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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된 황해바다의 오디세이를 복원하다
통권 : 38 / 년월 : 2013년 1,2월 / 조회수 : 1852
강제윤, 『바다의 황금시대 파시』(한겨레출판, 2012.11)

산업화시대에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기를 보낸 나에게 바다와 섬이란 기껏해야 월미도 문화의거리에서 내려다보이는 갇힌 바다 아니면 임해사진촬영대회가 종종 열렸던 작약도의 풍광이 고작이었다. 학창시절 소풍 때마다 질리도록 찾았던 송도유원지 아암도 주변의 갯벌이나, 좀 커서 가본 연안부두 일대의 공장 구조물들로 뒤엉킨 을씨년스런 바다풍경 또한, 인천이 바다의 도시라는 지극히 당연한 생래적 감각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기실 인천의 바다는 자유공원 비둘기광장에서 내려다보는 인천내항의 풍경으로 박제되었다. 철저히 바다가 차단된 해양도시 인천에서 우리는 뭍의 사고방식으로 양육되고 성장했던 것이다.
인천에서 공부하고, 결혼하고, 일하고, 활동하면서 비로소 인천을 다시 공부하는 서생이 되어서야 인천이 바다의 도시라는 것을 알게는 되었으되 그것이 실존적 감각으로 영 다가오지는 않았다. 수도 서울의 인후에 위치한 인천의 주변성을 극복하고 고유한 정체성과 도시비전을 갖추기 위해 인천만이 가진 해양성과 개방성을 글로는 강조하였지만, 인천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백령도, 연평도, 대청, 소청도 같은 서해5도나 덕적, 문갑, 선갑, 백아, 지도, 울도 같은 덕적군도, 대이작, 소이작, 자월도, 장봉도, 승봉도, 신도, 시도, 모도 같은 옹진군의 섬들은 지도 위에만 떠 있을 뿐 섬의 생김새며 특징은 고사하고 그 위치가 어디인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인천 앞바다와 섬들이 비로소 맨 얼굴로 처음 다가온 것은 골프장 개발 논란에 휩싸인 굴업도 때문이었다. 덕적군도의 서쪽 끝에 위치한 굴업도라는 작은 섬이 한 대기업에 의해 골프장 개발이 추진된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서울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2011년 9월 24일 1박 2일 일정으로 굴업도를 처음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룻밤낮 동안 돌아본 굴업도는 ‘보석섬’이라는 풍문처럼 참으로 아름다웠다. 굴업도 서쪽 섬의 개머리초지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진 덕적군도의 아름다운 자연은 뭍에서만 자란 내게는 너무도 황홀한 풍광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온 것은 이 아름다운 섬이 1994년 핵폐기장 건설논란에 이어 대기업의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골프장 관광단지로 독점 개발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굴업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돌아보고 인천으로 돌아온 이후 필자는 굴업도 보전의 한 방편으로 이 섬에 깃든 인간의 역사를 찾아보고 싶었다. 굴업도의 위대한 자연도 자연이지만, 이 작은 섬을 생의 근거지로 삼아 더불어 살아왔던 사람들의 역사를 찾아 알리고 싶었다. 이리저리 급한 대로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신문기사 이외에는 그리 신통한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덕적군도종합학술조사』(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2)에서 지명을 중심으로 간단한 개관이 소개될 뿐 『인천광역시사』나 『옹진군지』에도 별 다른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일제시대 발간된 신문기사들 속에서 굴업도 민어파시의 편린들을 겨우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강제윤 시인이 펴낸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라는 소책자를 만나게 되었다.
『경인일보』에 연재될 당시도 그랬지만, 인천문화재단의 ‘문화의길’ 총서 1권으로 출간된 이후에도 이 책에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파시’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향토색 짙은 사문자로 여겼거니와 책의 내용도 조기파시로 유명했던 연평도에 대한 이런저런 기사를 모아놓은 것이려니 했다. 그러나 굴업도에 대한 자료가 급한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떠들어본 이 책에는 그야말로 보석 같은 어부들의 증언과 생생한 답사보고가 사색 깊은 언어로 갈무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내가 어렵사리 신문에서 판독한 굴업도의 민어파시 전성기와 태풍으로 인한 비참한 파괴상도 강제윤 시인은 이미 다 찾아 읽고 과장되지 않게 기록해두고 있지 않은가! 당시 나의 관심이 온통 굴업도만을 편애하던 탓에 황해바다 전역을 아우르면서도 연평도와 덕적도, 소래포구로 이어지는 그의 폭넓으면서도 속 깊은 관심과 발걸음을 당시에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2012년 재출간된 『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에 생생하게 기록된 근대 파시의 역사는 고스란히 황해바다에서 삶을 영위했던 어부들과 항구도시 사람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바다의 오디세이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위대한 황해바다의 오디세이를 간직한 파시의 역사는 오늘 철저하게 망각되어 왔다. 지나친 남획으로 조기떼와 민어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파시에 모여든 사람들도 자본의 논리를 쫓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산업화시대 개발논리가 뭍에서 펼쳐지면서 파시의 흔적은 철저히 망각되었다. 파시를 대신해 덕적도 서포리 해수욕장 같은 국민관광단지가 조성되고 널리 홍보되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속도전으로 치달리는 뭍의 개발논리가 과포화상태에 이르러서야 자본과 사람들은 다시 바다와 섬을 찾게 되는 것인가 보다. 굴업도 골프장 관광단지 개발논란의 바다와 섬들이 새로이 맞닥트리는 자본의 폭풍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기나긴 망각 속에서 멸실될 위기에 처한 파시의 역사와 흔적들을 한 개인이 이처럼 정성 들여 복원한 일 자체도 놀랍거니와 그의 섬 순례는 지치지 않고 계속되리라 믿는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인천에서 성장했다는 강제윤 시인은 지금도 보길도를 기착지 삼아 인적이 깃들었던 전국의 섬을 순례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 굴업도 보전운동이 계기가 되어 인천섬연구모임을 만들면서 그에게 전화를 통해 여러 조언을 청한 적이 있었다. 마침 그는 연평도를 거듭 순례 중이었는데, 연평도 조기파시의 역사를 간직한 어업조합 건물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보전할 방안이 없을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러나 결국, 진즉에 문화재로 지정되었어야 할 어업조합 건물은 헐려버리고 그 자리에 수협의 번듯한 새 건물이 들어서 버렸다는 사실을 강제윤 시인은 재출간한 『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의 말미, 새로 추가한 에필로그에 담담히 기록하였다. 이제는 그 혼자만 섬의 순례자이자 파수꾼으로 떠돌게 할 일이 아니다. 인천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인천이라는 바다가 없는 도시, 오디세이를 잃어버린 각박한 도시에서 자라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자 약력
1966년 충남 서산생.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원. ihh400@hanmail.net
글쓴이 : 이희환
작성일 : 20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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