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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과 사람들 : 현실과 귀농 사이에서
통권 : 54 / 년월 : 2015년 11,12월 / 조회수 : 1279
이대원 천주교 인천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사무국장

인천과 사람들 : 현실과 귀농 사이에서

이대원 천주교 인천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사무국장

 

취재·정리 : 박석태

 

- 박석태(이하 박) : 반갑다.플랫폼을 읽어본 적 있나?

 

- 이대원(이하 이) : 오며 가며 대강 읽기는 했지만 꼼꼼하게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 : 현재의 직함은?

 

- : 현재 천주교 인천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 :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했나?

 

- :20052월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한다.

 

- : 주로 하는 일은?

 

- : 한 마디로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만나게 해주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농민회를 지원하여 농촌을 살리는 일도 한 축이 된다. 강화와 김포의 농민회원을 조직하여 당면한 농업 문제나 친환경농사와 같은 일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소비자를 대상으로 환경과 먹거리의 소중함을 알리는 교육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 : 2005년 즈음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한다면 특별히 달라진 점이 있나?

 

- : 초기에는 방금 말한 문제들이 대중들에게 생소했을 때였다. 그런데 그때는 광우병이나 멜라닌 사태가 터지면서 우리의 먹거리 문제가 전면에 대두되었다. 또 그와 관련한 시장이 커질 무렵이기도 했다. 대기업들이 친환경 먹거리라는 사업아이템으로 시장에 진출하면서 경쟁이 심화되었다. 하지만 좋은 먹거리에 대한 논의가 그렇게 공론화되었지만 정작 농촌과 농업 문제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게 없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도 오히려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 한중FTA가 강화, 발효되면서 농촌은 여전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예를 들어 포도는 40년 전 가격으로 폭락했고, 쌀은 유래 없는 풍작을 거두었음에도 정부는 수입을 강행하고 있다. 당연히 쌀 가격은 폭락이 예상된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직함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한 농촌사회에 대한 자괴감이 커질 때도 있다.

 

- : 주제를 바꾸어 보자. 인천에서 태어났나?

 

- : 서울 망원동에서 태어나 3살 때 인천으로 와서 성장했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 건축업을 하셨는데 인천이 개발될 시점이었다. 알다시피 석남동, 가좌동, 신현동 등지에 주택 건설 붐이 일었다. 그때 우리도 인천으로 오게 됐다. 처음에는 석남동에 터를 잡았다.

 

- : 근래 들어 바라보는 인천에 대한 생각은?

 

- : 이곳(한국근대문학관)에 자전거를 타고 오며 (중구에서 조성한) 소위 특성화거리를 지나쳐왔다. 그걸 보며 동화마을이 오버랩됐다. 그런데 사실 외지인들이 인천에 대해 궁금해 하는 곳은 그런 곳보다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송일국네 집 아닌가(웃음). 화려한 송도신도시의 커넬워크 같은 곳을 더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할 몫은 따로 있을 듯하다. 그런데 러시아특성화거리나 동화마을 같은 곳을 싸게 포장하듯 후딱후딱 조성해버리는 걸 보면 솔직히 짜증이 난다. 우리는 여전히 서민의 삶은 등한시한 채 외적으로 보이는 성장 이미지에만 몰두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의무급식 문제만 해도 그렇다. 경기도나 전라남북도 중학교의 경우 100% 시행하고 있지만, 인천은 고작 0.3%에 그치고 있다. 유난히 인천은 친환경급식이나 의무급식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문제가 요즘의 인천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것들이다. 그런 현실을 바꿔보려는 노력도 하고 있지만, 문화 활동 사업에 대한 답답함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막연하게 귀농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다. 70%가 귀농을 꿈꾸고 있다고 하지 않나. 거기에는 막연한 귀농의식도 있을 테고 고향에 대한 갈증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이나 농촌이라는 단어가 주는 편안함도 한편에 있을 것이다. 내가 귀농을 꿈꾸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품고 있는 생각과 실제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괴리감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원으로서의 어려움도 분명 존재한다.

 

- : 향후 계획은?

 

- : 한동안 배다리를 중심으로 마을공동체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로부터도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편이다. 인천이 고향이기 때문에 그런 활동이 좋았다. 하지만 몇 년 후에 인천을 떠나 귀농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인천에 대한 미안함도 생기더라. 늦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활동가가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소시민으로 변화하는 과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하고 있다. 마치 기성세대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결국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저자 약력
朴奭泰, 1971년 서울 생. 미술평론가, 본지 편집주간 stpark07@ifac.or.kr
글쓴이 : 박석태
작성일 : 201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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