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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극한에서 노래한 시인 한하운
통권 : 53 / 년월 : 2015년 9,10월 / 조회수 : 1969
-한하운 시집, 『보리피리』, 인간사, 1955.

고통의 극한에서 노래한 시인 한하운

-한하운 시집, 보리피리, 인간사, 1955.

 

홍성희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시집 역시 꾸준히 발간된다. 그러나 베스트셀러목록에서 시집을 찾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950년대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가운데 당당하게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이 한 권 있었는데, 바로 한하운의 보리피리1)이다. 19553월 발간된 후 몇 개월 동안, 보리피리를 광고하는 작은 문구와 글들이 여러 신문에 끊임없이 등장했다. 보리피리의 발간을 기뻐하는 신문 기사, 4월에 열린 <보리피리출판기념회>에 다녀온 소감문, 학생 문예지에 투고된 독후감, 노천명 시인의 추천사까지, 당시 이 시집은 중요하고도 인기 있는 주제거리였고, 그만큼 돈이 되는 시집이었다. 발간되고 얼마 안 되어 초판이 매진되고 2, 3판을 거듭해도 책이 모자랐다2)고 하니, 보리피리는 시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경우였다.

 

1955331일 경향신문 3면 광고

 

보리피리는 문학적 기술과 기교를 뽐내는 시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하게 대중성을 겨냥한 연애시집도 아니었다. “나는 문학하는 의도가 명예나 출세하는 것이 아니고 구나사업(救癩事業)과 나환자의 인권보장만이 내가 뜻 하는 바 전부3)”라고 시인이 이 시집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보리피리나병 환자로 사는 것의 심적, 정신적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말하는 시집이었다.

식민지 시기부터 격리와 감금의 대상이 되어왔던 나환자혹은 문둥이, 보리피리가 나오던 1955년에도 기피와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나병 환자 구제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이 당시 문둥이는 구제와 포용의 대상이기도 했다. 따라서 문둥이를 바라보는 55년 대중들의 시각은 이중적이었다. 언론은 나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처를 살해한 건강인을 비인간적이라고 매도하는4) 한편, ‘사회에서 버림받을 딸을 차라리 죽이는 것이 편하리라생각하고 나병에 걸린 어린 딸을 살해한 나환자를 광기에 사로잡힌비인간으로 단정 짓기도5) 했다. 사람들은 나환자의 치료와 구제를 외치면서도, 배고픔에 수용소를 탈출한 나환자들이 거리에 범람한다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6) ‘나환자가 어린 아이의 간이나 생식기를 먹는다는 과장된 공포를 공유하면서, ‘건강인들은 이 불우한 인간들(‘문둥이’)의 치료가 인간들(‘건강인’)의 세계 바깥에 격리된 채 이루어져야 한다고 외쳤다. 사람들은 문둥이를 동정하는 동시에 혐오했고, 그렇기 때문에 문둥이는 때로는 인간으로 때로는 비인간으로 취급되었다.

문둥이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이들의 존재를 인간이라는 범주의 안과 밖 중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를 결정할 수 없었던 곤란에 기인하고 있었다. 천벌과 같은 병에 걸린 그들우리와 마찬가지로 생명과 삶을 가진 존재들이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병균들이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비인간, 건강과 질병, 생명과 죽음 사이의 이분법 속에서 문둥이는 끊임없이 소외되었다. 한하운이 등장하고 그의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여전히 문둥이는 소외되어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였다. ‘문둥이 시인인 한하운이라는 존재와 문둥이임에 관한 그의 시가 대중들에게 호감뿐만 아니라 공감과 애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하운은 불우의 나시인(癩詩人)’으로 처음 이름을 떨쳤다. 첫 시집 한하운시초(1949)7)에서 그는 머리를 긁다 손가락이 떨어지고 길을 걷다 발가락이 떨어지는 광경을 덤덤하게 그려내는 가운데 버섯처럼 어쩔 수 없는목숨을 살아내는 문둥이 한하운의 현실을 담아냈다. 한 비평가에 의해 문둥이리얼리티’8)라고 지적된 것은 그 자체로, ‘문둥이를 기피하고 혐오하는 것에 익숙하던 대중들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그런데 그 리얼리티가 세상에 대한 분노나 자기연민의 언술이 아니라 담담한 서술 속에 담기면서, 이 낯선 것은 감정적인 거부감 없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한하운의 시에서 대중은 공포스럽지도 혐오스럽지도 않은 문둥이를 발견하고, 인간-비인간의 이분법을 넘어서 문둥이 시인의 이야기에 감동할 수 있었다.

문둥이 시인의 시는 문둥이라는 인간 존재의 고통과 그 인간의 생을 처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임에서 보편성을 찾아 공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문둥이처절한 생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보고 병()들 다고/저 느티나무 아래서 성한 사람들이/ 나를 쫓아 냈었다./그날부터 느티나무는 내 마음속에서/앙상히 울고 있었다.//다 아랑곳 없이 다 잊은듯이/그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인간(人間)의 하나하나가/애환(哀歡)이 기쁨에 새로워 지며/산천초목(山川草木)은 흐흐 느끼는 절통(切痛)으로/찬란(燦爛)하고 또 찬란(燦爛)하다.

- 국토편력(國土遍歷)(1955) 부분

 

한하운시초(1949)에서 구천에 사무치도록 처절한 생명의 노래’9)나병의 거죽 속에 담긴 인간이라는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숭고한 그런 것’10)을 발견하고, 보리피리(1955)여름날 길가는 사람들이 샘물을 마시고 가듯이 읽혀지는 시집’11)으로 평할 수 있었던 것은, ‘문둥이의 경험과 고통 속에서 당시의 대중이 자기 자신의 경험과 고통과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과 미소군정, 분단, 그리고 전쟁이라는 현실을 살아내고 있던 당시의 대중들은 삶의 고통의 극단을 보여주는 문둥이의 리얼리티에서 생명이라는, 공감과 치유의 지점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문둥이인생에서 감동을 느끼고 삶의 고달픔 자체에 공감하는 독자들의 마음이 문둥이에 대한 이분법적 태도를 넘어서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오히려 그 이분법을 강화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분명 문둥이는 한하운의 등장으로 인해 이전보다 인간다운 존재로 생각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문둥이건강인이라고 표현되던 정상인들만큼 인간일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해, ‘문둥이는 이제 괴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도 아니었다. ‘우리와 조금 더 가까워진, 그러나 여전히 그들인 위치에 한하운이, 그의 두 번째 시집 보리피리의 대표시인 보리피리가 있었다.

 

보리피리 불며/봄 언덕/고향(故鄕) 그리워/—ㄹ 닐니리.//보리피리 불며/꽃 청산(靑山)/어린때 그리워/—ㄹ 닐니리.//보리피리 불며/인환(人寰)의 거리/인간사(人間事) 그리워/—ㄹ 닐니리.//보리피리 불며/방랑(放浪)의 기산하(幾山河)/눈물의 언덕을 지나/—ㄹ 닐니리.

- 보리피리(1955) 전문

 

이 시는 보리피리에 실린 열일곱 편의 시들 가운데 가장 사랑받았던 시이다. 이 시는 한하운의 대부분의 시들에서처럼 화자를 문둥이로 읽게 만드는 전략을 취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어딘가로부터 떠나온 사람이 느끼는 그리움과 애환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 청각화함으로써, ‘—ㄹ 닐니리라는 소리 속에서 모든 독자가 그 애잔함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한하운의 시인 줄 모른다면 보리피리문둥이의 삶에 관한 시로 읽힐 필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하운의 시는 거의 언제나 곧바로 문둥이의 시로 읽혔다. 당시 한 학생 독자는 이 시에 대한 비평문12)을 썼는데, 그는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 보리피리 소리에 담겨있는 그리움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과는 전연 다른 유의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핵심적으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으로서 남을 울려 놓을만한 슬픈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 자체에서 문둥이성한 사람은 이미 이질화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보리피리가 그려내는 문둥이의 슬픔은 철저히 그들의 슬픔이 되고, 그것을 읽고 눈물 흘리는 우리의 슬픔과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분리된다. 이 분리 가운데, 독자로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슬픔은 공감이라기보다는 그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 가까운 것이 된다. 독자들은 문둥이임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느끼게 됨으로써 괴물-인간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지만, 바로 그 안타까움을 통해 문둥이우리와 다른 대상으로 고착화시킴으로써 문둥이-건강인의 이분법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문둥이라는 타자의 삶은 우리의 마음에 와 닿아 그 고통과 외로움을 상상하며 눈물 흘리게 만들지만, 그 눈물이 타자에 대한 것으로 남는 한 눈물은 다만 소비될 뿐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슬픈 타자의 존재로 인해 우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게 된다. 한하운의 시를 두고 문둥이의 리얼리티를 말하고 그것에서 느껴지는 인간이라는 것을 말할 때, 리얼리티인간우리의 그것들과는 분명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고, 분리되어 있어야지만 이토록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시집 보리피리여름날 길가는 사람들이 샘물을 마시고 가듯이 읽혀지는 시집’13)이라며 추천하는 데에는, ‘문둥이의 안타까운 이야기 한 모금이 건강인들의 발걸음을 무겁게가 아니라 가볍게 만들어준다는 역설이 담겨있다. ‘문둥이한하운에게서 비극을 발견하고 그 비극 속에서도 살아있는 생명을 발견함으로써, ‘건강인들은 신발끈을 더욱 단단히 묶으며 씩씩하게 걸어 나간다. 그 가운데 문둥이한하운은 나병 환자들의 구제를 꿈꾸면서 쓴 시가 나병 환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인들을 위해 소비되는 아이러니 속에 갇힌다.

 

문둥이 시인의 위대한 문학적 성취와 대중적 성공은 언제나 문둥이라는 접두어를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혹처럼 달고 있어야만 했다. 당시 문단에서는 주목할 만한 책이 나오면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는 대다수 문인들이 적극 참석을 했다. 그런데 보리피리출판기념회에 온 문인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14)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를 사양한 문인들의 태도는, ‘문둥이 시인건강인 시인무리 바깥으로 밀어내려 했던 당대의 의식을 드러내준다. ‘문둥이건강인사이의 벌어짐은 곧 한하운을 묘사하는 두 어휘, ‘문둥이시인사이의 간극이었다. 동료 문인들에게 한하운은 시인이기보단 문둥이였고, 그의 시집이 인기 있는 것은 단지 그가 시 좀 쓸 줄 아는 문둥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어쩌면 한하운의 시를 사랑한 대중 독자들 역시 가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하운과 그의 시는 포섭되면서도 배제되었고, ‘내부에 있으면서도 진정한 의미의 내부로부터는 유리되어 있었다. 이 간극은 문둥이 시인인 한하운에게는 영영 해결되지 않을 고독과 고통, ‘어쩔 수 없는 목숨이었다. ‘베스트셀러보리피리에게 역시 마찬가지였다.

 

1) 한하운, 보리피리, 인간사, 1955.

2) 김창직 편저, 가도가도 황톳길, 지문사, 1982, 35-36.

3) 한하운, 서문, 보리피리, 인간사, 1955.

4) 나병아내 살해범 징역십년언도, 경향신문1955216, 2.

5) 전염한딸을살해 나병환자구속, 경향신문1955829, 3.

6) 나병환자거리에범람 배고파수용소탈출, 동아일보1955617, 3.

7) 한하운, 한하운시초, 정음사, 1949.

8) 이병철, 나시인 한하운시초 한하운시초를 엮으면서, 신천지44, 1949.4. 176-177.

9) 이병철, 나시인 한하운시초 한하운시초를 엮으면서, 신천지44, 1949.4. 176.

10) 정태용, 필연과 자유 한하운의 시를 보고, 신천지46, 1949.7. 154.

11) 노천명, 보리피리 한하운 시집, 동아일보1955614, 4.

12) 이영자, 한하운의 인간상 시집 보리피리를 중심으로, 학생문단12, 1955.12. 83-86.

13) 노천명, 보리피리 한하운 시집, 동아일보1955614, 4.

14) 출판기념회, 경향신문1955423, 4.

 

 




#저자 약력
홍성희(洪性嬉) 1988년 서울 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현대시 전공. angela357@naver.com
글쓴이 : 홍성희
작성일 : 20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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