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광명성 2호) 발사 소식을 우연히 오사카(大阪)의 공항에서 접했다. 일본에서 북한이 정치적 실체라기보다 ‘막연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처럼 묘사된 것은 훨씬 전부터이기에, 호들갑에 가까운 일본 미디어의 북한 관련 보도는 차라리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근 2년간 남북 간의 긴장 고조를 불사해온 한국 정부 당국자들의 면면을 보도에서 접하며 재삼 깊은 한숨을 내쉰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돌이켜보면, 이 책의 원고가 집필된 2009년부터 2011년 중반까지의 시기가 한중일 및 동남아시아에 실로 다사다난한 시기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반도에만 한정하더라도, 책 발간 직후의 김정일 사망은 차치하더라도 대번에 떠오른 일이 2010년의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이다. 최원식의 표현을 빌리면 그 해의 “접종(接踵)하는 흉보(凶報) 중에서도 최악”(49면)이었다 하겠다. 사실 이 2년 반 사이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을 꼽아보자면 마땅히 여기 허락된 지면을 다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 중 이 책에서는 동아시아를 정리할 73개의 키워드를 선별해 정리했다. 이 ‘수상한 시절’을 지내온 우리에게 이들을 복기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은 이른바 동아시아론에 대한 두터운 사색을 긴 호흡으로 서술한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늘상 접하는 뉴스, 상품, 혹은 냄새까지도 포함해 귀로, 눈으로, 혹은 코와 입으로 마주하는 동아시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보아야 할지 모색한 책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접하는, 그러나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무심히 넘어가기도 쉬운 사건, 현상, 인물, 개념 등을 다루어 ‘내 주위의 동아시아’를 풀어주는 해설서라 하겠다. 책의 전반적 구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망라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4개의 부로 나누어, 각각 동아시아 전반을 종관하는 주제들 및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각각에 대한 각론을 다루는 형태를 취했다. 여행 및 학회 참석 등에 즈음한 수상 등도 포함해 분량이 제한된 짧은 칼럼을 바탕으로 꾸려진 책이기에, 그때그때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룬 글의 비율이 높다. 독자에 따라 ‘더 자세한 설명’이 없음이 아쉬울 수는 있으나, 기민한 글쓰기와 압축적 서술을 시도한 점은 이 책의 강점 중 하나다. 특히 2011년 동일본(東日本)대지진 이전 집필된 일본의 반(反)원전운동 현황 소개 칼럼부터 동일본대지진 직후의 사색과 분석으로 이어지는 편집(189~201면)을 따라가노라면, 사태 이전의 ‘우려’가 어떻게 그 이상의 처참함으로 현실화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난국을 타개할 모색들이 어떻게 진행되어갔는지를 훑어볼 수도 있다.
 이 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주변과 변경에 대한 관심 및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는 자세다. 자이니치(在日), 오키나와(沖蠅) 등 국민국가의 주변에 위치하면서 역으로 국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청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은 동아시아 담론의 확장과 더불어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부분일 터이다. 이에 더해 그간 동아시아에 관한 논의가 동북아시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종종 결락되기 쉬운 동남아시아까지를 시야에 넣었기에, 앞으로의 동아시아를 전망하고픈 독자들에게 요긴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제국의 교차로에서 탈제국을 꿈꾸다』(2008)를 비롯해 편자들의 기존 작업이 어느 정도 축적된 바가 있으나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는 이를 좀 더 가볍게, 그리고 시의성 있게 다룬 버전이라 하겠다. 또한 수록된 글들이 주로 최근의 정세, 사건, 문화적 흐름 등을 다루고는 있으나, 그 저변에 위치하는 역사적 맥락 및 그에 대한 인식이 민족주의의 발흥 등을 통해 현재의 사회·문화현상과 어떻게 이어지는지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점도 주목에 값한다. 단 부연하자면, 수록된 칼럼들이 대체로 시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나 각각의 키워드를 평이하게만 설명해주는 글이라 하기엔 다소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기에,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사회·문화 등에 대한 소양이 많지 않은 독자에게는 녹록지만은 않을 수 있다.
 다른 한편 책 전반에 걸쳐 중국과 일본을 위시한 해당 지역의 ‘국지적’ 사안 설명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개별 지역 서술을 동아시아라는 단위 설정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와 엮어 조금 정리해보자. 이 책의 궁극적 지향점인 상호 이해와 존중에 터한 동아시아의 구축은 단순히 각 국가들의 산술합, 혹은 그 하부단위로서의 ‘지역’들을 한데 묶는 개념단위의 설정에 그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물론 그에 앞서 동아시아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그만큼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며, 수많은 파열을 내장하고 있다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가까운 150여 년의 역사만 일별해보아도 동아시아는 기실 연대를 위한 기반이기에 앞서 역설과 모순으로 점철된 공간이며 이념이었다. 이를 가로지르는 역사와 기억의 갈등, 여전히 계속되는 힘과 사상의 경합들은 현재진행형인 동시에 곧 도래할 문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중국과 동아시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놓고 보면, 최근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고 점차 커지고 있는 문제다. 센카쿠(尖閣)/댜오위다오(釣魚島)나 및 스프래틀리(Spratly)/난사(南沙)군도 영유권 분쟁에서 보듯 중국의 동향은 종종 인근 국가들의 우려와 결합해 국제적 긴장을 자아내곤 한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동아시아의 공생에 그만큼 중국이 큰 역할과 책임을 갖고 있음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한편, 기실 중국의 본격적 동아시아 개입을 통한 지역질서의 거대한 변동이 다가옴을 절감케 한다. 이제는 단순히 동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무관심’을 탓하기보다, “중국이 정말 아시아에 관심을 기울이면 어찌할 거냐”는 한샤오궁(韓少功)의 날카로운 반문(126면)을 염두에 두며 중국의 동아시아 개입 증대를 실체적으로, 그러나 비판적으로 인식하면서 아시아를 타자화한 일본의 전철과는 다른 길을 모색하는 일이 긴요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내가 만난 동아시아’, ‘실감할 수 있는 동아시아’를 이야기하는 일이 ‘도래해야 할’ 이념형으로서의 동아시아로 가는 길을 곧장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은 사상/방법으로서의 동아시아를 궁구하는 일과 더불어 그에 다가가기 위해 불가결한 작업이다. 더구나 이 책의 많은 필자들이 논하고 있듯, 동아시아의 냉전 구도가 형성된 이래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중요 행위자로서 위치했던 미국을 상대화하는 작업, 그리고 책의 머리말에서 역설하듯 ‘한반도 분단 체제의 평화적 극복’을 위해 동아시아를 배우는 일은 종요롭다. 더 가깝게는 이제 완연히 우리의 이웃이 된 동아시아 출신의 이주민들과 공생할 길을 찾기 위해서도 한국과 동아시아, 혹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좁아졌는지, 그러나 아직 얼마나 더 좁혀져야 할 부분이 많은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단, 그러한 필요성을 환기하는 이 책에서, 냉전의 유산에 대한 비판적 움직임, 또는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마주하고 있는 심각한 사회 불평등 심화에 맞서 진행 중인 각국 간 사회연대의 운동에 대한 서술을 상대적으로 많이 찾기 어려웠던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주제와 맞닿은 체험을 간단히 덧붙인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별다른 계획 없이 여행 차 서귀포를 걷던 중 예상치 못한 살풍경을 마주했다. 강정이었다. 몇 층짜리 건물 높이는 됨직한 공사장 벽, 그리고 그 옆을 수놓은 플래카드들을 마주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각각 쓰인 “힘내라! 오키나와, 괌, 하와이, 제주-군사기지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가슴을 울렸다. 길 곳곳에 적힌 해군 기지 반대 구호를 마주하며 걷고 있자니, 친구에게 일본에 큰 지진이 났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에 큰 지진이 나서 곳곳이 침수되었다기에 처음에는 그저 일본에 드물지 않게 일어난 강진 중 하나로만 이해했다. 그러다 얼마 후 버스에서 지진 소식을 전하는 라디오 뉴스를 접했다. 첫 소식이 자이니치 제주도민 동향단체의 동향을 전하는 지역 뉴스였다. 오사카에 있는 동향단체 본부가 동북지역 출향자들의 안부 확인 및 피해상황 파악에 나섰다는 보도였다.
 우연의 조합치고는 기묘한 편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 날의 기억이 가시지 않았다. 그 가운데 ‘동아시아라는 렌즈로 무엇을, 어떻게 더 잘 볼 수 있을지’를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약하자면, 바로 이 물음이 이 책의 발간 배경 및 목적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정 해군기지는 주지하듯 동아시아 냉전의 재편 및 중미 간 경합과 맞물려 있다. 다른 한편, 단순히 일본의 국내 문제에 불과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는 동일본대지진의 한 켠에는 제주가, 나아가 동아시아의 구 식민지가 겪었던 민족이산 및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흔히 국내 문제로 치부되기 쉬운 역사적 사건들을 더 폭넓은 맥락에서 사고하고자 할 때, 예컨대 4·3의 배경에는 해방 후 급속도로 귀향한 귀환자의 흐름이 있었고, 국가권력의 대규모 학살을 겪으며 일본으로 되돌아간 ‘선회도일(渡日)자’들 가운데 일부는 송금을 통해 전후 지속적으로 일본-남한 간 경제 네트워크의 한 축을 담당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비단 제주뿐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만주에 남은 조선족과 다시 한반도 사이를 다시금 활발히 있는 인적·물적 흐름은 또 어떠한가. 타이완을 필두로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세 격변이 가시화될 2012년 초입을 맞아, 이러한 현상들이 모두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자각하는 가운데 그에 대한 부지런한 공부가 부단히 동아시아의 내실을 채우고 다지는 작업에 접속되기를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