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김민기가 있다면 독일에는 볼프 비어만(Wolf Biermann)이 있다. 볼프 비어만은 “자신이 지은 시를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다. 그의 노래들은 “민요풍의 서정성과 쟁론적인 정치성”을 결합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통기타를 무기 삼아 경직되고 부패한 구동독의 현실사회주의라는 ‘용’에 맞서 싸우는 가수시인이며, 그의 기타는 그에게 “목검”이자 “6연발 자동소총”이다.
서독 함부르크 태생이었던 비어만은 스스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공산주의를 표방한 동독으로 건너가 동독을 자신의 ‘정치적 고향’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상적인 공산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동독의 현실사회주의 앞에서 그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비어만의 노골적이고 날카로운 비판은 동독 정부의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비어만은 이내 당국으로부터 작품이 금지되고 가택연금까지 되면서 슈타지(Stasi)동독 국가보안부의 집중감시를 받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작곡과 비판을 계속하였다. 비어만의 작품들은 동독에서는 출판금지 당했지만, 서독에서는 출판이 가능하여 그의 노래들은 이내 서독 운동권 학생들의 애창곡들이 되었다. 한편으로 동독에서는 비어만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몰래 복사하고 가사를 손으로 베껴 써서 숨죽여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만큼 비어만의 노래는 더욱 더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간결하면서도 재치 있는 노래가사는 민중들에게 다가가고 민중들과 함께하였다. 비어만은 가택연금 되면서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자 결국 동독 당국으로부터 서독으로 추방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로써 비어만은 자신의 고향으로 추방당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이념들의 대립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고수하고 비판정신을 굽히지 않은 비어만은 ‘저항의 상징’이자 ‘독일 분단의 상징’이 되었다.
이 책은 비어만의 주요 작품을 조목조목 따라가면서 그의 작품에 담긴 비판과 그가 살아온 삶의 자취를 따라간다. 더불어 류신은 비어만 자신의 증언과 동시대인들의 증언이나 기타 자료들을 적절하게 인용하면서 비어만의 작품에 깃든 사상의 흔적을 되짚어 가는데, 류신은 비어만을 역사적 ‘상징’이나 하나의 ‘기념비’로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하고 역동적인 한 개인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아울러 비어만에게 영향을 끼친 문학적 선구자들이자 ‘큰 형님’들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와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도 함께 조명한다. 브레히트와 하이네의 정치적 미학은 비어만의 작품 활동에 형식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은 직접적으로 이들 작품의 인용 및 패러디의 형태로 비어만의 작품에서 그 자취를 드러내고 있다. 독자들은 비어만이 어떤 문학적 풍토 위에 성장하고 활동하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비어만의 작품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독일 문학사적 전통의 중요한 한 측면까지 접하게 된다.
이 책은 비어만과 한국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더욱 더 의미를 갖는다. 비어만은 한국처럼 이념의 대립에 의하여 분단된 나라에서 살았으며, 그가 겪고 비판한 구동독의 억압적 체제는 1970년대 한국의 유신체제 군사독재와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비어만이 독일의 김민기라면, 김민기는 “한국의 밥 딜런(Bob Dylan)”인데, 이는 비어만이 김민기에게 붙여준 호칭이다. 비어만과 김민기는 역사적 배경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저항의식을 담은 노래를 짓는다는 점에서도 유사하고 실제로 직접적인 친분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비어만의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비어만과 우리나라의 정치적 저항시인 김지하 그리고 김민기의 작품들을 비교하여 각각 시대적 배경 속에서 어떤 의미와 특징이 있는지를 조명한다. 김민기와 김지하의 작품들과 함께 읽는 비어만의 시들은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독자들은 비어만의 작품세계뿐만 아니라 김지하와 김민기의 작품세계도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차이를 통하여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된다.
나아가 비어만과 한국은 또 다른 측면에서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데, 그것은 2005년의 내한공연이다. 이 책은 내한공연 때 비어만이 부른 노래들을 소개하고 설명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비어만과의 대담 기록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비어만과 한국과의 관계를 맺어 주고 있는 책의 후반부는 살아 있는 시인의 숨결까지 느끼게 한다.
비어만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공산주의 국가 동독을 조국으로 택하고 당국으로부터 출판금지와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더 나은 사회, 진정한 공산주의 사회를 위하여 동독의 일그러진 현실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는 서독으로 추방된 후에도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지켜나갔다. 그런데 독일의 통일과 함께 냉전체제가 종결되자 비어만도 ‘공산주의의 실험’이 실패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꿈과 이념을 결코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아직 “미완의 기획”으로 남는다. “변하는 자만이 변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따라 변화하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이상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고, 통일을 이미 앞서 경험한 ‘선배’로서 그가 한국에 남기는 조언은 깊은 통찰이 깃들어 있다.
『장벽 위의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은 독일 시를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에게도, 독일 역사와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류신은 각 작품을 차근차근 심도 있게 분석하고 여기에 또 풍부한 자료들을 곁들인다. 그리고 비어만의 언어 못지않게 섬세하고 대담한 그의 필체에 의하여 비어만의 작품세계와 그 안에 담긴 비어만의 역동적 삶과 사상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런데 비어만은 자신을 스스로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라 칭한 만큼 그의 시는 “노래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비어만의 노래는 국내에서 발매되고 있지는 않지만, 비어만과 김민기의 노래들을 찾아보며 이 책을 읽는 것은 이 노래꾼들의 생생하고 재기발랄한 작품 세계에 다가가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