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노동의 기록

성진수

<미션임파서블>, 2015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라프를 세상에 소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복제해서 기록할 뿐이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의 눈을 속이는 테크닉을 통해 만들어졌고 또 발전되었다. 관객의 눈을 속인다고 하여 그 테크닉이 비윤리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상상의 것이든 있음직한 사건이든, 실제로는 꼭 그렇게 존재하지 않았던 대상과 사건을 마치 카메라 앞에 그대로 존재했었던 것처럼 관객들이 믿도록 만들었다는 뜻에서 ‘눈을 속였다’는 것이다. 특수효과나 무대 장치는 물론 다양한 트릭 촬영과 편집 기술들이 그렇게 발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만들어내는 현재의 기술은 영화가 도달하고자 했던 이상향의 한 측면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카메라 앞에 있는 것을 기록하는 영화적 속성에 기대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영화 이미지로 만드는 사례들이 있다. 실제로 비행기에 매달려 위험천만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낸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에서 톰 크루즈가 펼친 액션이나, <인셉션>(2010)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꿈의 공간을 재현하기 위해 현실의 물리 법칙을 뛰어 넘는 상상의 공간을 직접 세트로 제작하여 촬영한 것이 그것이다. 왜 그들은 다른 기술로도 재현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카메라 앞에 세우는 방식을 택했을까? 그 이유는 영화가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유, 즉 대상을 그대로 기록하는 영화 카메라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있는 것을 그대로 기록하는 카메라의 속성은 스크린에 비친 대상이 카메라 앞에 실존했었다는 믿음을 생산한다.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디지털 이미지가 사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범위에 거의 한계가 없음을 교육받고, 웬만한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디지털 이미지이거나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현재의 관객들에게, 그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카메라 앞에서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의미가 된다. 관객이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그 이미지에는 ‘진짜’라는 아우라가 부여되는 것이다.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는 붕괴되었다고 한 그 아우라 말이다.

영화의 이미지가 카메라 앞에 그대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인지시킴으로써 붕괴된 아우라를 소생시킬 수 있음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사람이 있다. 바로 성룡이다. 웬만한 영화 관객들에게 성룡 영화란 곧 ‘대역 없는 진짜 액션’이다. 성룡 영화를 볼 때 관객이 기대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엔딩 크레딧과 함께 소개되는 NG 모음이다.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코믹한 상황들을 모아놓은 것 같지만, 그 NG컷들은 그의 액션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노력과 우연의 결과로 얻어진 진짜임을 관객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NG컷 모음은 영화 이미지에 ‘진짜’라는 아우라를 소생시키면서 성룡 영화를 완성한다. 그 NG 장면들이란 결국 성룡이라는 액션 배우의 노동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폴리스스토리>, 2013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생산은 상품의 생산으로 귀결되고 노동 또한 돈으로 환산되는 상품이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눈앞에는 풍부한 상품의 전시만이 존재하고 그것이 생산되는 과정과 노동은 사라져 버렸다. 영화가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라면, 주류 서사 영화가 자신의 생산 과정을 은폐하고 관객들에게 그 결과물인 이미지만을 전시하는 방향으로 표준화되어 왔다는 것이 중요한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의 은폐 과정에서 함께 사라진 것은 노동자의 존재인데, 그것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이름을 다 확인하고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은 없다. 관객들이 기억하는 유일한 영화 노동자는 배우다. 그렇지만 배우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들이 존재하는 현재와 미래는 어떠할까? 사이버 가수 ‘아담’을 상기해보자. 비록 아담은 실패했지만, 사이버 배우가 스크린 스타로 등극하는 가까운 미래가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배경 이미지뿐 아니라 살아있는 인물까지도 0과 1의 신호로 창조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배우는 사이버 이미지와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본격화된다면, 배우가 자신의 노동을 카메라 앞에 과시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진짜’의 아우라를 부여하는 것이 영화 생산이라는 산업 시스템 안에서 존재 가치를 어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영화 팬들은 톰 크루즈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불가능해 보이는 액션들을 카메라 앞에서 직접 실천해내면서 영화의 제목과 배우 자신을 하나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톰 크루즈나 ‘진짜’ 전략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영화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성룡의 사례는, ‘아날로그’라는 수식이 붙는 이러한 방식이 디지털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영화 생산 체계 안에서 배우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꽤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배우라는 노동자에게도 더 난이도 높은 가치 창출이 요구된다. 자신이 가진 유전적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생산할 수 있었던 과거의 스타들과, 매 영화마다 몸무게를 줄이고 늘이는 것은 물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고 외모를 바꾸어야 하는 오늘날의 배우들을 비교해보라. 영화가 그들에게 어디까지 요구할 것인지, 또 배우가 영화의 어떤 요구까지 수용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영화 생산의 노동자로서 배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상할 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비행기에 매달린 채 1천 미터가 넘는 상공을 무려 여덟 번이나 비행한 쉰 넘은 배우가 만든 액션과, 온 몸이 멍들고 수시로 피를 흘리면서도 대역 없는 액션을 소화한 환갑의 배우가 만든 영화 이미지를 그저 오락으로만 바라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미지는 영화 노동자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배우들의 절실한 노동의 기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