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이름이라도 지어 보내소서. 부모가 무정하게 버렸다 하여 버린 자식이라 하소서. 버려도 버리고 던져도 버린 버리버리 버리데기, 바리바리 바리데기, 바리공주라 하소서.”

버림받은 바리공주는 안은미의 신작 <바리>에서 다시 버려져 이승에서 겪는 고초가 여간 아니다. 이승에서 버림받고 저승을 떠돌다 갖은 고생 끝에 대왕마마를 구하는 바리데기 신화 중, 이번 안은미의 <바리>는 저승으로 떠나기까지 이승에서의 갖은 신고(辛苦)를 형상화한 ‘이승편’이다. 그리고 몇 해 후 ‘저승편’이 올려진다고 한다.
퍼포먼스 같은 춤을 신들린 듯 선보여온 안은미의 춤은 그래서 끼가 드세고 심지어 춤 아닌 미친 짓으로 봄직하다. 춤을 콜라쥬(collage)로 뒤틀어 춤과 장난질을 구분하지 않고 현실과 환각 사이 경계를 지웠으니 미칠 곡절도 상당할 것이다. <바리>는 끼가 드센 그동안의 양식에 새 기법을 추가하여 또 대형사고를 저질렀고, 사고는 몇 해 후 올려질 ‘저승편’에서 마무리된다.

안은미는 이번에 구현한 새 기법을 스스로 심포카(sympoka)라 부르고 있다. 심포카는 심포닉 아트의 줄임말로 <바리>의 대본작가 박용구의 용어다. 가무악 일체처럼 여러 예술매체를 버무린 총합적 양식을 염두에 둔 듯하다. <바리>는 국악의 창과 정가(正歌),1 기악이 주선율을 이루는 속에서 춤의 콜라쥬가 판을 끌어간다. <바리>에서 보여주듯 콜라쥬나 몽타쥬로 용이하게 이루어지는 절충은 심포닉 아트의 안팎을 확장해주는 장치로서 중요하다. 직선적 또는 선형적 방식에 얽매인 전개보다 게릴라 전법처럼 수시로 바꿔칠 여지를 갖는 콜라쥬는 매체들의 혼합을 재촉한다. 이런 가변적 기법으로 인해 춤판은 몸판으로 자연스레 전화될 수 있다. <바리>에서 무시로 재현되는 장난질 같은 몸짓도 사실상 몸의 예술을 성립시키는 춤으로 수용된다. 몸과 춤이 그 외의 장르와 무제한적으로 소통하는 몸판에서 일대 문화적 사건을 기대해도 무방하다.

푸르스름한 형광 색조의 대형막에 시선을 에워싸는 환각적 분위기가 더해져, 짝이 다른 긴 양말과 허드레 원피스나 새하얀 몽당치마, 패치워크(patchwork) 풍의 옷매무새처럼 알록달록 촌스런 정서는 바리의 야단스러움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주체하기 어려운 끼의 발산으로서 야단스러움이 경계를 초월하는 시선과 만나면서 소리꾼을 춤꾼으로 참여시킨다. 그러면서 바리의 성별은 사방지양성 인간로 재분류되어 신령스런 존재로 다가온다.

바리공덕 할아비와 할미2가 구한 바리가 이승의 욕망에 시달리면서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바리공덕 할미 같은 안은미는 변형된 살풀이춤으로 바리를 뒷전에서 수호하고, 정가풍의 소리가 부모회심곡(父母回心曲)3 식의 정서를 환기한다. 버림받은 이들의 상징으로 설정된 바리에게 우리가 감정이입할 만한 시련이 성차별적 위협으로 머물면서 바리의 인간적 의미는 제한된다. 기득권과 유아기적 자아라는 축과 유혹의 뿌리침과 자아독립이라는 또 다른 축 간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바리데기가 영웅신화의 주역으로 모습을 갖춰나가는 데 비해, 피해당한 이의 일방적인 갈등을 그린 ‘이승편’의 바리는 심도가 깊지 않다. 그러나 정가, 패러디식의 창(唱), 미니멀적 가야금 소리4 그리고 패치워크가 엇박자처럼 맞물리는 환타지풍의 세계에서 날개짓 춤, 브레이크댄스, 공중도약 등의 춤짓은 몸판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요소로서 중요해 보였다.

콜라쥬 기법의 춤에서 선구적이었던 독일의 피나 바우쉬(Pina Bausch)가 지난 몇 해 동안 춤을 등한시하거나 소거해버리는 매너리즘으로 실망을 샀던 사실은 몸판의 업그레이드에 대한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바리 같은 해묵은 인물이 이번처럼 새롭게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춤과 결합하여 유발하는 ‘낯설게 하기(異化)’ 효과 때문이며, 굽이굽이 잠복한 춤짓이 몸판에서 가질 전술적 역할은 더 강조할 나위도 없다. 요컨대 춤을 끌어안은 <바리>는 몸판의 상상력이 문화적 사건으로 이어지는 길을 나선 셈이고 오금을 저리게 하는 안은미의 춤세계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추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