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시간의 경과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박인환(朴寅煥, 1926~ 1956)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대중가요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가 널리 애송된 것에 비해 박인환은 시인으로는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더 정확히는 2000년 이후 박인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과 함께 여러 권의 관련 책들이 간행되었다. 『박인환』(김영철, 건국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대표시인 101인 선집―박인환』(문학사상사, 2005),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박인환 전집』(문승묵 편, 예옥, 2006)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맹문재가 새로 펴낸 『박인환 전집』은 박인환 연보를 다시 써야할 정도로 새 자료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맹문재는 박인환 50주기를 기념해 『박인환 깊이 읽기』(서정시학, 2006)를 엮은 바 있는데, 이번 책에서도 그의 학자다운 엄격성을 볼 수 있다. 「책머리에」에서 쓴 “무슨 일을 하든지 10년이 걸린다는 사실과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10년쯤 밀고 나가면 일이 되기는 된다”는 표현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그가 이 책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는 뜻이다. 맹문재는 박인환의 작품을 시 81편, 산문 72편, 번역시 1편, 번역소설 6편, 서간 13편 등 총 173편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중 번역소설을 제외한 전 작품이 『박인환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박인환의 산문을 모두 수록함으로써 명실공히 최초의 박인환 전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책이 2년 전 문승묵에 의해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이란 이름으로 나왔으므로, 맹문재의 『박인환 전집』은 그 책과의 비교가 불가피하다. 더구나 필자는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서평을 쓴 적이 있다. 두 책은 일단 체제가 상당히 유사하다. 시, 산문, 서간을 각각 발표연대순으로 배열했다는 점도 그렇고 원본으로 삼고 있는 시집, 신문, 잡지도 같다. 산문을 글의 유형에 따라 문학, 영화, 연극, 사진 등으로 나누어 싣고 있는 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현대 맞춤법 규정에 따르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맹문재의 『박인환 전집』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이 놓친 부분을 몇 가지 보완하고 있다. 그 최대의 성과는 『신시론』(산호장, 1948)을 발굴해 박인환의 시 「고르키의 달밤」과 산문 「시단 월평」을 수록한 것이다. 박인환의 등단작으로 알려진 시 「거리」에 대한 출전 확인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도 중요한 성과이다. 그리고 박인환의 번역시 「도시의 여자들을 위한 노래」를 소개하고 있다는 것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신시론』은 박인환, 양병식(梁秉植), 김차영(金次榮), 김규동(金奎東), 김수영(金洙暎)이 모더니즘 운동을 일으키면서 만든 ‘신시론’의 동인지 성격의 책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번에 맹문재가 『신시론』을 찾아냄으로써 박인환 연구에는 물론, 1950년대 모더니즘 운동의 연구에도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거리」가 박인환의 등단작이 아닐 경우, 『신시론』에 실린 「고르키의 달밤」은 박인환이 발표한 최초의 작품으로 그 의미가 더 커질 것이다. 「거리」를 박인환의 등단작으로 소개한 것은 1976년 근역서재에서 『목마와 숙녀』를 내면서였다. 여기에는 박인환이 1946년 12월 <국제신보>에 작품 「거리」를 발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맹문재의 조사에 의하면 <국제신보>는 1950년 8월에 <산업신문>이 제호를 바꾼 것이다. 그러니까 박인환의 등단작, 등단연도, 등단 매체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숙제를 남긴 셈이다.
『박인환 전집』은 책 끝에 연구자료 목록을 달고 있다. 최근의 연구자료까지 포함해 좀더 정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자료가 박인환을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대 초반, 박인환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느꼈던 박인환 관련 자료들의 빈약함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점만으로도 이 전집은 지지를 받을 만하다.

韓明姬 1965년 대구생. 시인, 강원대 스토리텔링학과 교수. 시집으로 『내 몸 위로 용암이 흘러갔다』, 저서로 『김수영 정신분석으로 읽기』 등. hna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