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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을 걷다 : 부쩍 커버린 시계, 문학산
통권 : 54 / 년월 : 2015년 11,12월 / 조회수 : 2133

인천을 걷다 : 부쩍 커버린 시계, 문학산

 

|사진 : 유광식

 

 

 

#1 00산이라는 이름

 

지난 1015, 55년간 통제되었던 문학산(217m) 정상 군부대 구역이 인천시민의 날을 맞아 개방되었다. 앞으로 얼마간의 공사를 거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란다. ! 고등학교 시절 주말이면 친구와 경기도 지역의 많은 산을 올랐다. 서울에 살던 그땐 가까운 북한산(837m)과 도봉산(740m)을 자주 올랐는데 한 번은 쉬지 않고 정상 부근까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성장과 성공의 목표를 세우던 철없던 때인지라 쉼 없는 오름을 통해 그 흥분을 진정시켰던 것이 아닌가 판단한다. 높은 산을 올라 넓은 서울 풍경을 즐기던 모습이야말로 옛날 풍류로 일컬어지는 모습과 비슷한 느낌인가도 싶고. 산은 어떤 중심과 무게, 의미가 내재되어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데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도 물론이니 예로부터 산은 이름(가치)이 될 자격이 충분했고 지금도 그 명찰은 유효해 보인다.

 

산을 쫓다가 인천의 계양산(394m)과 만월산(187m)을 접했고 이후 청량산(172m)도 가뿐하게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문학산만은 이 걸음에 쉽게 포함하지 않았다. 작년 초여름에 한 번 오르고 이번이(1019) 전부다. 알고 보면 높은 산은 아니라지만 험준함이 있고 능선을 따라 동서로 방어벽을 치는 것 마냥 길기도 길다. 해안풍과 육지풍을 구분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은데, 바위도 많고 나무별로 성장은 충실하다. 다양한 새의 안내울음을 따라 걷는 각진 걸음이 숱한 자동차의 속도보다 백배, 천배는 느려도 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거늘. 이제야 와보고 이 산 이름값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2 산을 오르는 방법

 

대한민국 동호회 1위가 등산이라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제주 올레(2007)가 걷기 열풍을 만든 지도 어느덧 10년인데 특별할 것 없던 걷기가 두 발 시대로 200만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특별해진 모양을 과연 조물주님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 어찌되었건 높은 엥겔지수에 이은 도시의 소비패턴은 잠시 취미용품으로 옮겨져 등산용품이 구름거품을 달고 구름떼처럼 산으로 들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온몸 치장(원색계열)하고 능선을 따라 걷는(워킹) 등산 패션쇼? 울긋불긋할 시즌, 단풍잎이 뒷걸음치며 놀랄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말고 의연하시길.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더워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가방을 매고 나섰다. 여기서 팁! 겨울엔 절대 입고 가지 말아야 할 것이 청바지다(사실 여름도 그렇다). 여름엔 땀에 젖어 달라붙고 무거워 걷기 힘들고 겨울엔 땀이 빨리 식는 바람에 자칫 추위에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오른 나는. 그래도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빠트리지 않았다. 곳곳에 약수터가 있지만 능선 아래로 내려가야 했기에 음료는 물과 과일(포도)을 일찌감치 준비해 두었다. 요즘은 길안내가 잘 되어 있어서 길을 잃는 경우가 의도적이지 않는다면야 큰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걸음을 재촉해서는 안 된다. 한 숨 한 숨 호흡으로 디뎌 갈일이지 횡단보도 빨간불 5초 전 상황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3 인천, 문학, 산책

 

산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에는 누구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불거진 설악산 케이블카 공사 진행은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몇 년 전 월미산의 물범카 운행조차 지역의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강행되었듯이 백두대간의 산림 훼손, 생태교란 사례는 산 많다던 우리나라라고 방심하면 안 될 정도로 즐비하다. 산악터널, 케이블카, 스키장 및 골프장 마련을 위한 벌목 등 훼손으로 대신하는 이득은 그냥 놓아두었으면 하는 손쉬운 방법 앞에서조차 대체적으로 초라하다. 인천 계양산은 정상까지 나무계단이, 마니산은 돌계단이 수놓아져 있는데 산을 보호하고 위하는 방법이 정녕 무엇일지는 좀 더 공론을 모아 풀어갈 문제다. 군 차량 진입로 명분으로 문학산 또한 정상까지 길은 포장되어 있다. 언제든 자동차 출입이 가능한 상태이니 물범카처럼 언젠가 학카가 운행될지도 모를 일이다(부디 아니길). 산책이 필요했지 주책은 호출하지 않았다.

 

많은 생각을 널어 두게 하는 산행이다. 산 정상 아래 보이는 연수와 남구의 빼곡한 콘크리트 사각박스 안에서 군집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분포를 따져 관계망을 추정해 보는 놀이를 통해 나름의 뜨개질을 하고 내던져 보길 여러 번. 나 사는 작은 동네에서조차 치열하고 퍽퍽한 관계가 많은데 저 아래 넓은 지역은 어떻게 움직여 구르는지 말이다. 그렇게 산행은 자연스레 산책의 감상으로 소환되고 조용히 그리고 마냥 인천을 담아 챙긴다. 옛 선조들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고문헌과 현대사를 통해 칭송되는 문학산의 기록들은 모두 광활한 땅의 관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장치란 생각도 해보았다. 아무튼 나는 두 눈 감고 느끼면 될 노릇이다. 그나저나 군인은 온데 간데 없다.

 

 

#4 또 하나의 시계

 

산 정상 아래 남구 벌판과 연수 벌판은 그야말로 광활하다. 하필이면 이 날 시계(視界)가 좋지 않아 멀리 보지 못했지만 우뚝 솟은 문학산 위계만큼은 뚜렷했다. 1시경에 늦은 점심을 먹는다. 바람은 불다 말다 하고 옆자리 아주머니 두 분은 어떤 악보를 보며 (듀엣) 합창을 한다. 그 옆 어르신 한 분은 옛 군 막사생활을 친구 분에게 열심히 설파하신다. 가을 잠자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정상에서 누구는 사진을 찍고, 누구는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어울리지 않게) 라디오를 크게 듣는다.

 

선학역에서 시작해 길마봉-정상-연경정을 거친 이후부터는 등산로가 꽤 넓었는데 두 명이 함께 지날 정도였다. 어찌된 연유인지는 제쳐두고 그 폭이 주는 여유만을 만끽했다. 양옆으로 소나무향과 나뭇잎들의 스삭거림이 작은 행복감을 더했고 하산하는 태양빛은 춥지 않을 만큼 따스했다. 간혹 월미산 둘레를 산책하는 것처럼 아무 때나 문학산을 오르내릴 수는 없어도 다가온 느낌을 말하라면 어머니 품 같다는 생각이다. 좋아도 싫어도 내 새끼라며 끌어안아 주는 그 한 아름이 좋았던 것! 지도를 살피니 인천의 중앙 아래의 지점인지라 배꼽이 아닌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배꼽산이라 불리어진다는 사실에 무릎을 탁! 쳤다. 어머니의 배꼽!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시계(時計)가 있다. 누구든 인생을 달리다 쉬어 가는 지점이 필요하듯이 오늘의 등산은 잠깐 올라와 보라고 손짓하는 문학산을 내가 그저 바보처럼 올라간 경우다(알람은 누가 해놨을까). 걸음을 통해 사유하고 비워내는 이치가 있듯이 최근 힘든 개인 상황임에도 거닐고 싶었던 문학산이었다. 힘이 드는 상황임에도 힘들여 오른 산, 내려올 적엔 힘이 주렁주렁이네! 오래도록 지낸 인천, 캑캑 먼지 하나 털어보겠다고 올랐더니 가방 부피보다도 큰 의욕을 담아오게 될 줄이야(예상했지).

간혹 산을 바라보며 녹푸름을 칭찬해주는 행위가 엉뚱할지언정 밑천이 된다. 앞으로도 나는 종종 산을 바라며 살 것 같다.

 




#저자 약력
1977년 전북 완주생. 사진작가. 본지 청년기자단. yooaull@hanmail.net
글쓴이 : 유광식
작성일 : 201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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