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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회화와 노동
통권 : 53 / 년월 : 2015년 9,10월 / 조회수 : 2136

추상회화와 노동

 

구나연

 

Copyright the Hans Namuth Estate

화가들이 근대 유럽 사회의 변화에서 가장 먼저 눈 뜬 것은 자신들이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점이었다. 광학과 카메라 등 기술적 제반 조건들이 마련되고, 궁정이나 아카데미 같은 제도적 규범들에 대한 거부와 비판을 새로운 미술을 가능케 하는 요소로 인식하면서, 자유로운 화가, 나 자신을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소로서 캔버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촉각적 재현과의 결별, 동시에 이를 대치할 표현으로서의 화가의 내면은 단순히 화가 한 사람의 내면이 아닌 자유로운 개별자가 행하는 끊임없는 탐구의 과정이었다. 이에 따라 작품을 그리는 작업(work)의 의미 역시 변화했다. 그들의 작업과 작품은 과거처럼 주문에 의해 생산되는 기술자(혹은 장인)의 공들인 노동의 산물 아니었다. 그것은 맞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유일무이한 것으로, 외부의 통속적인 세계와 차단된 미술의 내밀한 고유성을 지닌 것으로 설명되었다.

 

더욱이 2차 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회화는 평면에 대한 물신적 차원으로까지 진화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비평가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그의 모더니스트 페인팅(Modernist Painting)에서 평면성(Flatness)’, 2차원성은 다른 어떤 예술과도 공유될 수 없는 것이며, 모더니스트 회화는 무엇보다 평면성 그 자체를 지향한다고 했다.1) 이로서 회화는 형과 색, 비율과 구성 등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각각의 독립적 가치를 지녔고, 캔버스 위에 이를 실현하는 행위(action)가 중요시되었다. 잭슨 폴록의 드리핑 페인팅에서 잘 드러나듯이 화가는 더 이상 그리는사람이 아니며 우연한 순간을 체화한 상태로 캔버스 위에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회화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보편적인 노동의 개념에서 멀어졌으며, 외부 세계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사적이고 자유로운 행위가 되었고, 캔버스는 그 행위의 장(; arena)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전환은 미술의 내부적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우리를 둘러싼 현대의 사회적 행위들이 가진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된 태도이기도 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는(Meyer Schapiro)1957년 발표된 그의 논문 최근의 추상미술(Recent Abstract Painting)에서 무엇보다 우리가 삶에서 필요한 행위가 만족스럽지 못하며, 노동에서의 자발성과 자기 확신의 결여로부터 비롯된 좌절, 그리고 공허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예술적 대상은 이러한 자발성과 격렬한 감정이 투여된 열정을 회복한다고 지적했다. , 미술에서의 노동은 우리의 일상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노동의 현실적 위축을 넘어선 자유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자유로운 행위의 장인 평면 캔버스 위에 앞서 언급한 형과 색, 비율과 구성 등 근본적인 미술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은, 예술가가 노동의 수동성을 극복한 능동적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킨다. 즉 추상회화가 지니는 특징들은 일하고 행동하는 일상적 경험과 상반된 특성들을 응집한 수단으로 간주할 수 있다.2)

 

이렇게 추상회화는 우리의 일상적 노동에서 벗어난 자율적 행위의 과정이라는 인식을 통해 일반적 생산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치 숭고한 물신적 상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예술 행위를 노동과는 다른 특별한 시간으로 우리의 인식에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화가의 활동은 실용적 경제 활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비단 화가뿐 아니라 예술가 전반의 노동활동에 관해 널리 퍼진 고정관념이지만, 상류 계층이 생산적 노동에서 면제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생산적 노동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추상회화가 숭고한 행위의 산물로서 세속의 시장성에서 벗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추상미술은 그들의 노동 개념을 자유와 열정, 숭고와 행위의 개념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상품과는 거리가 먼 대상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써, 엄청난 상품성을 획득해왔다. 결국 추상회화는 그들이 획득한 자유에 대한 흔적과 그 과시라는 독특한 노동 과정을 강조하며 시장에 등장하고 거래된다. 따라서 추상회화에서 1차적으로 조성되고 획득되어야 하는 조건은 일상적 노동 환경과의 괴리이다. 화가의 작업(work)은 노동(labor)이 아닌 행위(action), 생산(production)이 아닌 과정(process), 수동(manual)이 아닌 우연(accident)으로 설명될 때, 이들 작품의 교환 가치는 상승된다. 또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추상회화는 외부세계의 현실적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내재한 채 그 상대적 가치에 위치하면서, 현실의 노동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욕망과 추상 미술의 가치 사이에는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었다. 무엇보다 추상회화의 황금기는 예술이란 미적 가치를 고착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사이 추상회화의 시대는 미술사 속으로 들어갔고, 모더니스트 화가들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들의 회화는 미술 시장의 최정점에서 거래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추상회화가 만들어놓은 노동의 개념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술은 아직도 보통의 노동이 아닌 특별한 작업으로 취급 받는다. 이는 때로 엄청난 가치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적절하고 정당하지 못한 가치로 절하되기도 한다. 아직도 한 작품의 가격이 작품의 중요도를 대변하거나 예술가는 가난한 것이 당연하거나, 때로 보수를 받지 못하더라도 예술가니까 수긍해야 하는 극단의 일들이 빈번히 일어난다. 우리는 현실과 사회와 무관한 미적 활동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던 과거의 미술이 만들어놓은 많은 현실들과 직면한다. 이제 와서 추상회화가 기실 매우 사회적이었고, 정치적이었다고 항변하는 것 이외에, 그들이 만들어놓은 많은 가치와 변화가 지금 우리의 미술계의 현실에 어떻게 반영되어 그릇된 상태로 남아 있는지 따지고 들어가야 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1) Clement Greenberg, “Modernist Painting”, 1960 in Art in Theory 1900-2000, Harrison & Wood, 2003, p. 775.

2) Meyer Schapiro, “Recent Abstract Painting”, George Braziller, NY, 1979, p. 218.




#저자 약력
구나연(具娜延) 1976년 서울생. 미술비평가. 최근 글 <여백의 유희>. andantevivo@gmail.com
글쓴이 : 구나연
작성일 : 20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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