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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천재
통권 : 55 / 년월 : 2016년 1,2월 / 조회수 : 32263

어머니의 천재

 

유종인

 

 천재라는 말 속에는 하늘이 들어 있다. 그 하늘이라는 말 속에는 불가항력이라는 뉘앙스가 여실하다. 거역할 수 없는 재능이나 재주 같은 걸 타고난 사람을 흔히 천재라고들 한다. 남다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남다른 천혜(天惠)를 누리는 것이 천재의 지복인 듯이 말이다

 그런데 천재라는 뉘앙스를 둔재라는 말과 동격(同格)으로 써보면 어떨까. 재주가 없는 것은 아주 현실적인 판단과 세상의 평가나 평판에 기대어 곧잘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천재와 둔재를 두동진 것으로만 본다면 삶은 조금 단조롭고 씁쓸할 것이지 아닌가. 나는 둔재 속에 들어있는 저 아득하고 어웅한 재주의 일단이 있을 거라 여긴다거친 원석의 겉만으로 보고 그 안에 든 보석이 형편없다 예단하는 것은 왠지 안타깝다둔재 안에 든 천재를 꺼내주는 스승이나 사부가 있다면 그는 굳이 세간의 학력이나 소위 스펙 그리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나에게 천재는 어머니다. 어머니는 내게 다시없는 천재였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도 한글을 잘 몰랐고 그래서 내가 천천히 한글을 가르쳐 드렸다.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인데 그때서야 큰 글씨의 성경을 읽으시기 시작했고 삐뚤빼뚤 성경 구절을 공책에 베껴 쓰기 시작하셨다. 글씨 쓰는 속도가 굼뜨고 그 글씨들은 하나같이 투박하여 영악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당신의 글씨와 글 속에서 나는 모종의 진솔함이 감도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모양이 찰떡같기도 하고 인절미 같기도 하며 장독의 간장독에 넣는 둥근 동돌 같기도 했다. 때론 화단을 슬며시 넘어가는 채송화의 미소 같기도 하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하느님과 질박하게 내통했다.

 

가족 속에 어머니는 늘 품이 내외로 늡늡하고 웅숭깊다.

 어머니는 손이 컸다. 요즘은 손이 크다는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기를 좋아하셨다.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지만 소소한 것이라도 넉넉히 주지 않으면 마음이 기껍지 않은 성정을 지니셨다. 비록 속고쟁이를 헝겊을 대고 기워 입으실지언정 남에게는 머드러기 같은 것을 먼저 건넸다. 그럼에도 그 베푸는 손이 조용했고 조금 환했다. 울타리를 넘어간 호박넝쿨에서 딴 애호박은 집에 두기 뭐해서 대나무 채반에 얹어 이웃 할머니에게 건넸던가.

 

그것은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리(五里)가 넘는 성당을 걸어 다니시면서 아끼신 돈으로 아들의 용돈을 주셨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십여 통이 넘는 양봉(養蜂)을 하셨다. 수없이 벌에 쏘이면서도 큰 내색 한 번 없이 묵묵히 벌을 치셨다. 벌통을 몇 번 보시고 나면 벌에 쏘인 손이 털장갑을 낀 것 마냥 퉁퉁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럼에도 봉침(蜂鍼)을 맞은 거라며 맑고 쓸쓸하게 웃으셨다. 그런 어머니의 양봉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요일의 벌통 주위를 지키는 것이었다. 벌들이 많은 탓에 이런 벌들을 잡아먹는 일명 왕퉁이라 부르는 말벌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완행버스를 타고 삼십 여 분 거리의 오산읍 성당에 가시고 나면 나는 나무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벌통을 지켰다. 내 손에는 매미채가 들려 있었다. 매미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벌을 잡기 위해서였다. 말벌이 한 번 습격하면 벌통은 거의 초토화됐다. 말벌이 오면 날래게 매미채를 휘둘러 녀석을 잡아 땅바닥에 놓고 짓이겼다. 어머니가 애지중지 치시는 벌들을 지켜야지만 가을에 맛있는 꿀을 딸 수 있었다. 어머니는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게 하려고 아무런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손수 양봉을 하셨다. 학교 소사아저씨의 은근한 질시와 멸시를 감내하며 양봉기술을 체득해 나가신 것이다. 원통형의 벌꿀채취기에 벌집을 3채인가 4채를 넣고 돌리면 원심분리의 작용에 의해 진하고 투명한 꿀이 흘러나왔다. 더러 악착같이 달려온 벌들이 제 꿀 속에 빠져 헤매기도 했다. 그렇게 채취한 꿀은 봄의 아카시아꿀과 늦여름의 밤꿀, 그리고 잡꿀 등이 생산됐다. 요즘처럼 계량화된 꿀 병이 없던 시절이라 정종 병을 세척해 거기다 꿀을 담아 팔았다. 겨울철 흰 가래떡을 꿀에 찍어 먹으면 바깥의 황소바람 소리가 덜 삭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방바닥에 엎드려 겨울잠에 든 벌들의 안부가 잠깐 궁금하기도 했다. 저 녀석들 바깥에는 영하의 추위와 눈보라가 살벌한데 그 좁은 벌통 속에서 답답하지는 않을까. 혹여 저 녀석들도 겨울잠에서 깨 뭐 심심풀이 소일할 만한 것은 있을까 해찰을 떨기도 했다.

 

평생 자기 소유의 땅 한 평 가진 바 없는 어머니 곁에 그냥 가만히 서있어도 좋겠다.

어서 봄이 찾아와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들과 산을 뒤덮을 때 벌통을 그 산자락에 갖다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그런 겨울이면 쌀을 불려서 방앗간에 가서 빻아 왔다. 말린 호박꼬지와 서리태 콩을 넣고 백설기를 쪄주셨다. 설탕을 넣지 않아도 호박꼬지에서 단맛이 나왔다. 부엌칼로 네모지게 잘라 접시에 바쳐 이웃에 떡을 돌리기도 했다그건 김이 펄펄 나는 단맛이 든 눈보숭이처럼 보였다이듬해면 벌통에서 분봉(分蜂)한 벌떼가 집 주변의 고욤나무에 앉아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걸 어머니에게 알렸다. 어머니는 얼굴에 보호망을 쓰고 고욤나무에 올라가 덩어리진 벌떼를 벌통에 담아 내리셨다. 또 한 통의 벌통 가족이 생긴 것이다. 분봉해 나간 벌들을 제때에 벌통에 들이지 않으면 벌들을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야생벌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분봉해 나간 벌을 다시 불러들인 날은 큰 수확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기껍고 뿌듯하며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이십 여 통 가까운 벌통을 운영하셨다. 어린 날 내게 꿀은 책 속이나 어떤 관념 속의 꿀이 아니라 생활 속 어머니의 수고와 그 결실을 아는 혀의 맛이었다.

어머니는 카톨릭에 독실하셨지만 이런 풍경 속에 손잡고 와서 점심 먹고 싶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그 많던 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허망한 생각에 빠지곤 한다. 아마 목숨을 다해 죽었거나 야생벌이 돼 새끼에 새끼를 치며 그 후손들이 산야에 살고 있을 거라 여긴다. 어머니가 주위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욕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어디서 배워온 것일까. 하느님과 진심으로 내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경지였다. 믿음을 종교라는 틀에 묶지 않고 마음에 너나들이 배어둔 어머니였다. 가난했지만 베풀 것을 찾았다. 가난을 가난하게 하지 않았다. 가난에게서도 무언가 나올 것이 있고 만들어질 것이 있음을 당신은 몸소 사셨다.

 

너무 억울하거나 뼈아픈 고통을 당하시면 가만히 우셨다. 그 가만한 울음 속에 하느님이 얼비칠 때도 있었다. 용렬한 아들은 그 슬픔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슬픔이 남에 대한 증오나 배격으로 옮아가지 않는 슬픔임을 안다. 어머니의 영혼 속에는 누군가를 위한 꿀이 도래샘처럼 흐르고 있다. 어머니의 꿀은 사랑이었다. 비록 가난한 세 자매의 맏딸로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느라 배움도 포기해 학력이 일천하셨지만 그 늡늡한 마음과 가난을 비탄의 둥지로 만들지 않는 손재주만은 비상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손이 컸다. 손이 큰 사랑을 하시다 가셨다. 그것은 어머니가 가진 천재였다.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자식과 남을 위해 쓰는 사랑을 하셨다. 그것은 하늘과 당신의 노력이 공모한 삶의 결이었다.

 

천재는 타고남만이 아니라 노력을 하는 즐거운 고통 속에 도드라지는 바가 있다 하겠다. 나는 어머니 곁에다 채송화와 패랭이꽃 그리고 장미가 있는 화단과 채마밭 몇 평을 꾸려 드리고 싶다. 가끔 나는 그런 어머니의 눈길이 지긋해지는 화단을 적시는 소낙비였다가 여우비였다가 하고 싶다. 내내 당신 사랑의 천재를 조금씩 꾸어다 내 생활의 주변을 밝히고 싶다.

생전에 못 보고 가신 손주들이 운주사 와불 눈두덩이를 어루고 있다.

 




#저자 약력
劉鍾仁 68년 인천 출생. 1996년 『문예중앙』 시 신인상,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0년 플랫폼문화비평상 미술 부문 수상,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저서로는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 『혜초의 사랑』,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수수밭 전별기』, 『교우록』, 『아껴 먹는 슬픔』,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 산문집 『염전』 등이 있다.

jongin-yu@hanmail.net
글쓴이 : 유종인
작성일 : 20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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