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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툰 찬가(讚歌), 이대로 좋은가?
통권 : 51 / 년월 : 2015년 5,6월 / 조회수 : 2609

 

작년 하반기, 윤태호의 원작에 기반한 <미생>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 웹툰은 마치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특수한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마치 만화와 웹툰은 전혀 상관없는 듯, 웹툰에 대한 찬사들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얼마 전 KT경제경영연구소에서는 웹툰의 산업적 가치가 1조 원이라는 연구를 내놓았고, 웹툰이 제3의 한류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웹툰에 쏟아지는 관심이 고맙기도 하지만, 딱히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싶지는 않다. 현장에서는 이 붐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하는 암울한 전망들을 내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안 그랬으면 좋겠다. 이처럼 웹툰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해외에도 무수히 소개되고, 최근 모 언론에서 이야기했듯이 전 세계 어린이들이 웹툰을 보고 성장할 거라는 둥의 이야기를 한번 믿어보고도 싶다. 그러나 그러기에 나는 만성 의심병과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다. 왜냐고? 뭐 멀리 볼 것도 없지 않는가? 영화계를 보자. 최근 종종 볼 수 있는 관객 1,000만 명 돌파라는 양적 결과가 제작, 유통, 상영망의 독점적 구조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계속 언급되던 것 아닌가. 한 때 한국영화계,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모범적이라고 했으나 오늘날은 달라졌다. 작은 영화들은 갈 곳을 잃었고, 영화관에 가보면 대부분이 대규모 관객을 기획하는 작품들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한국영화의 미래가 기대된다고 하지 않으며, 버티지 못하는 젊은 인력들은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이 인력들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힘으로 살려낼 수 있을 것인가. 글쎄.

 

그렇다면 만화계는 어떠한가. 사실상 웹툰은 스마트폰의 전성시대 전후로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그냥 웹상에서만 볼 수 있을 때와, 스마트폰 전용 어플을 통해 접하는 웹툰은 상당히 다르다. 출판만화에 비해 상대적인 작화와 연출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은 스마트폰 이후로는 훨씬 줄어들었다. 물론 이는 작품의 질이 상승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짧은 휴식시간이나 이동시간, 등 그 시공간의 심심함을 스마트폰 웹툰만큼 잘 채워주는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포털사이트(네이버, 다음카카오, 네이트), 3대 통신사 및 신문사(스포츠 투데이, 헤럴드, 스포츠조선 등), <레진> <카카오스토리>를 비롯한 업체들까지 약 30(1 참조)의 웹툰 플랫폼에서 매주 약 1,000종의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곳들을 연재 중 작품숫자 순으로 꼽아보면, <레진> 190, <네이버>160, <다음카카오>140, <탑툰>120, <카카오페이지> 70, NHN 일본법인이 제작한 웹툰 어플의 한국어 버전인 <코미코> 60(물론 일본 작품과 섞여 있음), <올레마켓>50종으로, 이들이 전체 연재작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20여 개들이 남은 20%를 담당한다. 매주 1천 종이라는 작품 숫자는 지금까지 한국만화의 역사에서 만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웹툰 찬가가 당연하게 보일만도 하다. 단시간에 덩치가 커버린 코끼리풍선 같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확장에 도달하기 전에, 여러 가지 노정된 문제점들을 논의하고 합의하고 대안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은 논의할 시간조차 없이 모두가 몰려가고 있는 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고민했다는 흔적이라도 남겨보자.

 

첫 번째, 가장 어려운 점은 여전한 포털의 지배적 구조이다. 포털에서의 웹툰 안착기를 대략 2003년으로 보는데, 사실상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들이 웹툰을 게재했던 이유는 당연히 사용자수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위해 사용자에게는 무료라는 떡고물을 제시했고, 창작자에게는 원고료만 제공했다. 관리자는 원고 업데이트 일정만 신경 쓰면 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작가의 책임이다. 만화출판계는 불법 스캔파일 유통과 청소년보호법으로 받은 타격 이후 점차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신인들이 갈 곳이라고는 포털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가들의 수입은 포털이 주는 원고료, 그리고 혹시 운이 좋아 2차 판권을 팔게 되면 그 수익. 이것이 모두였다. 당시의 몇몇 작가들, 강풀, 강도하, 윤태호 등은 많은 독자층들을 유지했고, 덕분에 상대적으로 높은 원고료와 2차 저작권 양도수입이 있었다. 무명의 작가들은 원고료 20만 원에서 30만 원을 받으며 제2의 강풀을 꿈꾸었다. 포털이 웹툰을 자신들의 트래픽 확대를 위해 활용했다는 입장, 포털이 아니었으면 만화계가 고사되었을 것이라는 상호 대립적 입장은 제대로 논쟁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포털은 원고료 대비 트래픽에 기반한 광고료 수익 등의 자료들을 영업비밀유지라는 방패 하에 제시하지 않는다. 자료를 가진 측이 아니라고 하면, 추측에 기반한 반박은 불가능하다. 자꾸 논란을 일으키면 포털에서 웹툰란을 없앨 수도 있다는 루머들은 이러한 논쟁 자체를 금기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 공짜 콘텐츠가 있는가. 한번 자리 잡은 만화는 무료라는 인식을 되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무료 웹툰이 확고히 자리 잡은 뒤, 출판만화 시장은 폭락했다. 출판만화 작가들은 여러 노력들을 통해 웹툰의 문법을 익혀 입문하거나, 아니면 그나마 살아 있는 학습만화 시장으로 들어가거나, 그도 아니면 해외시장으로 나가거나, 그것도 안 되면 이슬만 먹고 살아야했다. 그러나 무료 웹툰이 만화시장을 어떻게 힘겹게 만들었는가는 상식적 지식이다. 2012년 강풀 작가를 비롯한 일련의 작가들이 완결작품에 대한 유료화를 시작했다. 20134<카카오페이지>가 허영만 작가의 식객 2’를 앞세워 유료 웹툰을 선언했지만 완패했다. 같은 해 6, 본격적인 유료 웹툰을 선언하고, <네이버> 만큼의 작품군을 보유하겠다는 <레진>이 등장했다. 효과는 엄청났다. <네이버>는 갑자기 작가들에게 다양한 수익창구를 제공했다. 페이지 뷰 숫자에 따른 광고수익의 일부를 나누는 PPS(Page Profit Share), 미리보기 유료제공 등이 만들어진 것이다. 원고료 제공만으로도 벅차다던 입장이 돌변한 것이다. 다행히 <레진><네이버>를 따라잡았고, 심지어 더 많은 작품들을 연재한다. 작년 61주년을 축하하며 밝힌 숫자로 보는 1주년이라는 자료에서 네온비 작가의 경우 수익이 28,000만 원이라는 내용을 밝히면서 유료 웹툰의 파워를 과시했다. 더불어 작년 <미생>이 한 해의 키워드가 되면서 웹툰 <미생>의 누적 조회 수가 11억 뷰에 달했다. 윤태호 역시 완결웹툰을 유료화시켜둔 덕분에 이 배분수익은 그대로 작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유료 웹툰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놀라운결과가 현재 수많은 새로운 플랫폼들이 새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익을 내는 작품과 플랫폼들은 제한적이다. 아직도 무료로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넘쳐나는데, 유료로 결제하는 콘텐츠들이 한정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만화를 경험하기 위해 일정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문화를 완전히 회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네이버는 올해부터 아예 작품을 게재할 때 관리관계 일체의 관리를 포털에 위임하는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다른 포털들도 유사하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포털은 작품들을 게재하기 위한 창이고 인터넷 서비스 권리만 가질 뿐, 다른 권리 관계들은 모두 작가가 알아서 관리한다라고 했었다. 물론 에이전시를 구하기 힘든 작가들 측에서 요구했다는 해명들이 있긴 하나, 요구하는 작가들에 한해서 응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는 아무래도 최근 네이버나 다음카카오의 해외진출과 관련된 관리의 편리함과 수익의 문제와도 상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웹툰 기획 및 작가 권리관계를 담당하는 소규모 에이전시들의 입지를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동네 빵가게를 넘보는 재벌 외식사업계. 이래서야 다양한 종이 상생하는 만화생태계가 살아나겠는가.

 

두 번째, 신인작가들의 원고료 문제이다. 현재 포털사이트 및 웹툰 전문 플랫폼에서 주 1회 연재 기준으로 1달 원고료는 12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문화예술계의 신인들보다는 훨씬 나은 편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웹툰의 경우 일반적인 스타일의 작품이라면, 단독 작업으로 주 1회 연재는 불가능하다. 시나리오 작가와 협업하거나 채색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경우라면 생활에 적절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연재기간이 짧게는 3개월에서 더 오래 이어지긴 하지만 보통의 작가들은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세이브 원고라는 것을 준비해둔다. 1회 업데이트가 어렵기 때문에 연재 시작 전에 미리미리 작품을 제작해 둔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작가들에게 원고료만 제공하는 시스템의 문제이다. 비생활적 원고료는 창작자들의 생계 이외에도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많은 품이 들어간 수작을 만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최근의 PPS의 경우도, 광고수익을 내려면 아무래도 많은 뷰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이 역시 유행하는 특정 종류의 웹툰 장르들에 작품군들이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 위에서 언급했던 포털의 행태가 에이전시라는 전문가 풀을 협소하게 만들 수 있다면, 전체 만화계에서 취약한 것은 이 그룹만이 아니다. 현재 만화계의 인력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작가군이다. 추정이긴 하지만 현재 약 1,000종의 작품이 연재 중이라면 그 서너 배 정도의 작가군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신생 플랫폼에 연재되는 작품들을 보면 아직은 전업적인 작가라고 하기 힘든 연재작들도 상당수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만화잡지시대에 존재했었던편집자군의 상실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일정관리에 치중하고 있는 포털이나 플랫폼들의 담당 PD들은 사실상 그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작품에 대한 일관성, 질적 관리나 표현적인 측면에서의 조언 등등을 해내던 이 직종 역시 오늘에도 새롭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게다가, 이렇게 많은 연재작 중에서 우리는 어떤 작품을 보아야 하는 걸까. 누구라도 한 주에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보지는 못한다. 이 정도까지 작품들이 많아지지 않았을 때, 윤태호 작가의 노력 하에 <에이코믹스>라는 온라인 만화비평 사이트가 오픈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수많은 웹툰 플랫폼들이 있어도 그 어떤 곳에서도 <에이코믹스>에 광고를 싣겠다고 요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고, 결과적으로 적극적인 홍보나 비평 콘텐츠의 양적 질적 확대를 도모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나마 조금 있었던 만화등단제도도 사라진 지 오래이다. 연재할 지면도 없다보니, 만화연구자들이나 비평가군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신진연구, 비평인력의 확보와 다양한 지면이 필요하지만, 공적 지원사업의 대부분이 창작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도 향후 개선되어야할 부분이다.

 

네 번째로 법과 제도이다. 최근 유료 웹툰과 연계되면서 성인 웹툰이라는 위명(僞名) 하에 섹스를 주로 다루는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는 것을 볼 때 가장 걱정스럽기도 한, 작품규제가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다. 325,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레진>을 불법유해매체로 하루 동안 차단했었다. 네티즌들의 항의와 이후 국회에서의 방심위원장의 사과 등이 이어지긴 했지만, 결국 428일에 레진은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품들의 일부 이동 등을 제시해야 했다. 문제의 핵심은 웹툰을 비롯한 만화 전체에 대한 자율규제라는 권력을 만화계가 획득하지 못한 것에 있다. 현재 출판만화의 규제는 문화관광체육부 소관의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그리고 웹툰의 규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관할한다. 물론 웹이라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 그에 고유한 연출법을 사용하긴 하나, 웹툰도 당연히 만화표현형식이다. 출판과 웹이라는 미디어의 차이 때문에 동일한 표현형식에 별개의 잣대, 별개의 심의기관 및 주체를 제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일까?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논의되어야겠지만, 만화계의 통합적 자율심의방안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규제나 심의를 없애자는 논리는 타자를 설득하기 어렵다.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업내용에 대해 위축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적 아니겠는가. 어쩌면 웹툰의 대중적 파급력,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요구에 적절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1990년대에 주간별, 격주간별, 월별, 장르별로 무척 활발하게 출간되던 만화잡지들이 1997년 청소년보호법의 제정과 더불어 그 붕괴의 서막을 맞았던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30여 개의 플랫폼, 1,000종의 작품군 속에서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심의의 칼날을 받을 만한 작품들이 등장할 여지는 풍부하게 보여서 걱정이 든다.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웹툰작가와 플랫폼 사이의 불공정계약서 문제는 창작자들의 인식문제도 있지만, 인기작가가 되기 이전까지 공간, 즉 매체를 확보해야만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상대적 약자라는 처지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적이고 모범적인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지고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어떤 만화계의 주장도, 공공적인 차원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이다. 단지 만화가들만의 안위만이 아니라, 만화계 전체의 생태계, 나아가 우리 모두의 다양한 문화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작가들 스스로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첨가된다면, 이렇게 확대된 웹툰 독자군들의 응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해외의 독자들이 한국 웹툰을 보고 성장할 것이며, 웹툰이 제3의 한류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잘 기억해두자. 스마트폰 덕분에 웹툰의 소개에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잡은 것은 사실이다. 이전처럼 온라인 매체와 결합했던 시기라면 해외에 소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네이버 <라인>, 또는 또 다른 플랫폼이 해외에 안착하는데 무료 웹툰이 기여한다손 치더라도, 이것이 우리 만화계와 문화계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 무료로 제공한다면 경제적 이익은 아닐 테이고, 문화적 교류일까? 해외의 독자들이 웹툰을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감동을 받고,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될까? 이 작품들은 문화적 장벽쯤은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보편적일까? 언제쯤이면 해외에 진출했다는 작품들과 그 작품들에 대한 실제적 관심도나 결과를 추정이나 언변이 아니라 물리적 자료로 접할 수 있게 될까? <레진> 역시 일본에 진출한다던데, 역시나 유료정책을 제시한다면 좀 다른 결과를 보여줄까?

질문은 많고, 적절한 답변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항상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웹툰 찬가를 다함께 부르기 전에, 이런 논제들을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더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창작되고, 더 다양하고 풍부한 향유경험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만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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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한상정(韓尙整) 1969년 부산 생. 만화연구자.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최근 연구논문으로 『만화의 정의에 대한 문제제기들과 “근대만화”에 대한 역사적 정의』,『정현웅의 출판화 활동과 북한의 만화 개념–1950∼60년대《조선미술》을 중심으로』등. hsj870@empal.com
글쓴이 : 한상정
작성일 : 201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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