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

정보권력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의사표시의 권한이 매스 미디어에 한정되어 있던 시절, 개인은 일방향으로 생산된 정보를 단순히 소비하는 수용자의 지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원천정보에 대한 접근능력의 부족과 혹여나 접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전달수단으로서의 매체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가 가지는 이러한 독점적 정보생산권한은 그로 하여금 정보의 가공을 통해 개인의 의사형성과정을 통제할 수 있게 함으로써, 매스 미디어의 지위를 언제나 개인의 상부에 자리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보편적 접근이 실현되었을 때 모두가 열광한 까닭은 아마도 이런 지점에 있을 것이다. 누구나 실시간 쌍방향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다는 인터넷의 모토는 정보생산과정의 패러다임을 전환함으로써 모두가 평등하게 정보 권력을 행사한다는 정보민주주의의 달콤한 꿈을 꾸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대한 사람들의 환호성이 당혹감으로 바뀌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구나 온라인 공간에 접속할 수 있다는 기회의 평등이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보생산의 주체가 매스 미디어의 독점적 권한에서 경쟁력 있는 개인이나 집단으로 일부 교체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 권한은 독점의 형태에서 과점의 형태로 바뀌었을 뿐, 소수의 정보생산자들과 다수의 정보수용자라는 미디어 권력이 형성되는 본질적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미력하게나마 최소한의 결과적 평등을 보장하는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이라는 완전경쟁시장은 정보생산의 경쟁력이 없는 개인들의 목소리를 광대한 정보의 바다 한 구석에 아무런 지표도 없이 표류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소리를 무작위로 흩어버린다. 이는 정보 권력으로 하여금 정보생산을 자유롭게 보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발언이 경쟁력을 상실하여 자연 도태했다는 윤리적 알리바이 또한 함께 제공한다. 정보생산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평등한 정보유통의 장이 될 것이라고 믿어져왔던 인터넷 공간이 현실보다 더욱 불평등한 정보 공간으로 전화한 것이다.

낚시

하지만 온라인상의 정보생산과정에서 도태된 개인들은 이전까지지의 오프라인과는 달리 단순한 정보의 수용자로서 무력하게 방치되어 있지만은 않았다. 어쨌거나 인터넷은 정보생산능력의 질과 무관하게 기회의 평등만큼은 철저히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낚시’라고 불리는 새로운 인터넷 전략이 탄생한 것도 이에 연유한다. 별다른 지출이 들어가지 않는 소소한 미끼를 바탕으로 물고기의 생명이라는 큰 대가를 얻으려는 낚시는 상대에 대한 기만을 바탕으로 등가교환이라는 공정거래원칙을 위반한다. 경쟁력이 없는 콘텐츠를 자극적인 제목이나 전혀 별개의 사항으로 위장하여 경쟁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인터넷상의 ‘낚시’도 현실의 낚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낚시는 정보생산경쟁에서 사람들의 생각보다 상당히 유효한 전략에 해당한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언제나 더 큰 대가를 가져다주는 낚시는 부족한 생산능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타인의 주목을 손쉽게 받게 함으로써 네트워크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행위자로 하여금 손쉽게 승리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무명보다는 악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더욱이 낚시라는 행위에 생래적으로 내재된 상대에 대한 기만은 낯선 사람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은밀한 쾌감(guilty pleasure)’을 부산물로 가져다줌으로써 그에게 일상에서 획득하기 어려운 소소한 정복감을 만족시키는 유용한 도구로 작동하기도 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낚시행위가 인터넷이라는 완전경쟁시장에서 곧 최적의 전략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특종의 시대

흥미로운 점은 정보경쟁에서 도태된 개인들에 의한 소소한 반란으로만 보였던 낚시 행위가 굳건할 것으로만 보였던 매스 미디어에 의한 정보생태계를 그 기저부터 흔들고 있다는 점에 있다. 낚시가 가지는 경쟁력의 유용함을 깨달은 것은 전통적 매스 미디어 또한 예외가 아닌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공간은 아날로그 공간과 달리 기회의 평등뿐 아니라 규모의 평등 또한 함께 가져다주었다. 이전의 오프라인에서 신문이나 잡지의 인쇄상태나 두께가 보증했던 정보의 신뢰도는 네트워크상의 하이퍼링크 위에 결코 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자신들이 생산해낸 정보에 유인하는 최고의 요인은 그 안의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오직 기사의 제목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기 마련이다. 자신들이 생산해낸 심도 있는 정보가 도발적인 제목을 가진 몇 줄 되지 않는 날림의 정보에 밀리는 것을 확인한 고전적 언론 매체들은 조금은 서글프게도 자신들의 전략을 그에 맞추어 수정한다. 가끔 세상이 바뀌는 계기가 되어주었던 ‘특종’, ‘단독’, ‘속보’라는 무거운 함의를 가진 기사의 수식어들이 단지 다른 기사보다 조금 더 많은 클릭 수를 위해 헌신짝처럼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명성이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장하지 않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저널리스트의 자존심은 조금 거추장스러운 옷이다.

조지 오웰은 미래 감시 사회의 특징을 중요한 정보가 통제되거나 차단되는 것으로 예견했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광대함은 더 이상 어떤 정보도 통제하거나 차단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결과로 우리가 맞이한 것은 존재하는 모든 정보가 특종이 되는 대(大)특종의 시대인 것이다. 모든 것이 특종인 시대에는 당연히 아무 것도 특종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특종이나 속보라는 이름이 붙은 어떤 정보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특종이나 속보가 시대를 바꾸는 시대는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이다.

'Welcome to Brave new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