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진실이냐 거짓이냐’라는 진리시험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야 할 특수담론이다. 만일 이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문학은 제대로 서지 못한다.
요즘은 댄 브라운(Dan Brown)의 『다빈치코드The Da Vinci Code』(2004)처럼 특수담론의 지위를 최대로 활용하여 사실과 허구를 결합한 팩션(faction)이 대세다.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인 『진시황 프로젝트』 역시 세계사적 흐름을 등에 업은 토종 팩션이다. 역사를 바탕으로 미스터리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역사추리소설이다. 하지만 역사를 단지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스터리를 구성하는 필요 수단으로 활용한다. 조금 거칠게 말한다면 역사는 스토리텔링과 메시지 전달을 위한 의장(意匠)이다.

“질주하는 서사”, “예측불허의 반전과 스릴”이라는 요란한 선전문구대로 미스터리는 잘 읽히고, 스토리도 거침없이 잘 나간다. 구성도 비교적 단단하여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굴지의 언론사와 베스트셀링 출판사가 손을 잡고 만든 작품이니, 작가는 스타덤에 오를 것이고 소설은 곧 다양한 장르로 몸 바꾸기(one source multi-use)를 시도할 것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돈이 되는 시대적 환경에 콘텐츠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실용정신이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으니, 잘만 풀리면 또 다른 대박 신화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문학의 스토리텔링 부흥과 장르문학 우량화’라는 뉴웨이브문학상의 기대대로, 작가는 화려한 스토리텔링 솜씨와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작부터 소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백주대낮 광화문에서 한 남자를 참수한 범인은 피해자의 머리를 첼로가방에 담아 유유히 사라진다. 바로 강력계 형사들의 범인 찾기와 추격의 서사가 펼쳐진다. 그래서 이 팩션은 하드보일드풍 범죄소설에 경찰소설(roman policier)과 로맨스를 가미한 퓨전형 서사가 된다. 주인공 강태혁 형사는 유력한 용의자인 서준필 교수의 연구실에서 사건의 실마리인 우키요에(浮世繪)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한 풍속화 춘화첩(春畵帖)을 발견한다. 여기서 사건은 크게 동심원을 그리며 역사적, 국제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진시황을 부활시켜 동아시아 패권을 쥐겠다는 거대한 음모와 그를 둘러싼 한·중·일의 각축, 민비시해사건(1895)과 춘화도의 비밀이 세 명의 주요인물을 축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사건의 전모와 반전은 역량 있는 장르문학 작가의 탄생을 알려준다.

그런데 우리의 즐거움은 꼭 여기까지다. 왜냐하면 이 웰메이드(well-made)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역사든 이야기로서의 품격이든 전혀 개의치 않는 서사지상주의 위에 위태롭게 서있기 때문이다. “숨겨진 춘화도 속에서 정사를 벌이고 있는, 아니 성폭행 당하고 있는 여성의 성기에 은밀하게 그림처럼 숨겨진 글씨는 ‘閔氏(민씨)’였다.”(347면) 고종을 협박하기 위해 이 추잡한 그림을 만든 장본인은 명성황후 시해의 주범, 미우라 고로오(三浦梧樓)이다.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를 서슴지 않는 작가의 목적은 역사적 수난을 환기시켜 민족주의적 충정(?)과 이야기성을 강화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런 자기모멸적 대목은 뜻있는 독자들의 공분(公憤)을 사게 될 뿐이며, 결국 이야기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명성황후를 활용한 대중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할지 몰라도 결국 작가에게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실 일반적 통념과 달리 명성황후는 척족(戚族)의 영화와 정권유지를 위해 골몰했던 부패한 인물의 표상이다. 그런 ‘명성황후(明成皇后)’가 ‘명성황후(名聲皇后)’가 된 것은 오로지 그가 일제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과 대중적 동정심 때문이다. 역사소설이나 팩션 쓰기가 더 어려운 것은 치밀한 고증과 역사의식,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문학이 특수담론이라 하더라도, 역사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품격있는 상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정크(junk)허섭쓰레기이다. 덧붙여 명성황후 이야기나 서준필 교수의 경복궁 퍼포먼스에서 우리는 소설이 ‘작품’이 아닌 ‘상품’으로 보였으며, ‘절정’이 아닌 ‘질정(叱正)’의 충동과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저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높은 가독성과 거부하기 힘든 마성을 가지고 있다. 불모의 한국 장르문학에 모처럼 발굴된 이 새로운 가능성과 재능이 앞으로는 품격을 갖춘 이야기와 상상력으로 우리를 찾아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