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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과 정착 사이
통권 : 54 / 년월 : 2015년 11,12월 / 조회수 : 2065
난민을 다룬 최근의 영화

탈출과 정착 사이-난민을 다룬 최근의 영화

 

이수향

 

영화가 가진 환영의 효과는 현실의 복잡한 양상을 단순화시킨다. 이를 통해 우리는 눈요기를 하고 재미를 얻고 시간을 때운다. 때로 영화는 현실의 복잡다단한 중층성을 극대화하고,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지점들을 말 그대로 ‘showing’한다. 이때 우리의 킬링 타임은 멈춘다. 당혹감에 판단 중지된 우리의 사고와는 상관없이 영화의 쇼트가 계속되다 영화가 끝나버릴 때 우리는 영화를 다시 반추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의 일들을 인터넷의 짧막한 기사로만 소비할 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손가락을 좌우로 빨리 움직여 이 기사를 넘기고 다른 화제에 몰두할 것인지 아니면 내내 찜찜한 기분을 유지할 것인지. 영화가 가진 환영의 법칙은 이러한 경우 우리의 몰입을 가속화시킨다.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나 토픽이 가진 추상성을 걷어내어 우리의 중추신경을 자극한다.

 

터키 남부의 해변에 마치 장난꾸러기 아이가 놀다 싫증나서 버린 인형처럼 뒤집혀 누워있는 한 아기의 시신이 떠내려 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슈로서의 난민이 아닌 실체로서의 한 생명의 죽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 아이의 죽음은 많은 이들을 슬프게 하고 공분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부표처럼 떠돌게 된 것이 오로지 그들의 사정일 뿐이라는 결론에 수렴될 때 우리는 또 잠깐의 감정적적 소구로만 이것을 소비하고 만다. 그렇다면, 가장 최신의 사회적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전경화될 수밖에 없는 영화장르에서 난민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 ‘난민이라는,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고유한 거류지를 떠나 이리저리 떠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영화에서 주로 이민자로 그려진다. 두 가지는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이민자이전에 그들은 난민이었다. 타국 땅에 발을 내딛은 후에도 이민자로서의 삶이 여전히 불안정한 신분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이들의 난민으로서의 위치는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웰컴, 삼바>(2014)는 감독들의 전작인 <언터처블: 1%의 우정>(2011)에서 전신마비의 백만장자와 이민자 출신 백수의 우정을 다뤘던 내용을 멜로 버전으로 다시 찍은 것 같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들어온 이방인을 배제의 대상이 아닌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그 자체로 보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들에서 흑인 배우 오마 사이가 연기한 드리스나 삼바는 그들의 신분적 불안정에서 오는 문제와 사회의 냉소적 시선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 칙칙한 얘기는 걷어치우고 시종일관 경쾌한 농담과 격의 없는 태도로 티격태격하면서 감정적 온기를 나눌 뿐이다. 이들은 너무나 운이 좋게도(!) 그 상황과 입장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우정과 사랑이라는 편리한 방법으로 경제적 궁핍/불법 이민 등의 불편한 문제들을 소거해낸다. 영화적 성취와는 상관없이 이 영화들에서 이민자 혹은 난민이라는 상황은 육체적 장애나 성격적 문제와 비슷한 하나의 약점 정도로 소재화되는 데서 그친다.

 

제임스 그레이의 <이민자>(The Immigrant, 2013) 속 자매는 전쟁으로 폴란드를 떠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1921년 뉴욕에 도착한다. 그러나 동생의 폐질환 때문에 거주지를 심사하는 엘리스섬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갈라지게 된다. 결국 언니 에바는 싸구려 극장 연희와 매음 등을 하는 사업가 부르노에게 의탁한다. 이 영화의 큰 줄거리는 동생을 구하기 위한 언니의 눈물 겨운 고생담 혹은 원하는 여자를 가지기 위해 그녀를 자신보다 낮은 위치로 전락시키는 열등감이 심한 남자의 사랑이라는 내용으로 다소 클리셰적이다. 그러나 제임스 그레이 특유의 감상적인 정서와 영화 전체를 흐르는 고전적 기품 같은 것들이 이 영화를 다른 차원의 영화로 만든다. 이 영화에서 에바가 겪는 고난과 혼란함은 이민자로서의 그녀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착하기 위해서 치러야하는 대가이다. 몇 번이나 떠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녀는 머뭇거린다. 의탁할 곳 없는 이민자라는 에바의 위치가 결국 그녀의 문제적 근원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배경적 제시로 깔려 있을 뿐 영화의 대부분은 에바와 부르노, 올란도의 사랑 이야기에 맞춰진다. 실제 감독의 이민자 가족으로서의 경험이 이 영화를 만드는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현재와 거리가 있다는 점과 주된 구조가 멜로드라마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제목만큼 영화적으로 이민자에 대한 문제 의식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올해 칸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디판>(Dheepan, 2015)난민이민자라는 소재가 전면에 드러나는 영화이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실제 스리랑카의 타밀반군 난민 출신의 배우를 기용하여 대사 대부분을 타밀어로 제시함으로써 주제에 걸맞는 리얼리티를 구현해낸다. 이것은 앞의 영화들이 손쉽게 거주민들의 언어인 프랑스어나 영어로 진행되는 것과 대비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타밀반군 출신의 남자가 이민자로 체류하기 위해 죽은 디판이라는 사람의 여권을 가지고 가짜가족을 꾸려나가는 내용이다. 이들은 정착하기 위해 변두리의 슬럼화된 지역에 터를 잡게 되며 점점 서로에게 소속감을 가지게 된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반군으로서의 삶-폭력과 고통만이 가득한 삶을 청산하고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사람으로 뿌리를 내려보려고 하는 그들의 삶이 결국 또 다른 폭력에 의해 갈갈이 찢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켜켜이 쌓인 사람들의 시체가 태워지고 전쟁과 죽음의 광기로 가득했던 주인공의 전사(全史)가 느리고 비감 가득한 화면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결국 아내 얄리니를 구하기 위해 총기가 난무하는 불타는 아파트로 진입할 때 디판은 어쩔 수 없이 이전의 반군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서 전체 서사와 상관없이 느리게 지속되는 시퀀스들 가령, 밤에 마약과 총성과 파티가 난무하는 갱의 아파트를 불을 끈 창문 너머로 디판이 훔쳐보는 장면 같은 데서 귀를 울리는 음향과 음악으로 어둡고 장엄하게 묘사하는데 묘하게도 이 영화에 스릴러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말미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환상이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따뜻하고 편안한 집을 갖고 아이를 낳고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것, 그 일상의 평범함은 이들이 간절히 원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난민혹은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먼 곳 다른 나라의 풍문에 불과한 것인가. 정착하고 소속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녹록하지 않고 그런 점에서 우리 또한 디판처럼 안간힘을 쓰면서 겨우 가짜-평범한 사람들의 외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화의 환영은 때론 현실을 보다 더 명징하게 보여준다




#저자 약력
이수향, 1981년 전남 고흥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수료, 2013년 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평론상 등단,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ardor1024@naver.com

글쓴이 : 이수향
작성일 : 201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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