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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 최초의 「미학강좌」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통권 : 40 / 년월 : 2013년 7,8월 / 조회수 : 8168
서평 우에노 나오테루 지음, 김문환 편역·해제, 『미학개론, 이 땅 최초의 미학강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년 4월 15일 발간)

 

 이 책은 부제가 설명해 주듯이 이 땅 최초의 미학강좌에 관한 책이다. 저자 우에노 나오테루上野直昭, 1882-1973(이하 우에노로 약칭)는 1926년에 경성京城제국대학에 부임한 이래 15년간 이 땅에서 처음으로 미학미술사 강좌를 담당했던 인물이며, 이 책은 바로 그의 강의노트를 책으로 엮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식민지 하의 미학교육으로 인해 일본 학풍이 한국의 미학·미술사학계에 끼친 영향은 지금껏 수없이 언급되어 왔지만, 의외로 그 구체적인 실체는 구름에 가려져 왔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미학의 전사前史로 볼 수 있는 이 책의 의미는 실로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우선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우에노란 인물에 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그는 1908년에 동경제국대학의 문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재외연구원으로 베를린에서 수학한 후 1927년부터 1941년까지 경성제국대학 미학 미술사 강좌 담당 교수로 근무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고유섭高裕燮, 1905~1944과 미학자 박의현朴義鉉, ~1975 등이 이 시절 그의 문하생이다. 이후 오사카시립미술관 관장을 거쳐 도쿄예술대학, 아이치현립예술대학 학장, 국립근대미술관 관장 등을 역임하였는데, 일본에서는 학창시절을 제외한 65여년 기간 동안 끊임없이 미학·미술사학의 분야에서 많은 저작과 업적을 남긴 성실한 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우에노의 『미학강의』는 총론, 재료미학, 형식미학, 그리고 내용미학이라는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론에서는 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는 미학의 양상 등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우에노 미학이 가지고 있는 심리학적 특징이다. 그는 “미학을 심리학의 한 부문이거나 심리학의 응용”으로 보고 있는데, “미의식이나 미적 태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의식 현상을 기술·설명하여 의식에 나타나는 잡다한 현상을 정리하는 심리학적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학의 범위를 상당히 축소시키고 있는 듯한 이러한 언급은 당시 일본 미학의 시대적 조류를 반영하는 것이며, 그가 당시 일본미학의 대표적인 인물들, 즉 나카에 죠민中江兆民과 자신의 은사 오쓰카 야스지大塚保治를 거론하는 대목과 함께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는 또 미적 대상의 구조를 “감각적으로 주어진 재료를 우리의 의식이 공간 형식으로 종합·통일하고, 나아가 이에 내용을 보충하는 것”으로 규정하는데 이러한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총론을 제외한 나머지 세 장, 즉 『소재미학』, 『형식미학』, 『내용미학』은 각각 미적 대상의 구조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미의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2장의 소재미학은 “감각기관을 통해 직접 주어지는 감각, 즉 색이나 음이 각각 특수한 에너지로서 의식에 미치는 효과”의 차이를 고찰하는 데 대부분 할애되고 있다. 다시 말해 “공간예술의 구성요소로서의 색채·빛이 가진 감정적 효과나 성격을 설명하고, 그것들이 예술 사상에서 응용되는 관계들이 주된 내용”이어서, 색채의 배합과 농담의 관계 등이 마치 색채학 강의를 방불케 할 정도로 면밀히 다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그 예도 일본의 고전적 색으로부터 인상파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회화,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의 제임스 휘슬러James Whistler, 1834~1903에 대한 비평과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작업, 그리고 조선의 흰옷에 대한 언급까지 다양하여 그의 미술사적 관심과 해박함을 보여준다.

 3장의 “형식미학에서는 감각적으로 주어진 재료를 우리의 의식이 공간 형식으로 종합, 통일하는 것을 형식미학”이라고 하면서 주로 공간형식에 대한 미학적 고찰을 진행하는데, 그 내용은 오늘날 예술론에서 주로 조형의 구성요소로 언급되는 선, 대칭, 반복, 황금분할 등에 대한 논의이다. 여기서도 역시 그리스 건축의 세 기둥양식을 포함하여 일본의 신전과 신당, 조선의 경회루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예들을 두루 열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학과 미술사학을 두루 섭렵하고 반드시 구체적인 물상의 예를 들어 미의식을 탐구하는 방법론은 바로 고유섭의 미술사 방법론을 떠올리게 한다. 또 ‘황금분할’에 관하여 설명할 때에는, 실험미학의 창시자 페히너G. T. Fechner, 1801~87, 위트머Lightner Witmer, 1867∼1956, 립스Theodor Lipps, 1851~1914 등의 예를 들어, ‘선호하는 형태’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어, 당시 실험미학이 일본에 끼친 영향도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소재와 형식에 대한 그의 탐구를 보면, 그가 자신의 연구방법을 심리학적이라고 하면서도 일반적으로 객체를 의식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심리학적 방법이라고 하면, 단순히 미적 태도론과 같이 주관주의적 성향을 연상하기 쉽기 때문에 이렇게 재료미학을 형식미학이나 내용미학에 우선시키고 있는 점은 특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마도 이러한 그의 학문적 방법의 특이성은 그가 당시 심리학적 미학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립스의 감정이입미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립스의 ‘감정이입’은 독일미학에 있어서 대립된 형식미학과 내용미학을 심리학적 방향에서 화해, 통일하려고 하는 것인데, 그가 본론의 구성을 소재, 형식, 내용의 측면으로 나누면서도 그 분리의 기준을 매우 애매모호하게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총론의 말미에서 “미적 체험의 본질은 주객의 대립으로부터 시작해서 양자의 폐지로 나아가 주객이 일치하는 체험”이라고 규정하는 대목은 특히 그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4장 『내용미학』에서는 “전체를 종합하는 미적 체험 형태에 입각해서 고찰해 본다면, 포함되어 있는 내용 간에 모순이 있는 경우와 조화가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내용의 모순과 조화’에 근거하여 ‘비애’, ‘동경’, ‘비극’과 ‘희극’, ‘비장’, 그리고 ‘골계’와 ‘후모르Humor’, ‘풍자’ 등에 대해 논한다. 사실 이러한 개념들은 우리에게는 데스와M. Dessoir, 1867~1947의 미적범주론으로 익숙한 분류들인데, 독특한 것은 ‘비애’ 와 ‘동경’을 가장 먼저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특히 당시 일본에 비애미가 상당히 많은 미학자들 사이에 유행적 현상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연구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그리고 역시 그 당시를 배경으로 제기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 1889~1961의 ‘비애의 미론’도 식민지 사관의 관점 이전에 이러한 관점에서도 한 번 더 재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머’를 설명하는 대목도 매우 인상적인데, “모순을 인식하는 지적인 기능이 예민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예술 중 철학적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사물의 일면만을 보고 그것에 몰두하다가는 철학도, ‘유머’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다음 날에야 농담을 이해하는 사람은 철학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여 유머에 대한 이해와 철학자의 자질을 연결하는 대목에서는 ‘유머감각 있는 미학자’라기보다는 오히려 항상 주변적 시선으로 냉철하게 사물을 관찰하는 철학자의 면모가 느껴진다. 그런데 이러한 인상은 아마 언젠가 일본자료를 뒤적이다 보았던 그에 대한 에피소드가 중첩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동경미술학교(동경예대의 전신)의 총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그 학교의 관료주의를 쇄신하기 위하여 모든 교수와 조교수에게 사직서를 일괄 제출받아서, 남기고 싶은 사람의 사직서만 돌려준 다음 재야의 인사들을 대거 등용시켰다는 일화인데, 물론 시대가 대동아전쟁이 한창이던 시대여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겠지만, 그의 성품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라 하겠다.

 그런데 역자도 언급했듯이 우에노는 이 책에서 전반적으로 미의식이나 미적 경험에 대해 많은 장을 할애하면서도, 한국의 문물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총론』에서 잠깐 ‘아악’에 대해 언급한다든지 『형식미학』부분에서 잠깐 ‘경회루’를 언급한다든가 하는 정도여서 확실히 적극적으로 다룰 의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간간히 언급되는 한국문물에 대한 관찰은 상당히 객관적이고 예리한 느낌을 주고 있어, 조선의 미에 대해서 열정적이지만 다분히 감상적인 애정을 표현했던 야나기 무네요시의 관찰과는 대조를 이루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면 야나기에게서 ‘비애’의 미의 근거가 된 조선의 ‘흰옷’에 대해서도 우에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선 흰옷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설명이 없다. 색소가 없었다는 설도 있고, 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결국 증거는 없다. 매우 오래 전부터 입었던 것으로 보이며, 결국 취미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남녀 모두 흰옷을 입는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할 것이다. {중략} 대체로 조선인은 외관상의 품위를 중요시한다고 여겨지는데, 단색으로서는 역시 흰색이 제일 적합할 터, 그런 데에 이 취미의 원천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또 다른 볼거리는 양적인 면에서 본론에 버금가는 추천사, 해제, 부록이다. 이 부가적인 글들의 중요성은 본론에 못지 않는데, 첫째 권영필 교수의 추천사는 단지 추천사의 범위를 넘어 우에노 나오테루와 고유섭의 미술사의 학문적 영향관계를 면밀히 고찰하고 있으며, 마지막에 역자가 첨가한 부록 2편, 『경성제국대학 미학·예술학 관련 외서(1925-1945) 해제』 와 『한국근대미학의 전사』는 한국 미학의 태동과 그 전개를 살펴볼 수 있는 매우 드물고 귀중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미학의 일본영향은 탈식민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에 의해 미학계에서 끊임없이 거론되고 비판되면서도, 그 구체적인 실상이 명백하게 제기된 적도 거의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 영향의 근원이라 할 당시 근대일본미학의 제 상에 대한 연구가 현대서구미학 흐름의 수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극히 미미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문화정책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유입된 미학은, 해방 이후 우리가 직접 서양의 학문을 수용할 수 있게 된 후로는 마치 혐오스런 환부를 대하듯 ‘일본의 근대미학’은 잊어버리고, 직접 서양으로부터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새로운 문화와 지식을 수용해 왔다. 오늘날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가는 예술계의 양상들은 이제 눈이 시릴 정도가 되어, 그 다양하게 확장된 예술현상과 평론을 미학자들이 사색의 느린 걸음으로 쫓아가기에는 숨이 찰 지경이다. 이 책은 그 때문에 자칫 돌아보지 않고 잊어버리기 쉬운 우리 예술론의 근원적 발자취를 뒤돌아보게 하는 매우 의미 있는 책이다. 선학들이 건너온 수많은 징검다리들을 두드려보지 않고는 역시 지금의 미학도 위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 약력
辛那炅
1961년 부산 생. 부산대 강사, 부산시 미술작품 심의위원. 최근 역서로서 『예술의 조건 - 근대미학의 경계 -』(2012)와 『모빌리티와 장소-21세기 도시공간의 전회』(공역, 2010), 그리고 공저로서, 『지역 예술을 말하다』(2012)와 『야나기 무네요시와 한국』(2012)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shinrina@hanmail.net
글쓴이 : 신나경
작성일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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