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탄생 백주년을 맞은 아인(雅人) 김내성(金來成, 1909~1957)은 이른바 대중소설가다. 그는 추리소설의 시장성과 가능성을 입증한 최초의 작가일 뿐 아니라 연애소설과 청소년문학에서도 대중적 성공을 거둔, 요컨대 한국근대문학 100년사에서 손에 꼽을 만한 스토리텔러였다.

최근 김내성의 작품을 복원하고 새롭게 주목하는 것은 반갑게 환영할 일이나 문학사에서는 ‘팩트(fact)’이며 알 만한 독자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을 ‘한국문학 재발견’이라는 이름 하에 재조명하는 것이 조금은 생뚱맞아 보인다. 식민지 근대화와 압축성장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한국근대문학이 대중문학과 대중소설가들의 가치와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김내성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여 그와 가깝게 지내던 백철(白鐵, 1908~1985) 등 동향의 문인들이 세상을 떠나자 비평담론에서 한동안 적막하였다.

김내성의 번안 장편소설 『진주탑(眞珠塔)』(1947) 복간의 의미는 바로 이런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제는 지난 날의 작품들을 문학유산으로 받아들이고 주목할 만큼 한국근대문학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졌으며, 편협한 문학주의에서 벗어나 대중문학에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지식의 경계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문학 같은 장르에 주목해야 할 만큼 문학연구의 지평과 연구역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으며 TV, 인터넷, 영화, 컴퓨터게임 등 대중문화의 우세종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할 만큼 예술로서의 위상과 영향력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음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장 연구자 박진영의 정본화 작업을 거쳐 연초에 출간된 김내성의 『진주탑』은 알렉산드르 뒤마(Alexandre Dumas, 1802~1870)의 『몽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1845)을 번안한 작품으로서 1946년 라디오 연속극으로 방송되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듬해인 1947년 백조사에서 두 권짜리 장편소설로 출간하여 인기를 모은 베스트셀러였다.

이번에 출간된 『진주탑』과 김내성은, 사실 여러 모로 닮은 구석이 많다. 작가이되 작가로 인정받지 못했던 아인이나, 작품이되 창작도 번역도 아닌 번안소설이기에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어떤 묘한 운명적 유비(類比) 같은 것이 읽혀지기 때문이다.

번안소설은 한국근대문학과 대중소설의 자양분이면서 창작경험이 충분치 않았던 작가들에게는 일종의 상상력의 사관학교 같은 것이었다. 예컨대 한국연애소설의 교과서이자 대중문화의 원천콘텐츠였던 조중환(趙重桓, 1863~ 1944)의 『장한몽(長恨夢)』(1913)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의 원작, 오자키 코오요오(尾崎紅葉, 1868~1903)의 『곤지키야샤(金色夜叉)』(1897~1903) 를 번안을 비롯하여 애국계몽기의 대표적인 정치소설로 평가받는 구연학(具然學, 1874~ ? )의 『설중매(雪中梅)』(1908), 스에히로 데스초오(末廣鐵腸, 1849~1896)의 『셋쮸바이(雪中梅)』(1886)를 번안 이상협(李相協, 1893~1957)의 『해왕성(海王星)』(1916),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쿠로이와 루이코오(黑岩淚香, 1862~1920)가 번안한 『간구츠오우(巖窟王)』(1901~1902)를 재번안 민태원(閔泰瑗, 1894~1935)의 『무쇠탈』 포르튀네 뒤 보아고베(Fortune du Boisgobey, 1821~1891)의 원작을 쿠로이와가 번안한 『철가면(鐵假面)』(1892~1893)을 재번안 등이 바로 대중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끌었던 대표적인 번안소설들이다.

편자 박진영의 지적대로 번안소설은 “문학사의 새 지평을 열어젖히”고 한국문학의 대역(帶域)을 확장해 나간 상상력의 훈련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왔다. 아울러 그것은 동시대 대중들의 감수성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문학사적 자료들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리뷰 대상 텍스트로서의 의미를 넘어선다. 더욱이 김내성 버전의 『진주탑』은 원작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동시대의 작품들과는 달리 오래 묵은 작품이 주는 특유의 질감과 풍미가 살아있는 복수와 반전의 드라마로서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요즘 같은 혹독한 불황의 시대, 양화(良貨)로 악화(惡貨)를 통쾌하게 구축해 버리는 한국판 에드몽 당테스(Edmond Dant뢵)『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이봉룡『진주탑』의 주인공이 보여준 인생유전(人生流轉)과 반전의 드라마를 통해서 오늘날의 독자들도 작은 위안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또한 꼭 첨언해두고 싶다.

趙城勉 1965년 경기도 화성생. 문학평론가, 인하대 강의전담교수. 최근 글로 「한국추리소설사에 대한 변명」, 저서로 『한국문학 대중문학 문화콘텐츠』 등. csm196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