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열두 살 때부터 많은 사람들을 노래로 열광시키고 싶었지만 마흔일곱이 되어서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관객은 물론 심사위원조차 그녀의 얼굴, 몸매, 나이, 심지어는 일레인 페이지(Elaine Paige)영국출신의 뮤지컬배우와 같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 비웃음만 날릴 뿐이었다. 드디어 음악이 흐르고,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나는 꿈을 꾸었네 I Dreamed A Dream>이 흐르자 사람들은 전율한다. 천상에서 울려 퍼지는 듯 청아한 목소리가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니……’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를 통한 수잔 보일(Susan Boyle)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녀가 처음은 아니었다. 볼품없던 핸드폰 판매원 폴 포츠(Paul Potts)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 후 벌써 두번째 앨범을 들고 우리나라를 찾았다.

<브리튼스 갓 탤런트>는 종종 우리를 감동시킨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판타지가 이 프로그램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팝 아이돌Pop Idol>이나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등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세계 각지에서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독 이 프로그램이 눈길을 끄는 건, 우선 팝이나 춤 등 특정 분야에 한정된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다양한 퍼포먼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덕분에 12세 소년이 부른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애절한 소울에서부터 폴 포츠의 오페라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 터번을 두른 비보이 공연, 한국인 손수경의 전자 바이올린 연주까지 각양각색의 이벤트를 감상할 수 있다.

더구나 첫 오디션부터 마지막 우승까지의 과정이 온전히 중계되고, 우승자는 시청자 인기투표로 뽑혀 여왕 앞에서 공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보다 더한 현대판 신데렐라의 등극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이 신데렐라는 유투브(You Tube)라는 문명의 이기를 타고 전 세계인의 스타로 재탄생한다. 블랙번(Blackbur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외로운 여인의 사연이 우리 식탁 위 뉴스까지 등장하는 건 시간문제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새로운 신데렐라의 탄생을 기다리고 환호한다. 왜? 그 동화는 익히 알려진 데로 보잘 것 없는 소녀가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궁전무도회에 참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왕자님의 배필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 전부인데. 거기서 늘 우리가 방점을 찍은 것은 신데렐라의 우연과 행운이었다. 그런데 다시 되짚어 보자. 만약 새엄마와 언니들이 집 지키며 청소나 하라고 했다고 찔찔 짜면서 그 말을 따랐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꿈같은 행운을 얻은 대상에게 감히 ‘신데렐라의 왕관’을 씌워줄 수 있겠는가. 진정한 신데렐라의 탄생은 빗자루를 걷어차 버리고 궁전무도회를 향한 자신의 꿈을 조바심 내던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 열두 살 때부터 꿈을 꾸었더라도 마흔일곱 아니, 일흔이 되어서도 사람들의 비웃음이 두려워 그 꿈을 향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면, 혹은 친구와 함께 하지 못하는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다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수잔 보일의 노래나, 바네사 메이(Vanessa Mae) 못지않은 한국 소녀의 열정적인 전자 바이올린 연주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신데렐라 스토리는 한낱 동화가 아니라, 먼 옛날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냥이나 하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운명을 거슬러 대륙의 밖으로 도전의 발길을 뻗은, 그리하여 오늘날 찬란한 문명을 만든 인류의 본질적인 반골 기질은 아니었을까. 여전히 그것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다는 것은 아직 사람들이 그런 반역적 유전자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말라는 징표가 아닌지.
물론 그건 고된 노예 생활을 단 며칠의 카니발로 달래던 브라질의 슬픈 축제처럼, 견고화된 자본주의적 신분 체제의 신기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미 데뷔한 적이 있음에도 피자 배달원이라며 사람들을 우롱한 제이미 퓨(Jamie Pugh)의 경우처럼, 조작해서라도 도달해야 할 가장 자본주의화한 욕망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숨 막힌 교실과 사회를 뚫고 비상하기 위해 연예인을 꿈꾸는 걸 보면.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꿈꾸는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본능이요, 가능성이 아닐까?

폴 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