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출간 2주 만에 100만부 돌파”, “한국어판 거액 선인세 경쟁” 등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1Q84』는 장편소설로는 같은 작가가 『어둠의 저편(アフターダーク)』(2004) 이래 거의 5년 만에 선보인 작품이다. 올해 2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서 열린 예루살렘상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계란과 벽’의 비유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비판했던 이 작가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일본 국내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2006년 3월 일본의 국제교류기금이 세계 각국의 하루키 작품 번역자를 일본에 집결시켜 「하루키를 둘러싼 모험-세계는 무라카미 문학을 어떻게 보는가」심포지엄 내용은 동명의 책으로 간행-필자 주라는 심포지엄을 개최했을 때도 드디어 일본이 국가적으로 노벨문학상 획득 경쟁에 나선 것이 아니냐며 화제를 모았을 정도다.

400자 원고지로 1984매에 달했다는 이 장편소설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1984년』(1949)이 예견한사회를 실제 일본의 1984년의 상황과 중첩시키고 있는데9와 Q는 둘 다 일본어 발음으로 ‘큐’-필자 주, 헬스클럽 코치로 근무하는 독신 여성 아오마메(青豆)와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소설가 지망생 텐고(天吾)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전 2권, 각 24장에 걸쳐 번갈아 진행된다. 아오마메는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
리면서 그녀가 살고 있었던 1984년의 현실과 미묘하게 다른 1Q84년의 세계로 들어간다. 텐고 역시 후 카에리(ふかえり)라는 17세 소녀가 쓴 『공기 애벌레(空気さなぎ)』라는 이상한 제목과 내용을 가진 소설을 고쳐 쓰다가 이상한 사건에 말려들며 자신의 평온한 생활을 상실해 간다.

두 사람은 열 살 때 같은 초등학교의 같은반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으나 그것을 전하지 못한 채 헤어져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생각을 잊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토록 이성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교차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안식처를 주지 않고
폭력의 현장, 폭력을 낳고 폭력이 낳는 어떤 ‘어둠’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모두가 어떤 폭력의 희생자인데 그 희생자가 가해자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죄를 저지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격리하는 벽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가설 속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가설이 있고, 체제 속에 반체제가 있고 반체제 속에 체제가 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는 거울과 같은 세계를 작가는 5년 만에 발표한 이 장편소설에서 유감없이 그려낸 것이다.

무라카미는 흔히 장편 『언더그라운드(アンダーグラウンド)』(1997)나 『약속된 장소에서(約束された場所で)』(1998) 등 1995년 도쿄에서 일어난 지하철 독가스 살포 사건인 이른바 ‘옴진리교(オウム真理教) 사건’을 취재한 작품에서 현실로 회귀했다고 지적된다. 그러나 그의 소설의 대명사였던 ‘감각적인 문체’는 이번 『1Q84』에서도 화려한 비유적 표현이나 온갖 사치품의 고유명사 등으로 여전히 살아 있는데, 작품은 전체적으로 지금의 시대 분위기 속에 인간의 생명들을 박아 넣은 듯 실감을 준다. 무라카미는 이번 소설을 출간하며 “나의 소설은『상실의 시대(ノルウェイの森)』(1987)를 제외하고는 이른바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그것은 소설 기법으로서의 이 작품의 특징을 설명한 말일 것이다. 황당무계한 이야기 내지는 환상적인 동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실은 현대 일본에서 지극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다. 요즘 일본의 젊은 작가의 작품들은 무라카미의 이번 작품처럼 텔레비전 뉴스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흉악한 범죄사건의 면에 천착하려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험악한 현실의 위안을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1Q84』는 전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요즘 한국의 이른바 ‘일류(日流) 소설’ 독자들도 아마 현실 위안의 픽션을 선호하는 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라카미의 이번 작품은 그들의취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의 독자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읽을지 기대가 된다. 인간에게 구제와파국이 어떻게 초래되고 초래되지 않는지를 밝히는작품 세계를 즐기기 바란다.

부기-미스테리 소설과도 비슷한 이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 소개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앞으로 이 작품을 읽을 독자들을위해 한 가지 안내를 하자면, 2권 13장에서 아오마메와 종교 지도자가 주고받는 대화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난해한 대목이다. 시간이 없는 독자들은 이 부분에 대한 이해는 포기하기를. 다만 끝까지 읽은 독자가 다시 읽고 싶어지는 대목도 이 부분일 것이다.

新潮社┃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