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부터 2002년까지 인천에서 살았다. 그 중 20대는 온전히 다른 지역에서 보냈지만 10대 시절만큼은, 그러니까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다)부터 고등학교 시절을 인천에서 보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 요컨대 ‘X세대’라든가 ‘신세대’라고 이름 붙인 세대가 등장했을 때, TV와 영화, 애니메이션과 대중음악 같은 미디어 컨텐츠의 폭격 속에 이전에 없던 감수성을 가진 또래집단이 등장할 때 나는 인천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인천에 대한 기억은 각별하다. 거기엔 토요일 아침마다 AFKN에서 방송하던 만화영화를 보고 학교에 가고 주말 밤이면 건스 앤 로지스와 본 조비의 뮤직비디오를 VTR로 녹화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주안 사거리에 있던 시민회관(지금은 없어졌다)의 객석을 가득 채우고 블랙 신드롬과 블랙홀의 전국 순회공연을 보던 아이들과 기타를 메고 동인천 지하상가를 배회하던 형과 누나들이 있었다. 주말이면 수봉공원의 문화소극장과 청소년회관에서 열리던 학교 밴드들의 공연을 보러 다녔다. 바로 이런 기억 때문에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가 남달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인천문화재단과 한겨레출판이 기획한 ‘문화의 길’ 총서 시리즈의 일환이다.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 외에도 <바다의 황금시대 파시> <화교 문화를 읽는 눈 짜장면> <질주하는 역사 철도> <도시와 예술의 풍속화 다방> 등의 책들이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인천이라는 도시의 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사와 한국 현대사를 결합한 미시사회학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중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는 나도원 음악평론가가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인천의 기호일보에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결과다. 여기서는 한국전쟁 이후 인천 대중음악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인천 대중음악의 역사가 곧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압축판’이란 논조를 엮어 나간다. 그런데 그 어조는 지나치게 학술서 같지도 않고, 지나치게 사변적이지도 않다. 여기에 나름의 미덕이 있는데, 나도원 평론가는 이 길고 복잡한, 또한 동시대적인 이야기를 외지인의 시선에서 진지한 주말 여행기처럼 적어 나간다. 그는 인천의 대중음악사를 다룸에 있어 ‘항구’라는 특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항구는 왜 노스탤지어의 상징이 되었나?”라는 첫 장의 제목으로부터 시작해 한국전쟁의 발발과 종전 시기에 불리던 노래들을 ‘바다’, ‘항구’, ‘만남과 이별’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한다. 이것은 외부자이기에 가능한 시선이다. 당연히 사적인 경험이 아닌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더 중요하게 다룰 때 가능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 점은 2부 “시대의 노래, 저항의 노래”에 잘 드러난다.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 노래운동의 역사를 되짚는(이에 대한 서술이 늘 서울 중심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부의 면면은 음악을 중심으로 인천이라는 공간, 항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제조, 유통업 중심의 산업 구조, 그리고 1980년대라는 시기적 특징을 잡아 챈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 시대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보편적이지만, 그를 받치는 예시들과 사례들은 모두 인천의 것이란 점에서 꼼꼼한 자료 조사와 입체적인 분석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미덕은 3부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내가 90년대 인천에서 경험한 일들은 여기서 좀 더 자세하고 거시적인 맥락으로 재구성되어 묘사된다. 동인천을 기점으로 성장한 헤비메탈의 공동체와 그 계보뿐 아니라 90년대 말에 열린 ‘국제’ 음악 페스티벌이었던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과 21세기에 부활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다.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그때 분명 존재했지만 내가 보고 듣지 못한 일들을 확인하며 간접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점에서, 4부 “삶과 공간에 스민 노래”에서 인천과 대중음악에 대한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여기엔 인천에서 음악적 경험을 쌓거나, 지금 현재 인천을 토대로 활동하거나, 인천 출신인 음악가들이 대거 소개된다. 일렉트릭 뮤즈의 김민규 대표나 자립생산조합의 운영진 중 일인이자 즉흥 음악/노이즈 록 음악가인 박다함(그는 최근 '헬리콥터 레이블'이라는 회사를 차렸다)이 ‘제대로’ 소개되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네”, “동네와 골목에 스민 노래”, “도시와 노래는 어떻게 닮아 가는가” 같은 소제목들이 이런 흐름을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 점에서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는 인천에 대한 역사서이자 자료집이면서 인천이라는 도시 공간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그러니까 1년 전에 나는 신문의 연재로 나도원의 글을 접했다. 그때는 여행기와 에세이와 음악사가 거칠게 섞였다고 생각했다. 물론 매 회 정독해서 읽은 건 아니었다. 연재 초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어서 더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10대를 보낸 장소에 대한 ‘이상한 애착’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으로 접하니 그때와는 분명 다른 인상이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다.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체 맥락이 ‘보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성실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게다가 책을 다 읽고 나면 질문을 하나 얻게 된다. 내 경우에는 인천의 ‘음악 신(scene)’이 ‘어떻게’ 단절되거나 희미해졌는가이고, 그걸 극복하려는 시도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어떻게 서울이라는 장소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인가’ 정도다. 요컨대 ‘지역’에 대한 고민을 더 다듬게 되는데, 필자 역시 마지막 장 “인천과 대중음악의 만남에서 어떠한 가능성을 찾을 것인가”를 통해 그 고민의 과정을 드러낸다.
책장을 덮고 이런저런 것들을 메모로 정리해 뒀다.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가 독자의 ‘이상한 애착’과 싸우며 던진 중요한 질문들이었다. 덕분에 이 책 이후의 책들, 혹은 인천문화재단과 애착을 가진 개인‘들’의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대하게 된다. 나는 책의 진짜 역할은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것은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