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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크게 감고 : 좋은 노동 나쁜 미술
통권 : 39 / 년월 : 2013년 5,6월 / 조회수 : 2883
김홍석 개인전 (플라토, 2013.3.7~5.26)

 “누군가를 베끼지는 마. 너는 너 자신을 쓸 수 있을 거야, 그가 말했다. 아니, 베끼지 않고 무언가를 쓸 수는 없어, 적어도 나는 누군가의 말을 따라하며 언어를 익혔어, 누군가의 문장을 흉내 내며 글쓰기를 익혔지, 내가 말했다. 그런 면에서 언어는 진화하지 않고 문학은 진보하지 않아. 베끼는 것만이 가능하지.”
- 한유주,「인력입니까, 척력입니다」,『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1. 중에서

 

 <수줍게 악수를 청하는 남자>가 있다. 남자의 손은 벽을 힘겹게 뚫고 나왔다. 남자의 손 아래에는‘수고(혹은 용기)’를 대변할 흔적들이 쌓여 있다. 그러나 아직 몸은 저 벽 너머에 있다. 굳건하고 두터운 벽 뒤로 발걸음을 옮겨 보지만, 여전히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등을 돌리고 있으며, 얼굴은 가려져 있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수줍게 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수줍음에도 그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일단, 그의 손을 잡아 보자.

 

모두를 불편하게

 동시대 미술계의 시스템이나 사회구조에 개입하는 김홍석의 작품은‘불편’하다. 2008년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 김홍석은 <post 1945>를 선보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배우를 고용하여 무심히 오프닝 자리를 거닐게 했다. 관객이 마주한 것은 무덤덤한 어투로 적혀 있는 텍스트뿐이었다.“지금 이곳에는 의도적으로 창녀가 초대되었습니다. 그녀는 오늘 있는 미술 전시 개막행사에 3시간 참석하는 조건으로 60만원을 작가로부터 지급받습니다. 이 순간 여러분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이 창녀가 누구인지 찾아낸 분은 작가로부터 그녀를 찾은 대가로 120만원을 지급받게 됩니다. 창녀를 찾아봅시다.” 이 퍼포먼스에 대한‘과민적인’ 반응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post 1945>는‘모두’를 불편하게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 시선을 향유했는지도 모른다.‘과민적인’ 반응이‘창녀’라는 단어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김홍석에 제시한 구조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노동이나 업적을 전용하는 김홍석의 게임의 구조는 냉정하다. 미술계 혹은 사회의 시스템에 침잠한 관습적 관행을 수면으로 끌어내어 뒤흔든다. 그렇다고 작가의 위용을 과시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문제적 다가간다. 그러나 결코 소리 내어 웃을 수 없다. 웃음 뒤의 쓴 맛을 고스란히 유지한다. 은밀하게 감추었던 것들을 대면했을 때의 불편함. 관객은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얽혀 있던 사회 구조는 그의 농담을 통해 실마리를 찾고 관객들은 스스로 혹은 자신도 모르게 직조했던 현실의 모습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작가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작가 역시도 관객을 계몽하기 위한 전지적 관점에 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자신을 둘러싼 신화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분열된 주체는‘작가’라는 단일한 이름으로 수렴하지 않고 오히려 해체하며 조소하여‘작가’를 평가절하 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작가 지우기’ 방식은 이번 전시 제목인 분절점이 없는 네 개 단어의 자유로운 순열 조합을 통해 의미화된다. 그의 회화와 조각은 그것이 전제한 작품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기울고 과장된 형태에 대한 연구-LOVE>(2011), <사람 건설적-환희>(2012), <사람 건설적-합의>(2012), <걸레질>(2012), <빗자루질>(2012), <닦기>(2013), <젓기>(2013), <개 같은 형태>(2009) 등이 그러하다. 작가는 이 작업에서‘노동’을 최소화하고 대신‘고용’을 택한다. 이 금전적 보상은 자신의 작업으로 호명되는 최소 조건처럼 보인다. 윤리적 타당성은 생기는 지점이자, 그 타당성의 의심이 발생하는 간극이다.

 

 

 

 

 

좋은 노동 나쁜 미술

 전시장 초입에는 검은 색 바탕에‘Good Labor Bad Art’가 하얀 조명을 받는다. 하나의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개별적 단어이다. 각 단어의 층위가 무수하게 연결된다. 왼쪽에는 한 사람이 있다. 아니 오브제일 수도 있다. 벽을 향해 수줍게 돌아 선 <Mr. Kim> 주변으로 전시장에서 들려오는 중얼거림이 채운다. 물론‘좋은 노동 나쁜 미술’의 개별적 소리일 것이다. 이 소란 가운데에서도 미스터 김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돌아서 있을 뿐이다. 통로에서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면 <자소상>과 <걸레질-120512>에 대한 비평인 <좋은 비평 나쁜 비평 이상한 비평>이 보인다. 이 공간은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다. 단지 강연과 대담에 대한 정보만 있을 뿐이다. <걸레질-120512>의 흔적들은 전시장 곳곳에서 들리는 중얼거림을 대변하듯 선과 선들이 얽혀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곳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오브제들의 결합이 <자소상>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형상의 본을 뜬 레진이다. 사물의 복제. 레진을 매개로 한 복제. 여기서 노동은‘복제’에 있다. <자소상>은 말이 없이 이것을 응시할 뿐이다.

 

 

 중얼거림의 주체는 <좋은 비평 나쁜 비평 이상한 비평>의 주변에 있는 영상들이다. <카메라 특정적-공공의 고백>, <영문공공의 공백>은 김홍석의 드로잉 <공공의 독백>을 설명하는 영상과 그 설명을 영문으로 번역한 텍스트로 구성된 영상이다. 두 설명은 같은 위치에 놓여 있지만 같은 작품을 설명하거나, 같은 내용을 발화하지 않는다. <영문-공공의 공백>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카메라 특정적-공공의 독백>과는 독립된 작품으로 작동한다. 연기자의 설명이 준비된 발화라면, 번역 역시 준비된 발화,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은 발화이다. 벽에는 케네디의 연설문을 어린이의 입을 빌어 연설하게 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영문-가짜 그 이상의>, <사람 객관적-평범한 예술에 대해>가 있다. 이 역시 같은 층위에 놓이지 않고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직접적이지 않지만,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은‘노동’에 기반을 둔다. 연설을 하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번역하는 것도, 비평가들이 작품을 설명하는 것도 모두‘노동’이다.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며 발화한다. 그러기에 오히려 이 노동으로 가득한 발화는 공중으로 희석된다.

 

 <공공의 공백>은 16개의 액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더 나은 미래은>는 9개의 오브제가 좌대 위에 다소 불규칙적으로 놓여 있다. <더 나은 미래은>는 3개의 오브제가 쌍으로 각기 다른 재료로 복제되었다. 이 오브제는 맥락에서 떨어져 미술관으로 들어 왔으며, 같은 형태의 레진과 대리석으로 다시 복제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복제하는 상황에서 원본과 복제품의 가치의 층위는 무화된다. 복제와 차용의 놀이에서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이것들은 또 다른 것으로 다시 복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받는다. <기울이고 과장된 형태에 대한 연구-LOVE>는 박스와 매트릭스 형상의 레진이다. 정갈하지 않은 글씨는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는 다시 <걸레질>, <빗자루질>, <닦기>, <젓기>로 연결된다. 노동이 캔버스를 채우는 이 작업은 수많은 노동이 스스로 발화한다. 재료부터 표현까지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이 과정에서‘좋은 노동 나쁜 미술’은 다양한 순열 조합으로 전시장의 의미를 가득 채운다. 노동은 전시장을 채우며 다양한 말을 한다. 그리고 미술 역시 이에 부응 혹은 충돌하면서 많은 말을 한다. 이 말들의 연속에서 충돌하기도 하고 합일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노동/미술’은 <눈을 크게 감고>의 뜨겁도록 밝은 빛의 방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관객(혹은 작가)은 그곳에서 눈을 뜨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강한 빛 때문에 오히려 힘겨워 한다. 그렇다고 감지도 못한다. 이 모순적 상황에 노동과 미술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적이지 않으며 잔상으로 남아서 지금-여기를 구성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따라 우리 모두‘눈을 크게 감고’,‘수줍게 악수를 청해보자.’ 지금-여기에서 말이다.




#저자 약력
1974년 서울생. 미술평론가. criticism74@gmail.com

#주석
이미지 제공_플라토
글쓴이 : 이대범
작성일 : 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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