술프로젝트》를 기대한다.

사족
정전 60주년을 기념한 《평화미술프로젝트》에 대한 성명문에서 정치인과 운영위원회 측은 각각 평화미술프로젝트를 평화프로젝트 혹은 평화예술프로젝트로 섞어 쓰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혼용이 글 전체의 맥락을 깨뜨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어쩌면 오해를 키우는 것은 이런 사소함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런 사소함이 문제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아닐까 거듭 생각해보았다.




#저자 약력
孔周馨
1971년 서울 생. 미술평론가,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저서로는 『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 『아이와 함께 한 그림』, 『색깔 없는 세상은 너무 심심해』, 『천재들의 미술노트』, 『착한 그림 선한 화가 박수근』 등.
yoopy71@nate.com
글쓴이 : 공주형
작성일 : 201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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