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Menu Body
플랫폼
웹진 검색하기          상세검색

 비평공간 / <b>서평</b>
HOME > 비평공간 / 서평
sub title
  ‘골목의 자식들’이었을 우리들의 이야기
통권 : 44 / 년월 : 2014년 3,4월 / 조회수 : 2834

서평 유동현, 『골목, 살아(사라)지다-수문통에서 백마장까지 인천골목이 품은 이야기』

(인천광역시, 2013년 12월 27일 발간)

근대화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태어난 세대들은 ‘골목의 자식들’이었다. 외딴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서울로, 도시로 몰려들었던 것임에야. 특히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장년층의 골목에 대한 기억은 남다를 것이다. 어린 시절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하면서 놀던 곳도 골목길 그 어디였을 터이고, 고등학교 시절 어른들 몰래 첫 담배를 빨고 몽롱해져 무언가를 더듬던 객기도 그 어느 골목길 담벼락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고, 첫 키스의 추억도 아마도 골목길 그 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1930년대 식민지 근대 모더니즘의 극단을 보여주었던 이상(李箱, 1910-1937)의 시 오감도(烏瞰圖, 1934)에서도 골목은 등장한다. ‘13人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오./(길은막다른골목길이적당適當하오.)/’,‘(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適當하오.)/13人의아해兒孩가도로道路로질주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시인 이상이야말로 진정 ‘도시의 후예’였다. 도로·질주 등은 모두 도시를 상징하는 욕망의 언어들이다. 그 중간 지점에 골목이 놓여있던 것이다. 골목은 사적·공적 사이에 연속성을 허락하는 공간이다. 인천의 골목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고, 하고 있을까? 100년 전, 50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보는 시간 여행. 그 도시 인천의 골목을 되살리는 책이 지난해 말, 나왔다. 참 반갑고 고맙다. ‘인천 골목이 품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골목, 살아(사라)지다-수문통에서 백마장까지 인천골목이 품은 이야기』가 그것이다.

글과 사진은 인천시가 발행하는 월간『굿모닝 인천』편집장이자 인천시 대변인실 미디어팀장으로 있는 유동현 씨의 작품이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해체되고 멸실되는 그 공간들(골목-인용자)을 다시 담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2년 동안 월간 『굿모닝 인천』에서 ‘OLD but NEW’ 시리즈를 연재했다. 그때 스무 곳의 골목을 취재했다. 이 책은 당시 연재한 지역을 중심으로 또다시 2013년 한 해 동안 골목을 샅샅이 탐방하고 취재해서 엮은 것”이라 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유동현의 인천 골목 인문지리서’라 할 수가 있다. 송현동에서 산곡동까지 스물 네 개의 동을 역사‧문화‧인물‧풍습 등의 탐방을 시작으로 기록물 참조와 그곳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등을 통해 담아낸 것이다. 여기에 ‘map&photos’, 본 글에서 놓치거나 자세히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을 추려 가이드북 형식의 간단한 안내서까지 배려한 글쓴이의 ‘꼼꼼함’은 이 책의 미덕 중 하나가 되게 한다.

작가의 인천 골목길 탐방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3년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쥔 작가는 인천 골목을 쏘다녔다고 한다. 작가는 책 말미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인천은 ‘도심재생’이니 ‘신·구도심 균형발전’ 같은 근육질의 언어가 난무하면서 어제 보았던 골목이 불도저의 날카로운 삽날에 하루아침에 사리지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던 그는 그렇게 찍은 사진을 모아 지난 2006년 3월 사진기록집『골목길에 바투 서다』를 출간했다. 이미 그 책에 담겼던 마을과 골목 중 상당수는 자취를 감췄다. 이번 책은 그 아쉬움에 깊이를 더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가 노인들이다. 송현동 양키시장의 허순영 사장(74), 화평동 수채화가 박정희(90) 할머니, 용동의 초가집칼국수집 주인 신경현(81) 할머니······. 이들마저 떠나버린다면, 이들 골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작가의 초조함이 그를 골목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을 볼라치면 사라져감에 대한 아쉬움의 단순한 토로가 아니라 인천의 골목을 통해 인천이란 공간과 장소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우리들 삶과 연결하는 관계성과 인문적 가치를 복원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읽을 수가 있다. 앞서 인문지리서라 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문제는 도시 인천을 바라볼 때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하는 질문에 있다. 인천은 일제가 식민지 개발 루트로 창안한 도시로 출발했기에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식민지 근대에 대한 해석일 수도 있다.

근대는 도시를 호명했고 골목은 도시의 아우인 것을 보면, 골목 또한 근대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골목은 그 어느 곳보다 짙은 장소성(placeness)을 토해낸다. 장소성은 무엇인가? 장소(place)는 어떤 특정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場), 또는 그 활동이 이루어지는 물리적 배경을 말하는 것이라면, 장소성은 그 특정한 장소에서 생활하는 구성원들이 지니게 되는 장소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 장소를 체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주체성의 확인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는 일상성이 짙게 배어 있기 마련이다. 아, 늘 항상 그러한 일상(日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우리들 매일의 살이, 구체적 삶의 처소. 그래서 한 도시의 골목을 들여다보면 그 도시의 총체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일상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지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전체에 대한 인식을 전제해두어야 한다. 일상은 시대‧사회 등에 의해서 자생적 위계질서를 지닌 것으로 문화‧제도‧이데올로기 등 총체성을 구성하는 것들 속에서 파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총체성을 제대로 인식할 때만이 일상에 대한 그 어떤 묘사나 언급이 살아 생기 있게 다가오게 된다. 도시인의 삶과 골목의 일상성에 대한 탐색은 분리되지 않은 채 서로에게 안기고 빠져나오는 회로에 대한 포착일 터다. 즉 총체성에 대한 인식이 골목 탐색에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독법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 책을 두고 ‘원도심 골목길 예찬서’라 하는 평가가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 책을 원도심 골목길 예찬서로 평가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질곡의 세월을 살아냈던 선배 세대들에 대한 헌사일 수는 있을 터다.

 

한때 일본 동네였던 신흥동 골목을 걷다보면 국치(國恥)의 흔적이 곳곳에서 배어나온다. 동네는 사람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집이 지킨다. 그들은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남아있는 거리와 가옥에서 불현듯 일본인의 탐심과 욕정을 느낄 수가 있다. 그들은 신흥동에서 수인선의 종착역을 만들고 수탈의 철길을 깔았다. 그 길을 따라 조신인은 울분과 탄식이 실려 있다.(책 259쪽. 신흥동)

 

이렇듯 이 책에는 식민지 시대와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그렇다고 관통하고 있지는 않다.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가급적 가치중립적 자세를 취하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에 더욱 충실했던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저자의 말에서 “이 책에 담은 이야기는 새로울 게 하나도 없다. 이미 지역의 역사 연구가나 향토사학자 그리고 지역 전문가들이 말하고 전했던 ‘사실’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참고문헌·자료’에 올려놓은 기존의 그 어떤 텍스트들보다도 이 책은 내용의 풍성함에서나 사실에 대한 탐사에서나 오히려 앞선다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목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낮은 점, 이것이 나아가 골목을 통한 도시 인천읽기에 대한 총체성의 결여로 나타난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상은 시대‧사회 등에 의해서 자생적 위계질서를 지닌 것으로 문화‧제도‧이데올로기 등 총체성을 구성하는 것들 속에서 파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 앞서 강조한 것은 골목을 일상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다분히 ‘살아지고 사라지다’란 단순 고리로는 골목이라는 텍스트를 제대로 해석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이해조 신소설『모란병』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1909년『제국신문』(1909.2.13.~?)에 연재한 후 박문서관(博文書舘, 1911년 4월 15일)에서 출간했다. 이 작품에서 인천, 특히 화개동은 주요한 서사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사기꾼인 변선달이 현고지기의 딸 금선을 민며느리로 보내기로 하고 돈 3천원을 받고 딸을 시집보냈는데 이는 사기였다. 변선달은 금선을 기생으로 넘겼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금선의 고난이 시작된다. 그 고난의 땅이 인천 화개동(花開洞)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신흥동 일대다. 당시 화개동은 기생촌이었다. 이 작품을 분석하다보면, 인천의 유곽(遊廓)역사를 추적하게 되는데, 조선에 유곽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 책에서도 언급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조선에 성매매업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은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 직후인 1895년 이후였다. 조선에서 주도권을 선점한 일본은 군사·경제·문화적 지배권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본인 거류지 발전에 힘을 쏟았다. 조선행 카라유키상(唐行きさん: 성매매를 목적으로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떠나는 여성을 가리킨다)은 그 촉매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1896년 일본이 공포한 ‘이민보호법’에서 조선을 제외했다. 하여튼 조선에 성매매 업자와 여성들이 급증한 것은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가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그동안 이 작품은 갑오경장 직후의 양반계층의 몰락을 그린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 작품에서는 화개동이란 지명이 명시되어 나타난다. 지금의 용동을 ‘용골’이라 부르는 것과는 달리 말이다. 갑오경장 직후 인천에는 화개동이란 지명이 없었다. 1883년 개항 이후에 생긴 이 마을은 인천부 다소면(多所面) 선창리(船倉理)에 속해 있었으나 1900년 초까지 별다른 동 이름이 없었다. 1903년 부내면(府內面)이 새로 생길 때 화개동이란 버젓한 이름을 얻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화개동이란 이름은 다음을 일러준다. 『모란병』이 청일전쟁과 갑오경장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러일전쟁 직후까지, 즉 일제의 조선 식민지 체제가 공고화 되는 시점까지를 시야에 두어야 작품 해석에 정곡을 얻을 터란 말이다. 작가 이해조는 이 작품을 통해 조선 중세체제를 떠받치던 양반 계급과 그에 기생하던 중인층의 몰락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일제가 인천을 병참기지화 하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인천의 도시형성 자체를 일제가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조는 인천을 식민지 조선의 축소판으로 보았던 것은 아닐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득세한 일제가 자신들의 입맛대로 만들어가던 ‘신도시 인천.’ 그곳에는 식민지 근대의 모순이 중첩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제가 그어놓은 화개동이란 유곽촌에 팔려온 몰락한 양반의 후예 금선. 금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잡것’들의 갖은 흉계. 여기서도 이해조의 눈은 날카롭게 빛난다. 인천의 감리를 통해 이해조는 갑오경장이 위로부터의 개혁이란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갑오경장이 청일전쟁의 결과란 것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이것은 당시 조선 정부의 온전한 의지만이 아니었던 것을 말해준다. 인천 감리란 인물은 서울서 팔려온 금선을 구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취하려는 부패한 관료의 표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작품 속 인천은 이렇게 부패하고 인신매매가 성행하는 도시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추억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소설과 이 책을 같은 선상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도시 인천읽기는 단순 회로만으로는 가능치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일제에 의해 ‘신도시’로 창안된 타자의 도시 인천. 이 사실을 기저에 깔면서 해방 이후 비록 독재정권에 의했지만 근대의 재창안을 이루었던 근대화의 전초기지 인천을 기억하자고 주장하는 바다. 이 책을 읽노라니 그 질곡의 세월과 새로운 희망을 꿈꾸었던 아픈 흔적들의 소리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이 책 발간을 계기로 근대 도시 인천, 그 골목의 그 어름을 더듬을 때 식민지 근대와 위대한 재창안의 도시란 복안(複眼)으로 마주하는 젊은 눈들을 기대해본다. 이미 이 책을 쓴 작가 또한 그러한 시선을 지니고 있었으리라. 여기서 미래 도시 인천건설의 첫 걸음이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 약력
柳奉熙 1963년 충남 유성 출생. 인하대대학원 한국학과에서『사회진화론과 신소설연구-이해조와 이인직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인하대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진화론을 키워드로 한국 근대문학을 연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ubongh@hanmail.net.
글쓴이 : 유봉희
작성일 : 2014/03/20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