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서울이 도시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이 당황스러운 질문에 백이면 백 모두 서울은 당연히 도시라고 대답할 것이다. 심지어 혹자는 서울이 도시가 아니면 시골이냐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당연한 대답을 제목에서부터 반박하며 써내려간 한 권의 책이 있다. 이경훈의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다.

저자는 왜 서울이 도시가 아니라는
전제로 시작했을까?
예로부터 도시를 정의 내리기란 간단하지 않은 문제였다. 사람이 모여 촌락을 이루고 촌락이 점차 거대해져 가는 과정에서 어느 시점부터 도시라 불러야 할지 모호한 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군(郡)에서 시(市)가 되는 기준을 보면 ‘대부분이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인구 5만 이상이 될 것’이라 명시하고 있다. 이는 도시형성에 있어 주된 기준이 인구와 더불어 도시의 형태가 포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바로 이 도시의 형태에서부터 서울에 대한 문제점을 피력하고 있다. 즉 도시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의 결핍으로 서울은 도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 권의 책에 도시문제를 가득 채우는 일은 간단하면서도 또한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도시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저자의 서울에 대한 사랑은 깊으면서도 예리하다. 나 역시 책을 읽는 내내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붙들고 저자가 이야기한 서울의 문제를 토로하고 싶어질 정도로 그 답답함을 공감했다. 하지만 역시 이 책의 절정은 후반부에 나오는 ‘쾌적함’에 대한 비판에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시골에서나 누려야 될법한 쾌적함을 도시에서 찾으려 하니 도시가 제대로 도시답지 않게 되어간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그전까지 맞장구를 치며 읽어왔던 독자들은 이쯤에서 물음표를 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답은 이미 책의 시작부터 책 전체에 근간을 이루고 있는 ‘걷는 즐거움’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즐거움이란 자연을 추구하는 녹지 속에서가 아닌 지극히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도시적인 재미를 말한다. 이를테면 도시의 볼거리나 상점가의 구경거리들, 공동체 이웃들을 만나게 되는 우리 주변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쾌적함을 위해 생기는 녹지나 방음벽, 나아가 마을버스와 아파트의 단지화로 생기는 폐쇄성까지 확대되어 도시적인 걷기를 방해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진정 서울은 걷고 싶은 도시인가?’라고 반문해보면 이 도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명확해진다는 이야기다.

서울은 도시다.
그것도 인구 천만의 대도시다.
저자는 제목에서 서울이라 말했지만 책에서 다룬 내용들은 우리나라 여타 대도시들에서도 고스란히 보이는 모습이다. 결국 이 책은 우리나라 도시들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우리나라 도시가 걸어온 역사, 문화를 비추어 보았을 때 저자가 언급한 다른 선진국들의 도시(특히 뉴욕New York)와의 차이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과감한 표현보다 ‘서울은 다른 도시다’라는 식의 접근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우리나라는 계급사회였던 조선시대가 이후 열강의 지배를 받고 전쟁을 겪었다.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이기주의는 여러 사회문제가 되어 도시에도 그대로 표출되어 왔다. 더 크게 더 많이 붙여야만 했던 상점간판들은 오늘날까지도 대표적인 이기주의의 한 단면으로 남아있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도시문제는 외형적인 변화와 더불어 개개인 의식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차가 많이 막힌다고 도로를 더 뚫거나 넓힐 일이 아니라 자동차를 두고 나와야 하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결국 대중교통의 발달로 이어지고 거리를 승용차로 이동하는 것보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더 즐겁다는 사실을 일깨워, 자연스레 걷고 싶은 거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저자의 말대로 무조건 녹지를 늘려 나가는 도시가 아닌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나누는 문화가 확립되는 도시가 된다면 궁극적으로 자신의 집안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꾸미는 일에도 자발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즉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이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것처럼.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금 서울이 당면한 여러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룬 신선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물론 도시라는 거대한 유기체를 뜯어 고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늘부터라도 조금 여유롭게 다니면서 마을버스를 타는 대신 직접 거리를 구경하며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 역시 서울이 도시다운 도시가 되길 바라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