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통해서 다시 한번, 그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대중문화의 강국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영국.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개막식의 대미를 비틀즈(The Beatles) 시절의 명곡인 <헤이 쥬드Hey Jude>로 장식했다. “비틀즈”라는 이름은 단순한 가수 혹은 대중적인 그룹 이상의 가치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음악뿐 아니라 1960년대의 사회·문화적 혁명을 촉발시키고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다가 심지어 공식적인 종교화까지 진행된 비틀리즘(Beatlism)이 등장하기도 했었다. 그 모습만 봐도 비명을 지르며 열광하는 소녀 팬들을 포함하여 비틀즈의 열혈 팬들을 두고 당시의 영국 언론들은 “비틀마니아(Beatlemania)”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틀마니아 중 레코드회사 대표, 방송사 PD, 팝칼럼니스트, 방송작가, 뮤지션 등 문화계에 뛰어든 이들이 꽤 된다.
<비틀즈 50년_한국의 비틀즈 마니아展>은 롯데갤러리 본점을 시작으로 일산과 부산, 광주 등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필자는 전시가 끝나는 날인 8월 5일 오후 직접 갤러리에 다녀왔다. 전시물이 있는 12층과 14층은 전용 엘리베이터로 연결되어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외관과 내부도 비틀즈 멤버들로 꾸며져 있어 확실히 전시의 성격을 살려준 듯했다. 갤러리 12층 입구 쪽 쇼윈도 안에는 비틀즈 멤버들의 사진과 포스터, CD와 영상자료, 일렉트릭 기타 등 다양한 물건이 자유롭게 진열되어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편에 비틀즈의 간략한 이력이 정리되어 있고 그 아래 흰 벽면에는 멤버들의 사인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눈높이 정도에는 비틀즈 각 멤버의 초상화(서상익 작가의 정밀묘사 유화-생존 멤버라 폴과 링고가 현재의 나이에 걸맞게 그려져 있어 세월의 무상함도 느낄 수 있었다)를 시작으로 비틀즈 음반들과 솔로 음반들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시대별로 섞어놓는 것보다는 각자의 사인 위치에 맞춰 솔로 음반들을 진열했으면 일반 관람객들에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 반대편에는 작은 테이블과 옷걸이가 마련되어 비틀즈와 관련한 관상용 의상들과 판매용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비틀즈 관련 로고 및 문양 등이 인쇄된 티셔츠와 바지, 가방, 모자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전시 마지막 날이라 그랬겠지만 판매 상품은 몇 가지 남아있지 않아서 인터넷에 올라온 보도사진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주 전시장 역할을 하는 14층에 올라가니 250여 점 가량의 비틀즈 관련 물품들과 추억들이 함께 펼쳐져 있었다. 그 물품들 사이사이에 있는 비틀즈를 사랑하는 현대미술가들의 비틀즈 테마 작품들과 소설가 김훈의 친필 원고 「비틀즈와 나」가 눈길을 끌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나와 내 친구들은 미친 듯이 비틀즈를 따라서 노래했다. 그 노래는 자유이며 희망이었고 저항이며 그리움이었다……” 

 
1970~1980년대 어린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던 철제 로봇 장난감을 연상시키는 고근호 작가의 <히어로 비틀즈>는 네 명의 멤버들을 철제 로봇으로 조형화해 눈길을 사로잡았고, 펑케스트라(Funkchestra) 시리즈 중 하나인 홍경택 작가의 <비틀즈>는 사이키델릭한 조명과 반복되는 패턴들이 리드미컬하게 다가왔다. 이기일 작가의 <성냥그림 비틀즈>는 작품을 성냥 발화제로 그려 여러 상징적인 요소들을 은유적으로 내포하는 듯했다. 일명 “쌀화가”로 불리기도 하는 이동재 작가는 점을 찍는 기법으로 비틀즈 노랫말을 이어 붙여 <아이콘_비틀즈(Icon_The Beatles)>를 선보였다. 그리고 커다란 업소용 쟁반 위에 각종 색상의 박스테이프를 붙이고 잘라내어 작품화한 김형관 작가의 <쟁반 위에 비틀즈>는 바짝 다가서서 그 작품 소재를 확인하게 만들었다. 작가 김선두의 <에스터데이(Yesterday)>에서의 붓 터치는 동양화적인 감성과 마치 낙서된 벽면 같은 이중의 느낌을 함께 전달하기도 했다.
현대미술 작품들과 함께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물품들은 다양한 LP들을 중심으로 하는, 아날로그를 대변하는 음반들과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다양한 포스터들과 비틀즈 관련 서적들과 잡지, 신문, 팬클럽 회지 및 기사 스크랩들이었다. 오리지널 음반, 라이센스, 준라이센스, 불법복제 음반, 7인치 싱글과 카세트테이프는 각기 따로 분류되어 전시되고 있었다. 비틀즈 마니아들에게는 군침이 돌 만큼 희귀하고 소장하고 싶은 LP들이 벽면 가득 전시됐지만, 일반 관람객들에겐 각 음반의 가치나 의미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비틀즈 음반들이 이렇게 많았어?" 하는 정도로만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정부 수입인지까지 붙여져 출반됐던 소위 준라이센스라 불렸던 음반들 사이에서는 1964년 2월 미미레코드사에서 찍어낸 국내 최초의 비틀즈 음반인 《탑튠쇼(Top Tune Show) Vol.7》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커버에 인쇄된 "비틀비틀비틀 Beatles"라는 문구는 그야말로 엷은 미소와 함께 격세지감까지 느끼게 해줬다. 영국 팝아트의 대부라 불리는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가 디자인한 명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의 경우는 특히나 국내에서 사연이 많은 음반이기도 한데, 특별한 디자인의 선원복을 입은 비틀즈 멤버 4명을 가운데에 두고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밥 딜런(Bob Dylan),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 등 예술, 철학, 문학계를 넘나드는 세계적 유명인 60여 명이 등장한다. 그런데 당시의 국내 정치 상황 등이 반영되어 칼 마르크스와 대마초 비슷한 식물 등이 등장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 음반의 라이센스 음반은 멤버 4명의 모습만 확대된 채 배경을 모두 까맣게 처리한 만행이 자행된 디자인으로 출시되었다. 하지만 이 특별한 심의가 반영된 커버 덕분에 세계적으로 이 대한민국 라이센스 음반은 정해진 가격이 없는 고가에 거래되는 아이템이 됐다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비틀즈와 각 멤버 관련 서적들로는 『비틀즈 앤솔로지』와 『존 레논-In His Life』 같이 비교적 근래에 출간된 책들부터 1970년대에 나온 『비틀즈 악보 모음』 그리고 『비틀즈 시집』, 『비틀즈로 떠나는 영어기행』, 『존 레논을 믿지 마라』 같은 특별한 서적들과 비틀즈가 조금이라도 언급된 전반적인 록 관련 서적들 및 만화로 록의 역사를 풀어낸 『페인트 잇 록(Paint It Rock)』 유형의 서적들까지 모두 전시되었다. 그리고 이런 서적들 외에도 비틀즈 팬클럽에서 직접 발행한 회지들과 한 때 국내 팝 음악 팬들의 정보통 역할을 하던 <월간 팝송>과 <음악세계> 같은 음악 잡지에서 취재한 내용이 담긴 비틀즈 팬클럽 관련 기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목이 “비틀즈 50년_한국의 비틀즈 마니아”였던 만큼 이번 전시는 음반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마니아’적인 면이 좀 더 부각되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마련된다면 꼭 음악 팬이 아니라도 관심과 흥미를 가질 만한 아이템들과 패션 관련 상품, 포스터와 사진, 음반들도 함께 판매하고 작은 축제와 장터를 결합한 스타일은 어떨까 싶다. 멘틀즈와 정성하의 공연도 따로 마련되었지만, 이왕이면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정해진 시간대에 공연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지난 2009년 3월 영국 리버풀에 있는 호프대학교에서는 ‘비틀즈학과’가 석사 과정으로 정식 개설된 바 있다. 처음으로 배출된 석사들의 연구 논문 같은 것들도 번역되어 함께 볼 수 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대중음악도 연구하고 학술적으로 분석하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