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순택전시, 국립현대미술관, 2014
한국 미술계에 사진이 본격적으로 편입된 시기는 불과 15년 안팎이지만 지금 사진은 놀라운 변화를 거듭하며 조형예술에서 가장 기초이자 중심인 미디엄이 되었다. 사진을 생산하고 향유하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풍요로운 적은 없었다. 더불어 디지털 매체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사진 자체에 대한 물음과 의문도 진단이나 점검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거세게 달아오르는 있는 상황이다. 즉 사진을 찍는 행위와 사진의 당위, 그것의 존재 이유에 대한 다층적인 물음들이 극대화 되었고, 각각의 작가들은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낯선 사진의 형식들을 기투(企投)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사진의 기록성과 사실성에 전폭적인 가치를 부여했고, 누군가는 사진의 지표성에 주목하며 존재론적인 지향을 계속하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이미지의 언캐니(uncanny)함을 유도하여 낯선 배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때는 타블로 사진이 유행처럼 개화하더니, 또 한때는 데드펜(deadpan), 즉 무표정한 사진이 곳곳에서 선보였다. 세계와 역사를 대면하는 선형적인 접근이 한쪽에 있었다면 분절과 파편의 이미지만으로 새로운 시간성을 실험해나가는 작가군도 있었다. 지난 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한 올해의 작가상에 노순택이 선정될 수 있었던 데도 그동안의 다층적인 모색의 힘이 보태어져 이뤄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노순택은 분단 이데올로기나 아직도 날것으로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실체들을 발굴하듯 찍어내기보다, 그러한 기호들을 성실하게 수집해냈다. 기호의 수집가가 내놓은 사진들은 기호들의 나열과 조합, 보여주는 방식에 따라 다성적인 목소리를 냈다. 현실을 찍고 보여주는 사진이니 당연히 현실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소하고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이미지세계-전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닌, 결여되어 있는 세계의 틈 혹은 그의 말처럼 ‘사진의 털’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사진가들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작업들을 조직해내야 하는 전시는 어떠할까. 국제적인 규모의 사진축제(대구사진비엔날레, 동강사진축제, 서울사진축제 등)들이 개최되고, 사진전문 미술관(한미사진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 동강사진박물관 등)과 사진전시를 위주로 하는 갤러리(갤러리 룩스, 트렁크 갤러리, 갤러리 나우, 류가헌, 대안공간 SPACE22, 공간 291 등)가 속속들이 생겨나며 사진전시 또한 양적으로 팽창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사진 대중을 겨냥한 소위 블록버스터 급의 대형 대관전시들도 해마다 앞 다투어 열리다 보니 사진전시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전시의 크기와 횟수만큼 그 내용과 형식도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들도 보인다. 전시는 틈이 많을수록 함량도 높아진다. 그 틈은 관객의 능동적 관람행위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메워지고 전시의 틈이 크고 잦을수록 관객의 유희도 커진다. 물론 이 말은 전시의 짜임새가 느슨하고 허술해야 한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정반대의 이야기다. 전시의 틈은 치밀하게 의도되어야만 하고 그 자체로 고유한 장면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거개의 전시들이 획일적이고 일반적인 전시 프로그램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겉모양만 바꿔가며 열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큐레이팅의 부재일 수도 있겠고, 비평의 느슨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혹은 읽기 쉽고 보기에 좋은 사진들이 인기몰이를 하는 대형 전시시장을 탓할 수도 있겠다.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보다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새 시좌전>, <한국사진의 수평전>, <관점과 중재전>, <사진은 사진이다전>,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전> 등 사진의 다양한 담론을 형성한 전시들이 개최되며 그때마다 새로운 화두를 내놓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사진을 바라보게 하는 전시 대신 ‘국제화’라는 환영이 만들어낸 전시들이 주를 이루며 외양 갖추기와 흥행몰이에 치중하는 기이한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매체 환경과 기술의 변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급팽창으로 인한 사진문화의 지각변동 및 미술에서 사진을 수용하는 범위가 폭넓어지면서 사진전시의 형태도 변화할 수 있겠으나, 정작 사진계 안에서는 플랫폼에 해당할 만한 한국사진의 사회적, 미학적 가치 및 방법론을 점검하는 일에는 미약하였던 것 같다.
이처럼 사진계 안팎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역의 사진미술관이나 목마른 작가들이 우물을 파듯 곳곳에서 게릴라 형태로 진행되는 기획 전시들과 최근 대안 공간의 움직임들은 우리 사진의 새로운 길트기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 예술로서의 사진이 개진해나갈 사진 자신과의 싸움을 실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8월 11일에 열린 세월호를 기록한 사진가들의 ‘4시간 16분 동안의 도보 행진 전시’는 이례적이었다. ‘거리 사진가들’(혹은 ‘아스팔트사진가들’)의 연대로 이뤄진 이 전시는 화이트큐브에서 벗어나 거리에서 전시행위를 실천한 것이다. ‘다큐작가’들의 전시를 통한 문제제기들이 지금처럼 강력한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다양해진 작가 층과 함께 이전에 없었던 소재와 주제들이 곳곳에서 발표되며 ‘이미지현실’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동적으로 반영하므로 예술작품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는 한계가 무너진 자리에 실천적, 이론적 무장을 한 사진가 주체의 감각과 사유를 매개로 능동적인 활동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능성을 모색해 온 고은사진미술관의 <다큐멘터리 스타일>(2014. 12. 9-2015. 2. 25) 전시도 다큐멘터리 사진의 형식과 문제의식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주목할 만한 전시로 지난 3년간의 ‘서울사진축제’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전시는 <천 개의 마을, 천 개의 기억>(2012년), <시대의 초상, 초상의 시대>(2013년), <서울 視·공간의 탄생>(2014년)을 주제로 서울의 기억과 사람, 공간에 천착해 방대한 사진 아카이브 자료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간추려낸 전시이다. 기록물로서의 사진의 미학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 기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양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전국 규모의 다양한 사진축제 중에서도 그 콘텐츠의 질을 담보해 낸 큐레이터의 노력이 돋보이는 전시였다. 이 외에도 지역의 작은 사진 갤러리들의 활약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인천의 ‘사진공간 배다리’, 전주의 ‘서학동 사진관’, 순천의 ‘갤러리 1839’, 진주의 ‘루시다 갤러리’ 등 이들 갤러리는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지역 사진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중앙 사진계와의 잦은 교류를 통해 지역 사진 발전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

KMW 8652, 세바스티앙 살가두 제네시스, 곽명우 촬영
예술작품이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리트머스지라고 할 때, 큐레이터는 비평가와 함께 리트머스의 반응을 제일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전시에서 큐레이터는 미학적,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을 종합하고 작가와 작가, 작가와 작품, 작품과 작품 간의 맥을 짚어가며 전시가 비록 일회적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작가보다 더 민감해야 한다. 특히 가상이 현실을 대체하고 이미 조작된 가상의 현실을 사진이미지를 통해 바라보게 되는 겹겹의 가상 속에 있을수록, ‘실재’를 향한 사진가들의 노련한 행보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도 보고 싶은 이미지만 보고, 알고 있는 만큼만 이해하는 ‘이미지맹목’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범람할수록 실재는 멀어지듯, 국제규모의 크고 화려한 전시와 부르주아 자본에 묻혀 우리 사진의 다양한 역능들이 자멸되지 않도록 귀로 보는 것이 아닌, 눈으로 자세히 살피는 일은 큐레이팅의 중요한 윤리이다. 이-미지의 세계에서 작가들의 작품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독특하게 개화할 수 있도록 치밀한 틈들을 기입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진(계)의 개별의 목소리들이 지금처럼 다양하게 발화된 적은 없었기에 기획자뿐만 아니라 사진계(사진평론가, 미술관, 갤러리, 콜렉터 등) 전반의 밝은 안목이 요원한 시점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시각 우위의 사회에서 이미지의 유혹과 싸우려는 노력, 이미지의 힘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때 관객의 사진전 관람의 유희도 비로소 가능해지지 않을까.
#저자 약력
崔演河, 1974년 전라북도 장수 출생. 전시기획자, 사진비평가. 도래할 징표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되도록 많은 시간을 미술현장에서 비평과 글쓰기, 전시기획, 강의에 할애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사진축제>(2008), <사라 문>(2009), <델피르와 친구들>(2010), <현대사진의 향연-지구상상전>(2011) 등 50여 회의 전시를 기획했고, 대안공간 에서 전시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사진의 북쪽』, 공저로『경기미술_20Artist & Critics 』각 5권(2008)과 6권(2009)이 있다. altcurat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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