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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불꽃』, 러브레터의 시대를 열다
통권 : 55 / 년월 : 2016년 1,2월 / 조회수 : 3005
-『사랑의 불꽃』(노자영, 1923년, 신민공론사)

사랑의 불꽃, 러브레터의 시대를 열다

-사랑의 불꽃(노자영, 1923, 신민공론사)

진영복

 

1926년 기차 안 풍경. 어떤 문사가 기차에 타서 보니 수학여행을 가는 여학생들이 기특하게 열심히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어떤 책을 읽나 호기심이 생겨 살펴보니 각각 책 이름은 달랐지만 대부분 노자영의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1920년대 노자영의 인기는 시내에 있는 남녀학생 중에 옥편은 한 권 없을망정 노자영 군의 작품 한 권씩은 거의 다 있다”(김을한, <조선일보>, 1926. 8. 12.)고 할 정도로 대단하였다. 당시 대형 책사(서점)에서 좋아하는 문사를 뽑는 독자 설문에서 노자영은 1위를 차지하곤 했다. 그를 성공한 문사 셀러브리티로 만든 것은 1923년에 출간한 연애서간집 사랑의 불꽃이었다. 이 서간집이 공전의 히트를 치자 그는 청조사라는 출판사를 직접 설립하여 소설집 반항(1923), 시집 처녀의 화환(1924), 소설집 청춘의 광야(1924), 소설집 무한애의 금상(1925)을 잇달아 발표하며 인기 작가로 등극한다.

 

 사랑의 불꽃』, 한국근대문학관 소장

1920년대는 근대 학교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청춘기라는 생애주기가 비로소 식민지 조선에 제도화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노자영은 새로 인식된 청춘기, 즉 학생 세대의 근대적 감각과 감수성을 공략하는 대중적 글쓰기를 시도한 작가였다. 청춘 대중을 움직이는 그의 감각은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한 <학생계><서울>의 편집과 기자를 역임하며 다져졌다. 그는 특히 청춘기의 감각과 감수성을 자유연애로 파고들었다. 그래서 노자영은 청춘기의 학생에게 자기 시대를 선도하고 대변하는 꿈의 아이콘이었지만, 뜻 있는 어른 세대에게는 학생들이 자유연애에 빠져 신세를 망치도록 속삭이는 악마로 인식되었다. 문사 김을한은 남녀학생 간의 풍기 문제와 타락에 대한 간접적인 책임이 노자영에게 있다고 격분하였다.

 

그런데 왜 그 많은 당대 학생들이 노자영, 혹은 자유연애에 그토록 열광했는지 그 현상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연애편지 모음에 불과한, 지금 관점에서는 제목도 유치하게 보이는 사랑의 불꽃1920년대 초중반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청춘기는 제도 교육을 받으며 인격 완성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기준을 정립하며 독립된 인격을 갖춘 개인으로 성장하는 시기인 것이다. 독립된 개인은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것에도 복종할 필요가 없는 자유를 갈구한다.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와 내면의 추구는 개인을 독립된 개체로 완성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사적 영역과 내면으로의 내적 고립을 불러와 개인을 고독에 빠지게 한다. 따라서 고독을 피하고 나의 내면을 알아줄 이해자를 찾아 대화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발생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잘 드러나듯이 자신의 이해자를 찾고자 하는 욕망은 이성에 대한 기대로 손쉽게 전환된다. 즉 자아 확장의 요구는 내면의 이해자를 갈구하는 연애로 전이되고 결혼을 통해 사적 영역이자 내면의 장소인 가정을 완성하고자 것으로 이어진다. 노자영의 사랑의 불꽃1920년대 학생 세대 청춘기의 자아 확립의 욕구, 개성, 내면, 고독의 문제를 연애로 수렴하여 자유연애의 신드롬을 촉발한 셈이다.

사랑의 불꽃의 서간체 양식은 고독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해 낸 자아의 내면을 알지 못하는 타자와 소통하며 자아를 확장하려는 청춘기의 욕구를 잘 담을 수 있다. 더구나 내면의 이해자를 이성에서 구하는 연애편지는 자아 확립의 욕구, 개성, 내면, 고독, 연애를 묶어주는 강력한 매개체가 된다. 1925년에 발표된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를 기억한다면 당시 학생들에게 연애편지라는 현상이 얼마나 뜨거운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지금은 SNS로 대체되었지만, 상당한 기간 동안 유행했던 펜팔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사랑의 불꽃에는 연애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진다. 동경에 가 있는 연인을 생각하며 이 진주의 불이 와글와글 내 가슴에 불타오르고, 이 사랑의 샘물이 내 마음에 출렁출렁 넘쳐흐를 때에는 나는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라며 충만한 낭만성으로 사랑의 감정을 채색하기도 한다. 또한 당신과 나와의 연애는 열정의 연애요 정신의 연애요 이해의 연애니까요, 하늘이 변하고 땅이 꺼질지라도 조금도 변하지 아니할 것이외다.”라며 자신의 연애가 영원할 것임을 맹세하기도 한다. 또한 다양한 청춘의 목소리로 사랑에 실패하고 죽음의 고통으로써 사랑의 정열을 실현하려는 욕구를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강제로 시집 보려내는 부모에 맞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는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한다.”며 자기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그와의 사랑이 자기의 생명의 전부이므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랑을 지키려는 숭고한 희생자를 그려낸다. 사랑이 고통스럽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내면이 진실했다는 점을 반증한다. “낙원의 폭신한 잔디밭에서 쫓겨난 이 나의 가련한 영을 품어줄 만한 사랑()의 보금자리가 또다시 없을 것을 이미 각오하였나이다.”, “누가 살기를 애쓰지 아니하리까마는 사는 맛을 모르는 자에게는 죽음이 도리어 영생의 관문이겠더이다.”라며 실연한 자의 고통을 전한다. 깊은 내면세계를 가진 개인은 그것을 이해해 줄 사랑을 잃어버린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고통이 클수록 진실함을 보증 받고 그런 만큼 구원(인정) 받을 가능성이 더 커지는 종교적 논리와 닮아 있다.

 

연애서간집 사랑의 불꽃에서 자유연애에 대한 반복적 추구는 이해와 사랑 없는 결혼을 부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결혼이 무엇인지 모르고 결혼한 지 3년이 되어 아이까지 두었지만, 충돌과 싸움과 눈물과 한숨뿐이었다며 당신이나 내나 각각 새로운 길을 구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며 아내가 자유이혼을 주장하고, 세상 사람들이 부정한 여자, 화냥년이라고 욕한다 해도 사람으로의 권리를 가진 당당한 사람이어요. 내 마음대로 살고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당당한 사람임을 선언하고 사랑을 알고 사랑을 담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나는 나의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내일 동경으로 떠나며 이혼장을 보내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자유연애와 마찬가지로 자유이혼 역시 자기 찾기의 일환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의 불꽃이 당대 학생들에게 사랑 받은 이유는 세상의 규율과 제도, 가치에 맞서 개인 내면에 있는 자유와 가치, 내적 규율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근대적 개성이 자유연애의 공간에서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청춘 독자는 자유연애를 통해 내 신체와 욕망을 내가 향유한다는 주체의식을 키웠던 것이다. 한편 풍요로운 서구적 삶을 동경의 빛으로 채색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자유연애에 대한 판타지로 대체하는 것도 근대 지식 청년들의 욕구의 투사이자 반영이다.

 




#저자 약력
진영복(晉永福). 동경외국어대학에서 1년간 한·일 문학 비교 연구를 하였으며, 2007년부터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로 재직 중. 저서로는 『자기 지시적 글쓰기의 분석과 해석』, 『유진오 단편집』(편저), 번역서로는 『나는 소세키로소이다』(공역), 『이야기된 자기』(공역) 등. sunjyb@yonsei.ac.kr
글쓴이 : 진영복
작성일 : 20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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