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취재·글 임소연(본지 청년기자단)

‘구 보’

인터뷰이 선정과정에서 ‘장구보’라는 이름을 접했을 때 내 머릿속에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고,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연상작용이었다.

‘구보 씨…구보 씨…(소설에서처럼) 허무적이고 산책을 즐기시려나….’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이미지는 소설가 구보 씨였다. 그러나 이미지는 실제와 다르다.

역시나. 내가 만난 현실의 구보 씨는, 소설 속 소설가 구보 씨와는 달랐다. 현실적 공연예술가 구보 씨였다. 흔히 예술가들은 비현실적인 면이 많다고 여겨진다. 정말 그럴까. 현실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은 비현실적이지 않다. 역설적으로 현실적이다. 내가 만난 구보 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Q. 안녕하세요. 구보 선생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인천에서 태어났고, 인천에서 자랐고, 인천에서 활동하고. 즉 인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무용예술가 장구보입니다.

Q. 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 스토리를 들려주세요.

- 초등학교 때 우연히 무용을 시작했다가 그게 족쇄가 되어서 무용의 길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중학교 때는 무용반 부재로 쉬었다가 고등학교 때 (부평여고) 무용반에서 활동을 했죠. 당시 선생님 권유로 시작했고, 소질이 있었던지 대학도 현대무용전공으로 진학했어요.

Q. 어떻게 보면, 선생님 본인의 순수한 관심이나 열정으로 시작했다기보다 누군가에 의해 소질이 발견된 케이스네요.

- 네. 순수하게 즐겨서 시작했던 건 아니고. 사실 그 때는 잘 모르잖아요.

Q. 졸업하고 서울에서 활동할 수도 있었는데, 인천에서 공연예술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 대학에서 막상 현대무용을 전공하면서 경험해보니까 계속 공부할 만큼 매력을 느끼진 못했어요. ‘아, 내가 이렇게 밀도 있는 집단에서는 자유로운 창작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2000년부터는 지역에서 활동하게 되었죠.

Q. 2000년도에 현재의 구보댄스컴퍼니가 태어난 건가요.

- 네. 그때 태동이 된 거죠. 구보댄스컴퍼니는 (당시에 아카데미 활동으로 알게 된) 제자들과 함께 ‘재미삼아’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원금도 받지 않고 했으니, 편하게 했죠. 지금까지 15년 동안 많은 레퍼토리들도 나오고, 기획했던 여러 가지 사업들이 다양해지면서 무용단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요.

Q. 현장에서, 예술교육과 공연예술을 하면서 보람 있었던 순간을 꼽아본다면요. 주로 언제 보람을 느끼세요?

-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하면서, 그들이 밝아지는 모습을 보게 될 때요. 그 친구들이 밝아지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보고 부모들이 감사하다고 할 때, 그때 보람을 느끼고요. 또 한 번은 어머니들, 할머니들이 공연을 할 때 손주들이, 가족들이 호응하면서 즐거워할 때 그 모습들에서 보람을 느껴요. 노인 분들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하나의 작업이었어요. 그 잠깐 배우시면서도 활기가 생기더라고요. 그 분들이 처음으로 무대에 서보고, 주인공으로 재조명되었던 거죠.

공연예술의 경우에는 사회비판적인 것, 이러면 안 되는데… (웃음) 사회비판적인 작품들을 많이 해요.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는 것들. 예를 들면, ‘동사무소에 쌀을 타러 가는 틱 장애자의 하루’라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그렸는데. 이런 작품들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했을 때.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 교육은 교육대로, 공연은 공연대로 보람을 느끼지만 보람을 느끼는 건 1분. 육체의 고통은 1년. (웃음)

Q. 인천의 공연예술 문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경쟁력이 있다고 보세요?

- 지역 내에서는 아직 수준을 얘기하기가…. 토양이 없어요. 무슨 얘기냐면, 신진들이 없어요.

나 이후에 누가 또 20년 이상을 할까? 하면 답은 없는 거죠. 제일 문제인 건, 문제의식이 있어야 할 사람들이. 문제의식이 없다는 게 문제죠.

Q. 춤 이외에 좋아하는 문화예술 분야가 있으신가요?

- 제가 무용을 안 했다면 미술을 했을 거 같아요.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제가 미술에 좀 감각이 있었다라고 하더라고요. 초등학교 때인가 미술대회서 입상한 적도 있고, 예전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제가 난을 그렸었는데 “미술 해 볼 생각 없느냐”는 권유를 받았던 기억이 나요. 미술을 했을 거 같아요, 무용이 아니었다면.

Q. 미술에 대한 관심, 어렸을 적 인정받았던 경험 등이 무용에도 좋게 작용할 것 같아요.

-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이미지나 색감에 강해요. 미술 성향이 있는데, 공연예술(무용)에서도 도움 많이 받아요. 무대의상이나 세트나…. 그래서 이에 기초해서 시놉시스를 짜거나 안무를 구성하곤 해요. 도움이 되죠.

Q. 소위 '그분'이라고 하는,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어떻게 받으시나요?

- 좀 전에 이미지나 색감에 강하다고 이야기했듯이, 저는 독특하게 잡지를 보면서 이미지나 비주얼적인 것을 포착해요. 압축적이고 생략적인 것들이요. 사진도 마찬가지로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잖아요. 그런데서 많이 소스를 얻곤 해요.

Q. 다시 10대 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이 (무용의) 길을 택하실 것 같으세요?

- (웃으면서 단호하게) 절대 그럴 일은 없어요,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되죠? 한 번이면 만족해요.

Q.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바람이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를 위해…쉬고 싶어요. ( 웃음 )

#. 편안한 리얼리스트 구보씨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관계로 만나 인터뷰가 주목적이었지만, 인터뷰보다는 한 편의 이야기책을 경험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공감 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겉도는 이야기, 뒤돌아서면 허무한 이야기, 무슨 말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아닌.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 웃었다 말았다 굴곡 있는 이야기,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소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소통은 늘 기대하는 일상적인 꿈이다. 많은 이야기들 나누면서 가장 공감 가는 대목을 꼽아보자면 단연 마지막 순간이었다. “쉬고싶어요.” 라는 그 한 마디.

예술이 마음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것처럼 무용예술가 구보 씨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편안함을 전해주는 예술가이자 좋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