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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역사에 대한 준엄한 고발장이자 공소장
통권 : 39 / 년월 : 2013년 5,6월 / 조회수 : 2190
이원규,『조봉암평전 : 잃어버린 진보의 꿈』(한길사, 2013.3.1. 출간)

『조봉암평전』은 죽산에 대한 ‘역사적 복권’
 이원규 작가의 역작『조봉암평전』이 세상에 나왔다. 이미 김원봉과 김산 평론을 통해 비운의 독립혁명가들의 생애를 복원하는 작업을 해 온 이원규는 이번『조봉암평전』을 통해 죽산의 파란만장한 삶은 물론 그의 내면까지 속속들이 그려내고 있다. 우선 이 평전에 쏟아 부은 작가의 노력과 열정이 돋보인다. 그가 해 온 평전 작업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 평전을 위해, 20여 차례에 걸친 중국과 러시아 답사를 비롯해 자료수집에 2년 반, 집필에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원규는....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巖, 1898~1959)의 삶을 복원해냈다. 2011년 1월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통해‘사법적 복권’이 이루어졌다면, 이『조봉암평전』은 죽산에 대한‘역사적 복권’을 의미한다.

 그러나『조봉암평전』은 단순히 죽산 개인에 대한 기록과 복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픈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기록이고 잃어버린 우리 역사에 대한 복원작업이다. 또한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지식인들 모두에게 바치는 평전이다. 죽산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명암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죽산은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 중의 한 명이며, 정치권력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대표적인 순교자이다. 따라서 죽산의 누명을 벗겨주고 그를 올바르게 재평가하는 일은 우리 역사에 대한 복원 작업이다.

 

흠결과 오점 불구, 진보주의자로 일관된 삶과 생각
 그러나 한 인간에 대한 객관적이고 올바른 평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죽산은 여전히 한쪽으로부터는“좌익분자”와“빨갱이”로 비난받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이원규는 억울하게 매도되고 있는 부분을 바로 잡으면서도, 또 자칫 위인전기로 흐르기 쉬운 평전을 역사적 객관성에 바탕을 두고 기술하고자 애썼다. 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근거에 충실하려 했고, 학술논문 못지않게 수많은 각주들을 달아 객관성을 높이고 있다.

 작가는 변절과 전향 등 죽산의 행적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들, 식민지와 분단시대 지식인으로서 내면적 고민과 나약함, 그리고 그의 정치적 오점 등도 가감 없이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누구보다도 독립운동에 헌신한 죽산이지만 그의 일부 행적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신의주형무소에서의 감형 출옥이 일제에 굴복해 전향에 따른 사면이었는지 여부, 국방헌금과 창씨개명을 둘러싼 의혹 등이 그것이다. 일제의 공작과 오해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앞으로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진실규명이 필요하다. 또한 죽산은 해방 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후, 미군정의 공작에 의한 전향과정을 둘러싼 의혹을 비롯해, 단정에 대한 지지와 참여, 발췌개헌 찬성 등 몇 가지 정치적 오점을 남겼다.

 그러나 죽산의 이러한 일부 흠결과 오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과 생각은 진보주의자로서 일관성과 투철함을 지니고 있다. 죽산이 추구해 온 정치적 이상은 책임정치, 수탈 없는 정의로운 경제, 평화통일 세 가지였다. 이 책의 부제로 붙어있는“잃어버린 진보의 꿈”처럼 죽산은 자신의 진보적 꿈을 현실정치에서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의 정치적 이상들은 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효하다.

 

진보는 이상주의인가?
 죽산에게 원죄처럼 따라다닌 것은 그가 조선공산당 창당의 주역이고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이원규는 한때 아나키즘에 빠졌던 죽산이 공산주의자가 된 것은 공산주의를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또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빌미가 된 것이 바로‘평화통일론’이다. 이승만 정권의‘북진통일론’에 맞서 당시‘평화통일론’을 주장한 것은 일견 너무 앞서갔고 또 무모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죽산의‘평화통일론’은 결코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적 주장이 아니었다. 그의 삶을 통해 보여준 놀라운 현실적응력과 전향에서 보듯이, 죽산은 현실주의자이다.‘평화통일론’ 역시 현실을 직시한 결과물이다. 그는 일본과 러시아에서의 유학과 국제공산주의운동 참여, 상하이에서의 장기간 거주, 미군정하에서의 경험 등을 통해, 누구보다도 국제정세에 대한 놀라운 식견을 지니고 있었다.

 극단적인 반공주의와 맹목적인 대북정책에 매몰되어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죽산은 누구보다도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고 국제정세 변화에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죽산은 몽상주의자나 환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였다. 실용주의는 과거에 대한 집착과 임기웅변식의 대응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철저한 현실인식 그리고 전향적인 정책 전환에 바탕을 둘 때만이 가능하다. 죽산의‘평화통일론’이 지금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교훈이다.

 죽산의 ‘평화통일론’은 이념화된 통일논의와 통일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무력에 의한 북진통일론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변화하고 있는 국내외 정세를 직시하고 있다. 당시 이승만 정권과 정치권은 현실성이 없는 무력통일론에만 사로잡혀 있었으며, 국제정세의 변화에 둔감한 채 시대착오적인 통일주장과 정책에 얽매여 있었다.

 죽산의 국제정치 변화에 대한 인식은 예리했다. 남과 북이 미국 소련과 각기 군사동맹조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자칫 세계대전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더 이상 무력에 의한 통일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유엔총회에서 유엔 감시 하에 남북한 총선거에 의한 통일방안을 재의결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정치적 평화적 해결방안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핵무기의 발전으로 인해 전쟁이 핵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표명하고 있다.

 이처럼 죽산의 ‘평화통일론’은 현실의 남북관계와 국제정세를 직시하는 예리한 통찰력과 미래를 바라보는 비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오히려 이승만의‘북진통일론’이야말로 허황되고 위선적이고 몽상적인 주장이었다. 오늘날의 상황도 당시와 결코 다르지 않다. 이 땅의 보수세력들은 여전히 변화하는 국제정세의 현실을 외면한 채, 시대착오적인 자폐증에 빠져있다.

 죽산이 꿈꾸던 한반도의 미래는 우리민족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달성하고, 전체 민족이 손을 맞잡고 힘을 합쳐 번영을 이룩하여, 국제사회에서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국가로 우뚝 서는 것임에 틀림없다. 죽산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평화평일론’을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통일은 더 이상 동족상잔의 피를 흘리는 일이 없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은 우리 민족에 의해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통일은 극좌와 극우를 극복하고 중도 민족주의세력이 중심이 되어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죽산 죽음의 공범자·동조자
 죽산이 제헌의원에 당선되고 정치를 시작한 곳은 바로 인천이다. 강화에서 태어난 죽산은 인천에 둥지를 틀고 해방 후 정치가로서 정치적 기반을 인천에서 다져 간다. 이원규는 고향인 인천에서의 죽산의 성장과 활동과정을 자세히 복원해 놓았다.

 인천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시대의 선구자들을 키워낸 곳이다. 우리 현대사의 선구자인 백범 김구 선생과 죽산, 장면 박사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다. 그 분들이 자신의 뜻을 키우고 정치적으로 성장한 곳이다. 특히 죽산의‘평화통일론’은 남북화해와 통일시대에 또 한 번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인천에게는 정신적 원천이자 시대정신이다.

 죽산을 죽인 것인 이승만과 사법부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의 죽음에 대해 공범자이고 동조자이다. 이원규는 이 책에서 그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1959년, 그에게 내려진 사형선고가 정권에 위협이 되는 야당 지도자를 압살하는 정치공작인 줄 알면서도 수많은 여당 의원들 중 양심선언을 하며 뛰쳐나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야당 의원들도 유감을 표하는 발언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지성과 양심을 대표하는 교수와 지도자들도 그랬다. 독재정권의 철퇴가 두려워 입을 닫은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조봉암평전』은 우리 역사에 대한 준엄한 고발장이자 공소장이며, 이 땅에 살고 있는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통렬한 반성문이자 자기고백서이다. 죽산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었던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서슬 시퍼렇게 살아 있다. 아직도 얼마나 많은 역사적 진실들이 묻혀있고 또 왜곡되고 있는가?‘야만의 시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저자 약력
李鐵基 1957년 인천 출생. 동국대 교수. 저서로 『동북아군축론 : 신동북아 질서의 모색』.
leecki@unitel.co.kr
글쓴이 : 이철기
작성일 : 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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