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세계화 혹은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현실에 대한 침묵을 강요하던 현대미술을 반성하며 1969년 결성된 ‘현실동인’ 오윤, 오경환, 임세택은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시는 무산됐고 그 후 침묵의 강요는 더해졌으며, 현실은 더욱 척박해졌다. 1970년대 박차를 올리던 ‘한강의 기적’을 통해 한국사회는 근대화에 한 걸음 다가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적의 주체인 민중은 기적을 향유하지 못하고 소외됐다. ‘현실동인’이 제기했던 침묵하는 현대미술에 대한 반성적 태도는 1979년 창립된 ‘현실과 발언’으로 이어진다. 오윤(吳潤, 1946~1986)은 한국 현대미술 역사의 전 과정을 함께하며 전통과 현실에 대한 자기형식을 구축했다. 그리고 1980년부터 타계 직전인 1985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그것을 발산했다.

사십 년의 짧은 생애와 죽음 앞에서 <칼노래>, <춘무인 추무의>, <아라리요>, <도깨비> 등의 대표작을 쏟아낸 점은 남은 이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 아쉬움은 오히려 오윤에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아쉬움은 오윤을 그 자체보다 ‘신화’로 보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신화는 현실을 왜곡하고 내면의 많은 이야기를 박제화시켜 오히려 생명을 박탈한다. 『오윤 전집』은 신화 속에 갇혀 있던 오윤을 현실로 꺼내어 재조명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오윤 전집』은 총 세 권으로, 먼저 『오윤 전집1: 세상사람, 동네사람』은 동시대 혹은 그 이후의 평자들과 오윤 스스로가 예술과 삶을 기록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오윤이 남기고 간 글과 말에 대한 기록은 되새겨 봄직하다. 「미술적 상상력과 세계의 확대」와 「좌담: 오늘의 우리에게 굿은 무엇인가」에서는 자신이 어떤 태도로 세계를 바라보고 형상화하는지를, 「아무것도 없는 빈 그릇」, 「행복의 모습」에서는 오윤의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언어를 경험할 수 있다. 오윤의 습작시절 작품 및 드로잉, 그리고 메모를 통해 그가 민중미술의 대표적 작가가 되기까지 예술적 세계관의 형성과정을 추적한 조인수의 「오윤, 민중미술을 이루어내다」는 수작이다. 조인수의 글에서 다루는 멕시코 민중벽화와의 영향관계는 제3세계 미술에서 한국의 역할과 위치를 점검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오윤 전집2: 칼을 쥔 도깨비』와 『오윤 전집3: 3115, 날것 그대로의 오윤』은 회화, 판화, 조소, 판재, 드로잉, 노트뿐만 아니라 벽돌공장 설립, 운영에 관한 기록, 직접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동래학춤 무보>까지 그의 예술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아직 진위 여부에 논란이 있지만 <동래학춤 무보>는 오윤과 춤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주요자료다. 오윤의 춤에 대한 관심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인물과 배경을 재구성한 초기작품인 <탈춤> 연작에서부터 타계 직전 제작한 <춘무인 추무의>, <칼노래>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주요 모티프였다. 이번 전집의 백미는 칠백여 점의 드로잉이 수록된 3권이다. 드로잉의 세부적인 표현, 선의 미묘한 뉘앙스를 통해 평생 오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의 단초, 고민, 문제의식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의 전모를 목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간 회화, 판화에 한정하여 오윤을 평가했다면, 3권의 드로잉은 그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오윤, 칼노래(1985)


오윤이 세상을 등진 지 벌써 이십사 년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의 예술적 성과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에 그의 짧은 생애가 더욱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다. ‘오윤’이라는 이름은 이미 신화가 됐다. 그러나 신화가 신화로 끝난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며, 매혹적이지 않다. 신화를 에워싸는 껍질을 벗겨 그 자체를 목도할 때 비로소 그에 대한 비판의 소리와 온당한 평가도 나올 것이다. 『오윤 전집』은 그 첫걸음이 아닐까. 이 전집을 통해 많은 연구자들이 오윤을 죽이고 있는 신화의 허울을 벗겨내기를 미약하게나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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