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7월 중순, 충남 서천시 장항읍 일대에서는 <공장미술제>가 열렸다. 이 서해안의 도시는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 과정에서 성장하였고 제련소에 의하여 산업화 시대에 일정 규모 이상의 경제생활을 유지했던 곳이다. 장항 맞은편에 자리한 군산 출신 시인 고은은 어린 시절 장항제련소의 굴뚝을 바라보며 삶의 비극성을 원초적으로 느꼈다고 회고했다.
장항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인구 3만 명 이상을 유지하면서 작지만 알찬 소도시로 자생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제련소가 사라지고 기차 노선까지 바뀌면서 지금은 겨우 1만 명가량이 생존해가는 쇠락한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의 구 역사와 낡은 공장들을 활용한 에술제가 <선셋장항페스티벌>이고 그 중심 행사로 <공장미술제>가 탄탄한 역할을 해왔다. 서울의 홍대 앞 문화를 주도하는 미술가와 인디뮤지션까지 대거 참여하는 내실까지 다졌다.
이 같은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경향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카셀이 카셀 도큐멘타로 세계적인 입지를 구축한 것이나 1980년대에 실업률 30%라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 폐광지 빌바오가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하여 세계적인 미술관광의 거점으로 거듭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기관차와 석탄 생산지였던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르 크뢰조와 몽소레민이 문화 명소로 거듭난 일이나 라인강의 폐광지 에센이 예술을 통한 도시 재생의 상징으로 거듭난 것도 기억할 만하다.
그리고 콜트악기 공장이 있다. 그곳은 부평구 갈산동 421-1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도 올 여름 미술가들의 전시가 열렸다. 그렇다면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은 맥락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인가. 부분적으로는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모든 사례와 달리 콜트악기 부평공장에서 벌어진 행위는, 전혀 다른 맥락의 소산이다. 이 공장은 1973년 설립 후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사업주는 2007년 7월 경영 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1년 뒤에는 국내 공장을 모조리 폐쇄하고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 해외공장을 만들어 버렸다. 세계 기타 음향 시장의 30%를 점유할 정도로 경쟁력 있는 회사이지만 사업주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하여 사실상의 위장폐업을 하면서 노동자를 궁지로 몰아버렸다. 올해 2월 23일, 대법원은 이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선언했지만 사업주는 5월 31일, 다시 2차 해고를 통보하고 공장 부지마저 매각해 버렸다. 노조에 따르면 그 매각조차도 청산이나 처분이 아니라 위장 매각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 기나긴 세월, 무려 2,000일이 넘도록 콜트악기 노동자들이 장기 농성과 투쟁을 벌여왔다.

 
그 자리에서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텍展>이 열렸던 것이다.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펼쳐지는 예술을 통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와 달리 이 전시는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대적인 문제에 대한 예술가들의 전격적인 실천이라는 문제의식의 현장이다. 성효숙, 전진경, 정윤희, 상덕, 황승미 등의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럴 듯한 작업실에서 ‘독특한’ 오브제를 만들어 와서 이 공장에 일시적으로 ‘설치’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이 공장 안에서 생활하고, 노동자들과 일상을 함께 하며, 때로는 부당한 간섭이나 용역에 의한 공장 침탈에 저항하면서, 작업을 한 결실이었다.
이 당대성이야말로 소중하다. 국내의 꽤 많은 지역에서도 지자체의 ‘문화관광사업 활성화’에 따른 여러 예술 작업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소중하다. 그런데 부분적으로는 그 도시의 역사나 문화라는 기본적인 맥락과 어긋나는 일회적인 프로젝트가 없지 않으며 ‘관광사업’을 중시하는 지자체의 완고함이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에 비하여 콜트 부평공장 전시는, 부당해고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생존 현장에서, 그들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어렵사리 얻어낸 결실을 껴안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노동하는 삶에 대한 존중, 노동에 대한 신뢰, 노동의 현장이 참담한 침탈의 목표가 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이 전시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근사한 ‘오브제’를 찾아 나선 미술가의 ‘실험’이 아니라 가차 없는 정리해고와 위장 폐업이 도처에서 벌어지는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간 미술가들의 실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