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唱)를 기본으로 하는 전통극적 장르로 대부분은 ‘남도 판소리’를 꼽지만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의 서도소리에도 유명한 배뱅이굿중요무형문화재 29호이 있다. 배뱅이굿에 대한 이해는 남도 판소리에 비해 일천한 편이지만 1900년경 평안남도 용강 출신의 김관준(金寬俊)이라는 대(大)광대가 당시의 무가, 잡가, 염불, 민요 등에 기초를 두고 창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을사조약 이후 미국에서 귀국한 도산 안창호가 평양에 대성학원을 설립할 즈음, ‘가객이라는 직업은 사회에 이익을 주는 교화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김관준의 예술정신, 광대관을 일깨워 이에 김관준이 미신타파를 주제로 하는 배뱅이굿을 창작했다는 것이니 배뱅이굿은 태생에서부터 그 독창성이 두드러진다.

서도소리는 황해도 소리를 기본으로 삼고 경기, 강원, 함경도의 노래는 물론 남도민요 등도 자유롭게 응용하는 열린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 같은 자율성과 광범위한 응용의 범위는 시조 김관준에서 김종조/이인수, 이은관, 박준영으로 이어지는 사승(師承)관계에서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는 기풍이기도 하다. 더구나 서도소리는 황해도 및 평안도 일원에서 발생하여 분단 이후 서울과 인천 등지를 중심으로 전수되고 있어 사설(私說)과 가사가 현재의 표준어와 가깝고 사용하는 곡조 또한 각종 민요 등 친숙한 가락이 많아 가청 또한 용이하다. 즉 예술가의 창조적 변용을 작품 소통 구조 안에 내포하고 있음은 물론 대중적 소통 또한 유리한 기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난 5월 11일 서도소리 배뱅이굿보존회 인천시지회에서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1인창을 기본 공연형식으로 삼고 있는 서도소리 배뱅이굿을 극적으로 재구성하여 상연한 서도소리극 <배뱅이굿>은 배뱅이굿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위한 그 첫걸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새로운 시도는 배뱅이굿 창시자 김관준의 적통을 잇고 있는 이은관(李殷官) 창본을 기초로 했으되 대사를 좀 더 쉽고 평이하게 각색한 점이 돋보이며 서도소리 특유의 미묘한 장식음을 오히려 축소하고, 가청(可聽) 수위를 높여 좀 더 대중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는 점 또한 의미있는 시도라 할 것이다. 게다가 서도소리 명창은 물론 이수자, 문하생, 박준영국악원의 학생 출연자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근 50명에 이르는 대규모 출연진이 보여주는 무대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풍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리가 연극으로 재편되는 데는 사실 단순한 기술적 분창 이상의 연출력과 미학적 해석능력이 필요하다. 배뱅이굿은 ‘배뱅이와 상좌중의 사랑’과 배뱅이가 죽은 후 열리게 되는 ‘배뱅이 기밀굿’이라는 상이한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혼수예장을 받아놓고도 상좌중과 사랑에 빠져 상사 끝에 죽고 마는 배뱅이도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팔도의 진짜 무당을 제치고 배뱅이 혼을 불러내는 무격(巫覡)무당으로 인정받는 가짜무당 건달은 김관준으로 대변되는 소리광대의 특출한 현실인식이 반영된 뛰어난 인물이다. 이들 인물의 매력을 어떻게 십분 실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게다가 1인창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은 남녀 등장인물의 대사는 물론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등의 사투리와 팔도 무당의 기예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전천후 기량을 요구한다. 이에 이것이 분창되면 그 미적 기량은 단순한 평준화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매력적인 인물형의 창안과 단순화를 넘어서는 예술적 고려가 없이는 새로운 미적 차원의 소리극을 생산하기 어려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기와 소리는 사실 훈련과정이 상이하다. 기본적인 무대 표현능력은 갖추었다 하더라도 소리꾼이 연기를 겸하는 데는 수월치 않은 장벽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와 훈련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할 것이다. 중요한 첫걸음이 시작된 만큼 이에 대한 노력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특별한 기쁨도 있었다. 분단 후에도 열정적인 활동을 통하여 전승지를 벗어난 배뱅이굿을 지키고 확대해 온, 가히 배뱅이굿의 중시조(中始祖)라 할 수 있는 인간문화재 이은관 옹의 특별공연이 있었다. 이은관 옹은 구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이 소리극의 막간 순서에서 창작소리 <도미의 아내> 일부와 색소폰으로 연주한 국악 한 도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장난스레 틀니를 꼈다 빼기를 반복하며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데 이르러서는 타고난 놀이꾼의 역량도 확연했거니와 어린이 같은 천진함마저 느껴졌다. 오래 건강하셔서 그 같은 기쁨을 함께해 주길 바란다.

<배뱅이굿> 공연장면

이미지 제공_ 박준영국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