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북한이탈주민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를 통해 관련 정보를 자주 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거론되는 순간은 대개 북한정권의 부당성을 비판하거나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이다. 그들은 배경자료나 논거로 언급될 뿐이다. 우리의 관심은 그들이 잊고 싶은 과거, 북한주민으로서의 경험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게 소란스레 주목받는 그들의 과거는 그들의 현실을 압도한다. 북한이탈주민은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일인독재와 가난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여운 자들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주민등록증과 정착지원금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던 사람이 정치적 권리와 경제적 지원만으로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으로 거듭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몇 가지 조작으로 기능이 전환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방인이 타지에 정착하는 것은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해소될 수 없는 사회문화적 문제이다. 그렇다면 북한이탈주민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면서 겪는 어려움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에 우리는 말문이 막힐 것이다. ‘북한주민’에 대해서는 정통하지만 ‘새터민’^{북한이탈주민과 같은 뜻}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 새터민 청소년의 일상을 그린 홍명진의 『우주비행』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품은 북한이탈주민의 어제가 아닌 오늘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삶과 고민을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남한 생활을 갓 시작한 새터민과 성년의 입구에 선 소년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성장담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소설은 북한이탈주민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북한에서의 고난, 탈북, 제3국 체류 등의 이야기를 삽화로 처리한다. 작가는 탈북자를 우리네 통념처럼 과거에 속박된 밀랍인형으로 대하지 않고, 우리와 같은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다.

『우주비행』에서 승규는 동급생보다 나이는 두 살이 더 많지만, 체구는 훨씬 작은 새터민이다. 가족으로 엄마와 누나가 있지만, 중국에서 체류 중인 누나는 생사가 불투명하다. 엄마는 누나를 데려오는 비용을 벌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하고, 이웃인 복씨가 누나의 입국을 돕고 있지만 별 진척이 없다. 새터민인 복씨는 북한에서 유능한 잠수사였지만, 남한에서는 사회 적응에 실패한 알콜중독자이다. 승규는 복씨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해 불안하다. 실제로 남한의 삶은 예상과는 너무 다르다. “아무도 희망이 없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누구도 복씨 아저씨처럼 꿈을 잃고, 살겠다는 열의마저 잃고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해 주진 않았다.”(52면)

승규네 가족은 살기 위해 북한을 떠났지만, 남한의 삶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자유와 거처가 생겼지만, 행복하지 않다. 남한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고, 각박하다. 엄마의 말처럼 “여기선 신호등 불 하나에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64면) 승규는 북에서도 남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유목민처럼 떠도는 자신이 ‘우주의 고아’인 것 같아 속상하다. “나는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거야. 이쪽 아이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이 나라의 고아일 뿐이지만, 나는 어느 나라 고아인지 그것까지 고민해야 돼.”(184면)

그러던 중 승규는 복지사의 소개로 우연히 ‘우주비행’이라는 밴드에서 드럼을 치게 되면서, 생의 활력을 되찾는다. 밴드 생활을 하면서 또래들과 우정을 쌓고 삶에 대한 열정을 키우기 시작한다. 승규는 드럼 연주자로서 밴드의 한 축을 책임지면서,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우주비행』은 희망을 노래한다. 그러나 작가는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남겨 놓으며 새터민의 미래에 대한 무책임한 낙관 또한 경계한다. 예를 들어, 승규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새터민이라고 끝내 고백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내 주머니 속에 꼭 쥐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242면)는 욕망이 마음속에 가득하지만 애써 가까워진 사람들이 떠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홀로 체류 중인 누나의 행방도 이야기의 말미까지 묘연하다. 이렇게 소설은 낙관적 희망에 현실의 비정함을 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물론, 『우주비행』을 읽은 것만으로 북한이탈주민의 현실에 대해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했던 그들의 삶과 고민을 의식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로는 충분하다. 문학의 역할이 사람들이 잊고 있던 세상의 일면을 부각시켜 고민하게 하는 것이라면, 『우주비행』은 그 책임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