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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미술 300년의 별자리
통권 : 39 / 년월 : 2013년 5,6월 / 조회수 : 2223
<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 (국립중앙박물관, 2013.2.5~5.19)

 기록. <미국미술 300년>전은 이미지로 쓰는 300년의 서사를 보여준다. 무수한 말들로는 적어내기 부족한 거대한 대륙에서의 여러 시공간들이 전시장에 펼쳐지는 것이다. 이것은 미술가의 개별적 눈이라기보다, 미국이라는‘국가’의 서사적 시각이다. 사실 존재하기 힘든 관점이다. 선별되고 압축된 미국미술 300년의 역사는 그러나 충분히 도전적이었으며 끊임없이 마찰을 빚으며 굴러 온, 작가들이 비춰낸 한 나라를 드러낸다. 또한 전시는 이들 소명으로서의 예술 작업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탐험가, 개척자, 망명자들이 경제적 종교적 자유를 찾아온 신세계(전시장 벽면의 문구)” 안에서 미술가는 자신들이 밟고 선 땅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프론티어들이었다.

 

 전시장은 30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완성된 작품을 훑는다. 태도와 취향과 사조와 문제의식이 개별적으로 드러난 작업들을 한 데 모으는 작업으로 미국과 관련한 6개의 소주제로‘분할’했다. 1부‘아메리카의 사람들’에서 2부‘동부에서 서부로’, 3부‘삶과 일상의 이미지’에 이르러 6부‘1945년 이후의 미국미술’에 달해 전시의 끝에 도착하면 잭 케루악의 소설『길 위에서(On The Road)』(1957)의 한 문구가 벽에 쓰여 있다.“그리하여 나는 해가 저버린 미국의 어느 날 낡고 망가진 강둑에 앉아 뉴저지 위로 펼쳐진 넓디넓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육지가 갑자기 믿기지 않을 만큼 크게 부풀어 태평양 연안까지 이어지고 모든 꿈이 펼쳐지고 모든 것을 꿈꾸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보았던 168점의 작품들과 거리두기를 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그들은 대체 어떤 꿈으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일구며 달려왔을까.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사건과 사람들, 구름떼처럼 몰려들게 만드는 꿈과 절망들. 전시장은 그래서 영욕이 서린 초상화가 많다.

 전시장에 있는 작품들을‘미국미술’이라는 단어를 제하고 살펴본다면, 그것은‘꿈’이라는 상태로 묶어볼 수 있을 것이다. 잭 케루악의 고군분투하는 어떤 문장들처럼 <미국미술 300년>전에 들어선 작품들은 개인과 집단 초상화의 묶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부색을 달리하는 원주민 추장의 초상화나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가 새로운 귀족이 되고자 했던 신흥계급의 유려한 가족화는 이들의 현재가 아니라 되고자 하는 가까운 미래의‘바람’을 담아낸다. 전시장에서는 찰스 윌슨 필의 <캐드 왈라더 가족초상>(1772)을 비롯한 유려한 자태의 가족초상화와 마주할 수 있다. 헨리 인만이 1832년에 그린 치페와 족장 노틴(바람이라는 뜻)의 얼굴은 크고 둥근 눈에 도톰한 입술과 부드러운 눈매까지 화가에게‘타자’가 아닌 대화상대로 그려졌다. 아메리카의 광대한 자연을 담은 풍경화 또한 최대한의 와이드 샷으로 펼쳐져 있다. 19세기 동부의 허드슨 화파를 이끌었던 여러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는 이들이 아직 채 밟지 못한, 그러나 세계 어디보다 넓은 대지로 인식되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바라는 상태를 이미지화한다. 한 예로 프레데릭 레딩턴의 <목동>(1905)은 눈이 쌓인 목장 한 가운데 말을 타고 있는 목동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적인 붓질로 대상을 잡아낸 듯 보이는 그림. 그러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수평의 구도 한 가운데 수직의 기념비로서 목동과 말을 담아낸 구도는 자연과 대결하는 미국의 인간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읽힌다.

 

 

 원근법. 멀리서 바라보는 듯한 그림들이 화가의 코끝의 풍경으로 뒤바뀌는 시점은 전시장 3부‘삶과 일상의 이미지’, 4부‘세계로 향한 미국’에 이를 때이다. 원주민이 살았던 미지의 영토는 주거민들의 생활공간이 되어 그림에 담기기 시작한다. 19세기 미국이라는 공통의 시공간을 질주하는 이들에게 그것이 작가이든, 당대 삶의 형태이든, 전시장 벽과 기둥을 사이에 둔 이 두 공간은 이질적이다. 3부‘삶과 일상의 이미지’의 작품들이 초기 미국의 풍속화가 보이는 목가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붓질을 가졌다면, 4부‘세계로 향한 미국의 화가들’은 19세기 중·후반 대호황시대를 맞아 세계로 진출하는 미국의 시대상과 관계하며 프랑스 파리의 인상주의를 비롯한 당대 예술의 실험과 본격적으로 길항한다. 윈슬로 호머의 <사냥꾼과 개>(1891), <건전한 만남>(1874), 토마스 에이킨스의 <보트타기>(1875)는 비범할 것 없는 이곳의 다채로운 오늘들을 그린 당대 민중 그림사의 여러 페이지들을 만든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종군 화가로 활동하며 후에 대중적인 삽화를 그리며 경력을 쌓았던 작가 윈슬로 호머는 자연 속에서 사냥과 낚시, 노동을 하며‘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미국 사람들의 초상을 풍경에 끌어들였다. 인상파의 주요 여성 화가로 잘 알려진 메리 카사트의 <조는 아이를 씻기는 어머니>(1880)와 존 싱어 사전트의 <룩셈부르크 정원에서>(1879>의 빛과 색채의 풍성함에는 이곳이 미국이든 어디든 상관없다는 시각의 자기중심주의가 엿보인다. 여기가 미국이 아니어도 좋다는 것은 미국이 그만큼 세계 어디든 뻗어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300년이라는 시간은 전시를 관람하면서 서서히 휘발된다. 애초 미국 역사 300여년의 시간의 공간화를 촘촘하게 해낼 듯 보였던 전시장 초입의 작업들은 대도시의 삶이 끼어드는 20세기와 세계 미술계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20세기 중·후반 작업들로 이어진다. 이것은 연속, 불연속이라기보다는‘점프’라 하는 것이 맞겠다. 20세기 초반의 미국은 입체파와 추상미술, 사실주의 미술이 공존하는 시대적 배경막이 되며 1945년 이후 미국 미술은 이번 전시에서 그 진동폭을 잠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5부‘미국의 근대’, 6부‘1945년 이후의 미국미술’의 작가/작품들은 찰스 데무스, 조지아 오키프, 아쉴리 고리키, 앤디워홀 등 현대 미술사에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유명 작가의 작품을 숱하게 보는 경험이 된다. 이들이 사실‘미국’ 미술만이 아닌‘현대’ 미술의 주요 작가라는 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여기서 미국은 하나의 수사(修辭)가 되어 다가온다.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틀을 잠시 잊고 미국적 삶의 양식과 개방성/다양성의 선두주자로서의 미국을 볼 때 이것은 하나의 은유다. 대도시의 속도에 유입되는 개인과 대중 그리고 물질문화와 자본주의 세계를 거부할 수 없게 된 미국의 시대정신은 현대미술에서의 극단적 실험을 자극한다. 레지널드 마쉬의 <3번가 고가철도>(1931)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보다 날카롭게, 작가가 동물적으로 잡아낸 도시의 순간이다. 다른 색깔의 옷을 걸치고 있으나 허공을 향해 시선을 보내는 대도시 고가철도 안의 정서는 2013년 지금도 지속되는 공통 감각이다. 헬렌 룬디버그의 작품 <다리의 그림자>(1962). 급진적인 화면 분할과 우유 색을 띠는 추상 형태 앞에서 관객은 미국이 아닌 화가의 실험과 도약을 보게 된다. 작가 개인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시대의 전환기마다 작가들은 그들 자신이 알고 있든 아니든 다른 세계의 상태를 앞장서 바라보았다.

 

 <미국미술 300년> 전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 휴스턴미술관, 테라 미국미술재단 등에서 대여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공예 작업들이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점도 뇌리에 남는다. 18세기 미국의 응접실과 미국 원주민 미술이라는 파트에서 보는 원주민들의 몇 작업, 펜실바니아 독일계 이주민 미술과 다시 나타난 19세기 미국의 응접실 그리고 1945년 이후 캘리포니아 디자인은 미국인들의 생활상을 보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전시장의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들이 거주했던‘공간’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300년 동안 살았던 수많은 미국인들의 삶과 정신을 모두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작가들이 찍어놓은 점을 따라 미국의 300년을 본다. 두루마리처럼 끝이 없는 지도에 작가들은 자신의 눈으로 경험한 미국 미술의 별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저자 약력
玄시원 1980년 춘천 생, 독립큐레이터, 저서 『디자인 극과 극』. 최근 전시 기획으로 <잭슨홍-13개의 공>, <라이팅밴드(www.writingband.net)>.
sonvadak25@hanmail.net

#주석
이미지 제공_국립중앙박물관
글쓴이 : 현시원
작성일 : 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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