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소설가 김용성(金容誠, 1940~2011)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한 문예지의 청탁을 받고 인터뷰를 한 것이 불과 두 달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선생이나 나나 그런 갑작스러운 이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선생은 노작가로서 느끼는 허무함을 이야기했다. 세계를 바꾸겠다는 투지로 문학을 시작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사라지고 어떤 허무함 같은 것이 생겨났다는 말이었다. 이 세상에 정의가 있는가, 문학으로 세상이 바뀌었는가? 50년 소설의 길을 걸으며 확신은 물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선생은 당장 자신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는 싸움을 계속 이어가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렇게 오늘의 허무함을 이긴다는 것이었다.
한 계절이 흘렀지만 선생의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막 소설의 길로 들어선 제자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라고 생각하면 더욱 의미가 깊다. 하지만 어찌된 일일까? 선생의 당부를 떠올릴 때마다 맞닥뜨리는 것은 문학을 향한 투지가 아니라 슬픔이다. 불의한 세상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것과의 대결이 가능하겠냐는 체념에서 좀처럼 나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은 대화 중간중간에 “우리 세대의 작가들은”이라는 단서를 붙였을까?
박범신의 장편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읽는 내내 선생과 나눈 이 대화가 떠올랐다. 박범신 역시 머리말에서 “인류는 나치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의 문명에서 얼마만큼 멀리 걸어 나왔는가. 과연 발전했는가”라고 묻기 때문이다. 또 여기서 다루는 폭력이라는 주제가 이미 젊은 날의 여러 작품에서 이야기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작가는 세상에 대해 품은 최초의 의문으로 되돌아오고 만 것이다. 덧붙여 황석영의 근작 『낯익은 세상』을 이 작품과 함께 읽었는데 그 또한 “파국의 여러 징조가 보이는데도 꼭 잡고 계속해서 달려야”하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었다. 100년 만의 폭우로 모두가 상처받은 이 여름날,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같았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조로(早老)해버린 우리에게 “정말 아직도 살아있는 거냐?”황석영고 묻는 것이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폭력의 먹이사슬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에서 주인공 ‘나’는 ‘개 백정’ 아버지와 함께 산비탈의 무허가 건물에서 살아간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죽고 아버지는 “두들겨 패야할 누군가가 필요”했기에 개를 키운다. 손님 중 대부분은 근처 군부대의 젊은 장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먹을 개를 골라 몽둥이로 때리거나 불태우거나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직접 죽인다. 이렇듯 그에게 세상이란 거대한 폭력의 쇠바퀴로 굴러가는 곳이다.
이런 그에게도 어린 연인이 있었으니 바로 보랏빛 점을 지닌 소녀 ‘여린’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인, 여린의 아버지는 그와 딸이 더 가까워질 것을 염려해 무허가 건물인 그의 집을 허물라고 구청에 민원을 넣는다. 그러다 여린의 집에 원인 모를 불이 나고 그는 여린과 그 아버지를 구하러 갔다가 도리어 방화범으로 몰린다. 감옥에서 4년을 보낸 그는 오른쪽 얼굴이 일그러진 흉측한 화상을 지닌 채 전국을 떠돌며 노숙자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손바닥에 말굽이 돋아난다. 그는 이유 없이 때리는 취객을 그것으로 살해한 뒤 오래전 떠났던 옛 동네로 숨어든다. 그곳에서 명안진사라는 종교단체를 운영하는 이사장을 만나고 그가 운영하는 샹그리라 오피스텔에서 여린과 재회한다.

소설의 주된 내용은 ‘나’가 이 종교단체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에 맞춰져 있다. 사이비 종교단체가 등장하는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보듯 명안진사는 정치권과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신도들의 재산을 빼앗으며 여신도들을 성적으로 유린한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밝혀지는 비밀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가 저지르는 살인에 있다. 주인공은 언제나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고 살인 역시 정당방위쯤으로 미화되는 여느 텍스트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폭력성을 부추기는 말굽과 함께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을 살해한다.

이사장의 심복들을 죽이는 것은 추적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상사지만 나머지는 일견 의외다. 요양원을 빙자해 노인들을 수용하고 있는, 명안진사의 부속기관인 제석궁을 찾아가 “쓰레기를 분류 처리하는 기분”으로 노인들을 때려죽이는 것이나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린을 살해한 뒤 피를 빨아먹는 것이 그렇다.

거두절미, 이것은 한마디로 살인의 기록이다.
유쾌하지 않은 기록이 될는지 모른다.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다. … 중략 …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받더라도 나는 살인이야말로 언제나 최고의 윤리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윤리성의 마지노선일 수 있다고. 그리고 살인도구로 무엇을 사용했든 죽이는 것은 손이며 손은 마음에 따른다. 마음이다.

마음이야말로 윤리성이 최후로 들어가 누울, 어둡고 깊고 향기로운 아기집이지 않은가.

인용한 부분은 작가의 말이 아니라 소설 속 ‘나’의 독백이다. 이십대 후반 혹은 갓 서른인 주인공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그런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는 언어사용이나 내적독백이 잦다. 그가 이동도서관을 즐겨 찾는 인물이고 한때 작가를 꿈꿨다는 설정으로도 어색함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는다. 추적과 살인의 과정보다는 이렇듯 주인공에게서 ‘나’가 아닌 작가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들려올 때 가장 아슬아슬한 긴장을 느낀다. 작가가 그런 불균형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간절했다는 것 아닌가. ‘나’가 벌이는 엽기적인 살인 행각 역시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세상이 폭력의 먹이사슬로 연결되어있다면 ‘나’는 과연 어느 위치에 놓여있는가.
후반부에서는 ‘나’의 말굽이 본래 이사장의 전투화에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나’는 자신의 폭력성을 부추기는 말굽에 저항해보지만 말굽은 그의 팔까지 먹어 들어간다. 결국 그는 말굽과 “한 몸뚱어리”가 되어 이사장의 폭력을 계승한다. 그리고 말굽이 유난히 기세등등하던 날, 그는 폭력의 먹이사슬 가장 하단부를 차지하고 있는 병든 노인들을 처단한다.
헌데 ‘나’와 이사장의 말굽은 생겨난 위치가 다르다. 이사장에게는 전투화였지만 ‘나’에게는 손바닥이다. 이사장은 전투화에 불을 질러 말굽에게서 벗어났지만 ‘나’는 스스로 불에 뛰어들거나 팔을 자르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말굽이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상징한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지 않은가. 이 미친 세상과 한 몸이 되어, 그로부터 떠나는 건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초상인 것이다.

그 계절, 당신은 왜 그리 슬펐던가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부분은 뇌수를 핥거나 사람의 골을 부수는 하드고어의 장면들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소설 속 세상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읽히는 것-그것이 소설이 채택한 우화적 요소 때문일지라도-이 아쉬웠다. 세상이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나뉜다는 것은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책장을 덮은 뒤 며칠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약점이 많은 관점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나누어 들여다보지 않으면 세계란 얼마나 불가해하고 손쓸 수 없는 대상인가? 모든 혁명가들의 구호가 선명하고 단순한 것은 세상이 그래서라기보다는 그래야만 싸움의 대상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지라기보다는 행동을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그러니 이 “살인에 관한 긴 보고서”가 최종적으로 말하는 것은 도리어 사람을 살리자는 메시지다. 청춘이여, 혹은 청춘을 살아가는 작가들이여, “고막을 쇠꼬챙이로 뚫려 듣지도 짖지도 못하는 조용한 개들”처럼 머물 것인가, “뼈가 삭아 없어질 때까지” 말굽과 함께 죽어갈 것인가. 아니면 명인진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녀 ‘현주’처럼 살인자들을 동굴에 가둔 채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가.
소설의 결말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계몽과 거리가 멀다. 지난 계절, 은사도 네 글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지 않았다. “이제 자본주의는 세계의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는 황석영의 고백은 역설적인 안도감을 준다. 말굽을 몸속에 감추고 성장한 우리 세대가 무엇도 쉽게 선택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탄생 이전부터 몸속 깊이 숨겨져 있던 슬픔”으로 울 것이며, “울어도 울어도 결코 덜어지지 않는 슬픔”으로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의 서문은 “갈팡질팡 고통 받고 있는 또 다른 젊은” 청춘들, “그들 인생에는 죄가 없다”는 말로 끝난다. 소설의 어떤 페이지보다도 절절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인생에는 죄가 없다면서 우리를 바라보는 당신들의 얼굴은 왜 그리 슬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