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 히로키

『현대일본사상』이라는 제목을 접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현대’는 언제부터를 말하는 것이고, 문화비평이나 잡지기획 등을 해오던 저자사사키 아쓰시(佐?木敦)가 왜 ‘사상’ 책을 썼을까.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사상이란 무엇일까.
의문의 연속은 책을 펼치기 전에 책에 대한 거부감 혹은 거리감을 들게 만든다. 이러한 독자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저자는 책에 대한 해명으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이 책의 시작은 1980년대로 그 까닭은 1964년생인 저자가 본격적으로 사상관련 서적을 접하기 시작한 시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연유와 더불어 1980년대가 그 이전의 ‘일본의 사상’과 큰 단절을 보이는 시기라고 과감하게 단정 짓고 그 이전을 ‘니혼(日本)의 사상’이라 한다면 1980년대 이후를 가타카나(かたかな)를 사용하여 ‘닛퐁(ニッポン)의 사상’이라고 구별 짓는다.(그렇다면 1980년대부터가 현대인가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원서의 제목은 단지 『일본의 사상(ニッポンの思想)』이었으며, 현대는 옮긴이가 붙였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을유문화사｜2010

저자는 사상가, 학자, 연구자라는 용어보다 플레이어(プレイヤ?)라는 가타카나로 된 용어를 대신 사용한다. 책의 주된 내용 또한 1980년대부터 각 시대 플레이어들의 사상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가 거론하는 주요한 플레이어로는 1980년대의 아사다 아키라(淺田彰),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고, 1990년대에는 후쿠다 가즈야(福田和也), 오쓰카 에이지(大塚英二), 미야다이 신지(宮台?司), 그리고 2000년대는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등이 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사상시장(思想市場), 즉 책이 팔린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플레이어들이 과연 각각의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하스미 시게히코와 가라타니 고진과 같이 세대가 앞서는 이들이 왜 하필 1980년대에 들어가 있는지, 또 2000년대는 과연 저자의 주장대로 아즈마 히로키의 ‘독무대’인지 등등 동의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플레이어 선정으로 이 책은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재미있고, 다가가기 쉬우며 새롭다. 저자는 처음부터 사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깊이 파고들지 않을뿐더러, 그것은 저자에게 ‘버거운 일’이라고 당당히 밝힌다. 이와 같은 저자의 대담하면서도 솔직함은 애초에 책에 대해 가졌던 거부감, 거리감을 오히려 호감으로 바꾸게 하고 난해한 사상론에 진입할 각오를 하고 책을 손에 든 독자를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저자는 들뢰즈(G. Deleuze, 1925~1995)나 데리다(J. Derrida, 1930~2004)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쓴 책들도 ‘일본의 사상’에 넣어버린다. 하여 원서 제목 그대로의 한자로 표상되는 ‘니혼’이 아닌, 아시아와의 연결성이나 전통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주로 외래어를 표기하는데 쓰이는 가타카나로 표기된 ‘닛퐁의 사상’에 대한 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플레이어들의 출자와 인물평, 플레이어들의 서로에 대한 비판 등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저자의 장점을 살린 에피소드들은 마치 강준만교수의 <인물과 사상>을 연상시키는 재미를 가져다준다. 옮긴이의 친절한 각주를 통해 플레이어들의 어떤 책들이 한국어로 변역되었는지도 알 수 있어 책을 읽고 난 뒤 생기는 지적허기를 찾아 나서기도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