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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틱 in-Cheon : 무대 위에 홀로 선 배우들이 보여주는 예술, 혹은 삶
통권 : 53 / 년월 : 2015년 9,10월 / 조회수 : 1534
[리뷰] 제10회 인천비타민연극축제 독립예술가 3인 만나다/ 2015년 8월 9일

크리틱 in-Cheon

 

무대 위에 홀로 선 배우들이 보여주는 예술, 혹은 삶

: [리뷰] 10회 인천비타민연극축제 독립예술가 3인 만나다(인천수봉문화예술회관 소극장87·9일)

 

백수향

 

세계가 곧 무대(All the world's a stage)”라던 셰익스피어의 오래된 대사를 꺼내보자. 세계와 무대 간의 유비, 곧 삶과 연극 간의 유비는 자주 빤한 해석에 그쳐버리곤 하지만(“우리는 삶에서 각자의 배역을 맡고 있다거나 연극은 삶을 거울처럼 반영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다소 닳아버린 듯한 이 은유 속에는 기실 종종 잊히곤 하는 사실 하나가 내포되어 있다. 무대 그 자체는 언제나 실제 세계 안쪽에서, 누군가의 삶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 달리 말하자면, 배우는 항상 무대 위에서 배역을 살지만 그것에 앞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1인극의 매혹이 여기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배역과 배역 간 이루어지는 관계에서 배우가 빠져나온 그 순간, 우리는 단지 어떤 캐릭터가 아니라 무대 위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인간을 발견하면서, 결국에는 삶과 예술 사이의 어떤 교점을 확인하게 되지 않을까.

 

10회 인천비타민연극축제의 마지막 행사인 독립예술가 3인의 작업(오정은의 <여행>, 김준영의 <시간에 쫓기는 남자>, 이미라의 <사랑이야기>, 87·9, 인천수봉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세 공연은 서로 연관 없는 주제로 이뤄져 있지만, 우리는 이들을 하나로 엮어 읽어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작품들은 무대 위에 배우가 혼자 서 있다獨立는 데서 오는 독특함을 각기 다양한 형태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는 50번째 생일을 맞은 한 여자가 홀로 서 있다. 몹시도 지난한 삶을 살아온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삶의 의미를 묻다가, 여자는 과거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여행 가방이 열리자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친구의 죽음, 연인과의 이별, 신에 대한 믿음, 시를 좋아하던 학창 시절, 엄마 무릎. 가방을 열면 그 속에 과거의 한 시공간이 들어 있고, 다시 그 가방 속의 작은 가방을 꺼내 열면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식이다. 오정은의 <여행>이 가방이라는 소품으로 기억의 연쇄를 표현하는 방식은 재치 있다.

 

그렇지만 이 공연의 가장 현명한 지점은 인형의 사용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극에서 배우는 과거의 자신을 몸소 연기하는 대신, 인형들을 움직인다. 인형의 손을 잡고 인형의 얼굴에서 눈물을 훔치거나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야기를 다 마친 인형들을 눕히고, 공연의 말미에는 자신 역시 인형의 모습으로 눕는다. ‘과거의 자신이라는 배역 자체는 인형들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 옆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만드는 배우의 존재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특히 배우와 인형이 서로 마주보는 순간은 묘하다. 그녀는 홀로 선 무대 위에서 결국 자기 자신을 마주한 채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두 번째 공연인 김준영의 <시간에 쫓기는 남자>는 잠자고 일어나 출근하는 직장인의 소소한 행동들을 마임으로 표현했다. 남자는 십 수 개의 알람을 맞춰 놓고 이불을 덮고 베개를 베고 눕는다. 이내 알람이 요란스럽게 울리면 세수와 양치를 한 뒤 옷을 입는다. 구두끈을 다 죄었는데 방 안에 물건을 놓고 나가서 깨금발로 들어올 때의 난처함이나, 알고 보니 현충일이더라는 설정의 장난스러움이 유쾌하다. 극은 내용만 보자면 반복되는 일상의 삶을 그린 단순한 소품이지만,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 속에서 달리는 인간의 몸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관객에게 어떤 강렬한 압박감을 준다. 더구나 텅 빈 무대, 단 한 명의 배우를 제외하면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그런 무대는 배우의 몸 움직임 자체를 보기에 최적이다.

 

1인극의 아주 많은 경우, 배우는 객석과 직접적으로 눈을 맞추곤 한다. 이미라의 <사랑이야기>가 꼭 그러한 것인데, 이 극에서 배우는 관객과 대화하거나 관객에게 노래불러주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홍치산의 시 첫사랑에서 모티프를 받았다는 사랑 이야기는, 숫자를 가지고 만든 언어유희 자체에 꽤 치중한 것이라, 아이들한테는 재미있을망정 어른들에게는 조금 낯간지러운 것이 사실이다. 435를 좋아하는 것이 사(4)랑 사이에 있기 때문이라거나, 5를 펼쳐서 로 만들거나, 69가 서로 좋아한다며 하트 모양으로 붙여놓는다거나, 동네 무서운 애들로 18을 꼽는 식이다. 그러나 객석과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이러한 극의 장점 중 하나는, 관객이 이야기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어느 순간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배우의 눈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어쩌면 누군가에게 사랑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유희를 통하지 않고서는 변죽을 울리지 않고서는 곤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야기는 물론 숫자 마을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을 들려주는 배우의 눈빛과 몸짓에도 해당되는 제목이 아닐까. 이야기가 모두 끝난 뒤, 폐품으로 만든 악기와 함께 노래를 들려주던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생각나는 이유다.

 

무대가 누군가의 삶이라면,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삶 역시 어느 순간에 예술이 될 것이다. 관객이 어떤 허구적 배역과 대면하는 것을 넘어서, 극장이라는 한 공간 안에서 인간과 인간, 몸과 몸으로 배우와 만나게 될 때, 그 순간 느껴지는 즐거움은 삶과 예술의 경계를 지워낸다. 이번 인천비타민연극축제의 모토인 삶의 경계에서 예술을 만나다, 예술을 느끼다가 그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듯 말이다.




#저자 약력
공연비평가. 2012년 제5회 플랫폼 문화비평상 공연 부문 수상 loveakechi@hanmail.net
글쓴이 : 백수향
작성일 : 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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