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의 발간으로 『손님』, 『심청, 연꽃의 길』과 함께 황석영의 ‘동아시아 3부작’이 완성되었다. 이 작품들은 작가의 방북(1989~1993) 이후 구상의 핵심에 다가가게 함으로써 황석영 문학을 재조명할 새로운 시야를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그 키워드 중 하나는 아마도 디아스포라(diaspora)의 역사가 될 것이다. 실제로 황석영은 초기 소설에서부터, 강제적으로든 선택적으로든 고향을 떠난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왔다. 예를 들어, 빼어난 단편미학을 선보인 「삼포 가는 길」(1973)은 고향에서 내몰린 부랑노동자의 우울을 시대의 정서로 구조화한다. 좀더 멀게는 명분 없는 전쟁에 동원되었다는 깊은 수치감으로 자기와 고향(국가)을 성찰하는 「탑」(1970)류의 베트남 소설도 있다. 35년에 이르는 창작 생활 동안, 황석영은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이주자가 되어 끊임없이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대적 삶의 심층을 탐색해 왔는데, 『바리데기』는 그러한 도정의 결산이자 새로운 글쓰기의 시작이다.

『바리데기』는 서사무가 <바리데기>의, 비천한 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은 여자 아이가 간난신고 끝에 아버지 오구대왕을 살릴 약수를 구해 고귀한 존재로 등극한다는 스토리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되, 현대의 상황에 맞게 재창조한 작품이다. 작가는 탈북 소녀 바리를 갈등과 폭력으로 얼룩진 시대의 심부를 통과하게 함으로써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한다. 바리의 북한-중국-영국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과 탈북자의 급증, 9.11 테러사건, 관타나모(Guantanamo) 수용소의 파키스탄 청년들에 대한 인권 유린, 중동지역의 현실, 영국의 지하철 폭발사건 등 최근 일어난 실제 사건들에 기초하고 있어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짙다. 여기에는 일국적 관점에 갇히지 않고 세계시민으로 사유하고 쓰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출간되기도 전에 영어, 불어, 독어, 일본어로 번역이 결정돼 세계 독자와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설화를 리텔링(retelling)한 『바리데기』는, 무속에서와 같은 초자연적인 환상성을 적극 도입하는 등 그간 한국근대문학이 선호해왔던 규범에 거리를 둠으로써 동양 혹은 한국적 미학을 선보인다. 무엇보다 이 미학적 실험의 중심에는 ‘여성’ 혹은 ‘여성성’이 새로운 윤리의 가능성으로 자리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무속은 주변부 여성들의 하위문화이며, 영매는 그러한 문화의 중심에서 사회의 상처와 고통을 떠맡은 대변자이다. 그리고 굿은 인간이 겪은 극한의 고통을 중계해 맺힌 마음을 풀고 산 자와 죽은 자를 화해시키는 제의로, 이른바 대립과 투쟁 혹은 경계 구축에 익숙한 ‘남성적’ 가치관 대신 용서와 화해 같은 ‘여성적’ 가치관을 새로운 윤리로 제시하는 의례이다. 작가는 큰 어미가 되어 이 재난의 세기를 연민과 용서의 해원굿으로 감싸안고자 한다. 굿이 절정으로 치닫는 장에서 작가는 저승배에 탄 한 무리의 억울한 사령들-굶어죽은 아이, 부르카를 쓴 여인, 피 묻은 군복을 입은 청년 등-을 등장시켜 그들을 연민하는 한편, 전쟁과 테러로 얼룩진 세계의 재난이 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듯, 대립을 풀고 화해할 것을 유도한다. 그런데 이러한 화해의 메시지는 이론적이고 당위적이어서 공감하기 어렵다. 또한 위계를 재설정했을 뿐 서양/동양, 남성/여성, 이성/감성, 의식/무의식 등의 근대적 이분법은 여전히 허물지 못하고 있다.

바리가 인간 내면의 고통과 비참을 껴안는 영매인지도 의문이다. 바리는 신비롭고도 모성적인 인물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염병을 앓은 후 그녀는 개와 소통하고, 허공을 떠도는 귀신들을 본다. 발마사지사가 된 후에는 발을 통해 타인들의 고통스러웠던 삶의 순간을 목도하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바리는 여성적 윤리의 가능성을 담지한 인물이다. 그런데 영매가 세상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대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의 비천하고 억눌린 삶의 경험 때문이다. 언뜻 보면, 바리는 영매가 될 만한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출생의 트라우마(trauma)만이 아니라 밀입국의 간난신고와 딸을 잃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바리는 성숙한 영매가 아닌, 적응이 빠른 재주 많고 착실한 ‘소녀’처럼 여겨진다. 바리의 훼손되지 않은 자아는 세상의 어두운 심연을 통과한 뒤 획득한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아이의 것처럼 여겨진다. 게다가 바리 할미의 비범한 혹은 과도한 보살핌 탓에 바리가 영매로서의 입사식을 제대로 치러냈다고 보기 어렵다. 아수라를 연상시키는 밀항선에서 바리는 세상의 지독한 악과 절망을 목도하는 대신 환상에 빠져들기 때문에 고통에 휩싸이지 않는다. 바리에게는 한이 맺힐 틈이 없다.

바리는 내면성을 결여한 허깨비 같은 인물이다. 『심청, 연꽃의 길』에서 창부가 된 어린 심청은 거듭되는 겁간과 능욕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정신을 분리해 끔찍한 기억에 고통받지 않음으로써, 지루하리만치 세밀하게 묘사된 동아시아의 근대사를 흥미로운 볼거리로 만들고 독자의 죄의식도 덜어준다. 심청이 팝콘비너스(Popcorn Venus)1였던 것처럼, 바리 역시 화해의 세기를 향한 작가의 기원이 만들어낸 도구적 인물이다. 폭력을 겪은 육체가 정신을, 혹은 끔찍한 환경이 자아를 침범하지 못한 것은 그녀들이 강인해서가 아니라 자궁 외에, 개성과 내면을 허용받지 못해서다. 무엇보다 무속을 화해의 연희문화로, 영매를 모성적 사제로만 조명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무속은 히스테리, 우울증, 귀신들림의 상태에서 공식문화에 반격을 가하는 여성들의 반역의 문화이자, 공감의 눈물을 매개로 영매와 여성관객들 간의 은밀한 연대를 형성하는, 여성공동체문화이다. 타자의 아픔을 끌어안는 여성의 능력을 신비화하는 것도 곤란하다. 그것은 문화적 역할을 습득한 결과일 수는 있어도 본원적 자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