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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는 글 : 애도와 복고,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
통권 : 50 / 년월 : 2015년 3,4월 / 조회수 : 1423

1.

지난 연말 한 월간지에 어느 작가의 전시 리뷰를 쓸 기회가 있었다. 나로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글이었고, 글은 새해를 여는 신년호에 실릴 예정이었다. 작가의 이름은 송현숙. 어디에나 한두 명쯤 있을 법한 흔한 이름으로 보이지만 작가로서의 그 이름 속에는 여러 의미들이 겹친다. 먼저 이른바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드높이던 1970년대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 시대의 두려움과 맞서야 했던 개인으로서의 모습이다. 파독 간호사로 정든 고향을 떠나 땅 설고 물 선 미지의 나라에 발을 들여놓을 때의 생경함과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 지금의 우리에게 유럽이란 고색창연한 역사의 흔적과 멋스러운 낭만을 간직한 동경의 대상이어서 유럽, 어디까지 가봤니?”라고 호기롭게 묻는 (우리나라 일등) 항공사의 광고 카피에 은근하게 주눅 드는 처지지만,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됐던 그때의 그분들에게는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객지였을 터이기에 어깨에 짊어졌을 그 두려움의 크기와 두께를 나는 감히 짐작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에게는 스스로 낯섦이 주는 두려움을 치유하는 거의 유일한 방편이자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상실감의 탈출구였을 것이다. 독일 병원에서 간호사로 4년을 근무한 그는 함부르크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지금까지 독일과 한국을 넘나들며 18회의 개인전을 여는 등 꾸준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듯 송현숙 작가의 이력에는 힘겨웠던 우리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의 궤적이 녹아들어있다. 한 여인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그의 발자취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유일 게다.

장황하게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그의 개인전에서 마주한 한 장의 그림 때문이었다. 전시장 한가운데에 걸린 <붓질의 다이어그램(416일 세월호 비극을 생각하며 그림)>. 검디검은 배경을 가로지르는 길쭉하고 흰 형상,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빠르게 지나갔을 붓질은 그러나 진중해 보였으며 그 진중하고도 단호한 붓질은 무엇인가를 친친 감고 묶다가 다시 풀기를 반복하는 듯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움직임이 없는 그림이 둔중하게 움직이기를 반복하고 고요한 아우성이 연신 귓가를 윙윙거리며 울렸다.

그 즈음 나는 연말을 보내고 있었고, 곧 다가올 새로운 해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칠흑 같았던 2014년은 마치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처럼 질기고 느렸다. 그러나 느리게 가는 한 해의 끝에서 목도한 그 그림은 새해만을 있는 힘 다해 기다리던 나를 무력화시키며 단 한 순간에 모든 기억을 소환시켜버렸다. 4월의 비극과 이후 마주했던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이상해서 참혹한 현실들이 다시 아프게 눈앞을 휘청거리며 지나갔다.

친친 묶였다가 다시 풀리는 흰 형상은 망자의 넋을 위로하며 감았다가 풀어주는 붕대인가. 작가는 그 먼 타국에서 어떤 심정으로 검은 배경과 흰 형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는가. 무엇보다 나는 왜 그가 건네는 이야기에 그토록 난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가. 본디 애써 외면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 이토록 아팠던가.

 

2.

되돌아오는 길, 거리 곳곳에서 들리던 90년대 노래들. 안간힘을 다해 추억을 호출하고 애써 좋았던 시절을 다시 소비하는 소환된 기억의 시대에 불과 몇 달 전의 이야기는 피로를 일깨워주므로 외면 받는다. 애도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다.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의 복고 열풍에서 시작해 경연 형태를 표방한 음악 프로그램을 거쳐 그 시절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에 이르러 90년대라는 얼마 되지 않은 과거는 우리 앞에 프로그램과 음원의 폭발적 소비라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우리는 과연 순전히 90년대라는 대중음악의 부흥기를 이루었던 아티스트와 음악 콘텐츠에 열광했을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의 지적대로 벗어나고 싶은, 그래서 잊고 싶은 쓰린 현실을 과거를 반추함으로써 덮으려 했을까?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각자의 선택에 달린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 저편, 이 땅을 떠난 지 40년이 넘은 한 사람은 붓을 들어 스러져 간 넋을 위로했고, 찬란했던 시절의 흥겨운 음악에 포위된 서울 한복판에 그 흔적을 걸었다. 가장 강력한 소비의 주체가 된 40대가 건너왔던 90년대, 그 시대의 소환이 결코 그른 일은 아닐 게다. 찬란했던 젊은 날의 기억을 회상함으로써 지금 위안을 받을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세대에 속한 사람이고, <토토가>는 찰나의 위로를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잘 기획된 상품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과 회상에 길고 짧음이 있을지, 호흡이 긴 기억이 그렇지 않은 회상보다 큰 가치가 있을지 대답할 수는 없다. 때로는 지속적인 기억이 애도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기억에의 강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아픈 기억을 지우고 애도를 멈추는 그 순간, 또 다른 세월호가 우리를 가라앉게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애도라는 행위의 이면에는 반성과 다짐이라는 기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도는 복고 현상처럼 폭발적으로 소비되거나 휘발되어서는 안 된다. 소비하여 휘발된다는 것은 단순한 기억의 재생을 넘지 못하는 일회성 사건으로 끝날 공산이 크지 않은가. 오늘 복고는 소비되지만 먼 훗날 그것이 우리의 남은 삶에 의미 있는 지점을 마련해주었다고 과연 누구라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여 진정으로 위로 받고 싶다면 애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다시 부쩍 추운 바람이 부는 오늘이지만 곧 봄은 올 것이다. 봄은 4월을 포함한다. 이제 토요일은 가수다가 아니라 ‘4월은 애도. 그것이 지구 반대편에서 잠자코 붓을 들어 애도를 바친 한 예술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 이 글은 격주간 기획회의』 387호(20153월 5일)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하여 재수록함을 밝힙니다. 

 




#저자 약력
朴奭泰, 1971년 서울 생. 미술평론가, 본지 편집주간 stpark07@ifac.or.kr
글쓴이 : 박석태
작성일 : 20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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