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처럼 경제와 소비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던 때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물성이라는 고유한 특성으로 언제든 이익 창출을 위한 재화가 될 수 있는 미술이란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알맞은 예술 장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끝 모르게 경신되는 최고 낙찰가 미술품의 순위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골동품점에서 샀던 단돈 몇 십 달러의 그림이 기백 억의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1956) 작품으로 탈바꿈되는 동화 같은 뉴스를 접하면서 미술작품과 가격의 관계를 자연스러운 등식으로 인식한다.

심상용 교수의 저서 『시장미술의 탄생』은 우리가 이렇듯 ‘자연스럽게’ 생각해왔던 미술과 가격의 정치학이 시장논리 속에서 어떻게 조종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인류가 예술에 요구해왔던 본래의 미학적 가치가 얼마나 퇴색되고 퇴보하고 있는가에 대한 신랄한 보고서이다. 우선 ‘미술시장’이 아닌 ‘시장미술’이라는 용어가 생소한데, 이에 대해 저자는 “‘시장미술’은 ‘미술시장’의 현재와 같은 탁월한 작동이 아니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과도하게 시장화된’ 예술의 유형으로, 현대 미술의 새로운 학명이기도 하다”(19면)라고 설명한다. 즉 시장미술이란 언제나 ‘화폐’로 전환될 준비가 되어있고, 또 그러기 위한 미술이라는 것이다.

ⓒ아트북스 | 2010

 
또 시장미술은 동시대 현대미술에서 최고 낙찰가 작품들의 주인공들인 일련의 스타작가들을 예술에서 기대할 수 있는 미적가치의 기념비적 표제처럼 군림시키면서, 그 과장된 명성을 달콤한 화폐로 교환시킨다. 그러나 이 책은 이것이 큰손으로 알려진 몇몇 콜렉터, 거대 아트페어와 거대 화랑 그리고 저널리즘과 평론계라는 미술제도권 사이의 치밀한 공생이 만들어낸 소수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일 뿐이라고 꼬집는다. 시장미술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예술에 대한 시장의 과잉된 간섭이 오직 이익창출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일개 도구로서 미술을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걸작’이라는 개념은 ‘가격’이라는 개념과 비례할 수밖에 없지만, “가격이 매우 신뢰할 만한 근거로 간주되는 것 자체가 미적가치란 개념이 무의미해졌음을 방증하는, 전적으로 시장적인 발상”(159면)이 된다. 더욱이 이른바 블루칩 작가들의 노골적인 비지니스 마인드 자체가 마치 하나의 예술적 제스처처럼 받아들여지고, 이것은 또 현대미술의 최신 흐름으로 한국을 비롯해 제3세계로 확산되면서 무비판적으로 학습되고 추종된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시장미술의 권위 앞에서 진정한 미적성취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사소한 ‘차이’, ‘약간의 충격’, 그리고 공명하는 ‘국제적 명성’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타락한 예술은 어떻게 복원될 수 있을까? 저자는 최근의 ‘글로벌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급속한 미술시장의 재편이 이를 극복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시장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을 “시장이 결코 생산해낼 수 없는 어떤 상이한 가치”(305면)를 재건함으로서 되찾는 것인데, 예술 고유의 가치가 조성될 수 있는 ‘시티즌십’의 발현, 즉 잃어버린 예술적 가치, 그것을 재건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예술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시장미술로 초래된 예술의 위기 극복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안이 저자가 설명한 시장미술을 둘러싼 거대하고 촘촘한 그물을 벗어나기에는 다소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술이 지닌 미적가치의 비세속성 자체가 시장의 교환가치로 애호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미술이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시장미술’이 될 준비를 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스스로 경계할 수 있는 내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비평의 역할을 제대로 회복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장미술의 탄생』은 현대미술에 관한 매스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몇몇 이름들과 그들의 작품들에 대한 매우 신랄한 분석이자, 그러기에 오늘의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할 훌륭한 안내서이다. 이 책을 통해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우리 눈앞에 너무도 또렷하게 나타난 미술작품 뒤에는 결코 생각하지 못한 보이지 않는 손이 제웅 인형처럼 그것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그들을 수용했는가’에 대해 뼈저린 반성 혹은 성찰과 마주치는 것은 이 책이 주는 아주 당연한 결과이자 선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