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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미디어 시대, 웹 저널리즘의 혁명 혹은 쿠데타
통권 : 48 / 년월 : 2014년 11,12월 / 조회수 : 2251

혁명과 쿠데타는 결코 유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반의어에 해당한다. 조직화된 특정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하여 무력으로 어떤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쿠데타라면, 혁명은 의식화된 다수 대중이 권리를 획득하기 위하여 집단으로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사건이다. 그래서 모든 쿠데타는 신속하고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며 권력을 획득하려 하지만, 혁명은 느리고 좌충우돌한다. 그 덕분에 혁명은 결코 쉽게 완성되지 못하고 늘 과정에 머물고 또 다른 숙제를 남긴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경제현상과 이것의 전 지구적 확장인 세계화를 혁명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분열된 권력을 정치와 기업이 결탁하여 파죽지세로 독점화해버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분명 전 지구를 상대로 일으킨 쿠데타다. 반면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정보화는 18세기 서구계몽주의와 권리장전, 프랑스혁명 이래 의식화된 대중이 권리를 획득하고자 전 지구적으로 연대하기 시작한 혁명이다. ‘정보혁명’은 지식의 사유화로 권력을 독점해왔던 세력과 맞서 지식의 공유화로 권력을 분산시킨 사건이다.

지식의 공유화는 매체의 공유를 바탕으로 가능하다. 20세기 이래 문화산업은 정보와 감각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대중의 열망을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문화산업이 발명한 출판물, 음반, 사진, 영화와 같은 문화상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싸게, 더 쉽게 소비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화산업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놀라운 선택을 하였다. 상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제작하거나 모방할 수 있는 매체(생산수단)를 기술제조업과 결탁하여 개발한 것이다. 휴대용 카메라와 카세트플레이어를 가지고 소비자는 문화상품을 직접 제작하거나 모방할 수 있었다. 자동차회사가 자동차를 제작할 수 있는 생산수단을 판매하는 모습을 우리가 죽기 전에 볼 가능성이 없을 테니 문화산업의 이러한 행보는 놀라운 일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문화상품의 매체를 가지게 된 소비자가 문화상품의 소비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상품을 욕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문화상품은 소프트웨어(장르)와 하드웨어(기기) 모두를 망라한 ‘종합선물세트’ 수준까지 발전했다. 대중은 문화상품의 생산수단으로서 기술적 매체를 구입하여 스스로 문화적 욕구를 표출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 역시 욕망했다. 문화산업은 매체를 대중이 공유하도록 만들면 문화상품 소비욕망이 더 강렬해질 것이라는 영리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문화산업이 자신의 영리함에 도취해 있는 동안 대중은 각각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매체를 이용하여 문화적 욕구를 함께 공유하고 소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대중은 문화산업의 구경꾼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컴퓨터가 등장한 것이다. 1990년대 PC의 대중화는 기술적 매체가 보급된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화산업의 권력을 분산시킨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었다.

 

 

밀어붙이는 매체push media에서 끌어당기는 매체pull media

 

공유는 단지 공통분모를 지닌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공통분모는 닮은 점일 뿐 함께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하려면 반드시 각자의 몫을 공동의 몫으로 내놔야 한다. 아무 것도 내어놓지 않으면 방관자 혹은 감시자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강제로 내어놓아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강제로 함께하면 함께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되기 때문이다. 고통스럽지 않되 자연스럽고 즐겁게 함께하는 일, 그것은 바로 ‘놀이’다. 놀이는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 개인으로서 존중 받으면서 동시에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공유행위다. 사람들은 노는 동안 공동의 몫으로 자신의 몫이 닳는 것을 기껍게 받아들인다. 공유는 닮는 게 아니라 닳는 것이다. 서로 함께하며 닳아질 때까지 노는 일이 바로 공유다. 그래서 공유는 노동처럼 강제적인 소환이 아니라 놀이처럼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 PC의 보급과 인터넷 대중화는 대중이 문화를 공유하는 현대적 형식의 놀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대중이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되자 대중은 문화산업의 모든 영역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문화산업의 방향키를 쥐었던 기업이 대중의 참여란 거센 파도를 버티지 못하고 파도의 흐름에 조타기를 맡겨야만 했다.

컴퓨터 등장 이전에도 문화산업이 큰 파고를 겪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20세기 초 보급되기 시작한 영화는 독서물을 중심으로 한 ‘읽기’ 위주의 문화상품 독과점체제를 흔들어 놓았다. 독서물은 기본적으로 식자층만을 대상으로 한 문화상품이어서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대상으로 상품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식자층은 물론이고 문맹자들까지 문화상품에 돈을 지불하게 만들었다. 사실 초기 영화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현대예술의 한 장르로 출발했으나, 영화가 문학의 서사구조와 스토리텔링을 수용하면서 독서물을 위협하는 문화상품으로 급성장했다. 이야기를 읽었던 대중이 이야기를 보는 것에 더 열광하자 문화산업은 ‘보기’ 위주의 문화상품 개발에 주력했다.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과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문화상품이다. 그런데 20세기 말 보급되기 시작한 PC는 이러한 ‘보기’ 위주의 문화상품을 ‘놀기’를 통한 공유대상으로 변화시켰다. 문화산업의 주력이 영화에서 컴퓨터게임으로, 스크린에서 시뮬레이션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듯 문화산업이 주력상품을 교체하는 과정은 매체 전달방식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읽을거리를 소비하는 인쇄매체 중심의 올드미디어old media에서 볼거리를 소비하는 방송⋅영상매체 중심의 뉴미디어new media로 대중의 취향이 바뀌었고, 지금의 대중은 놀 거리를 소비하는 전자⋅통신매체 중심의 포스트미디어post media에 몰입해 있다.

온라인 네트워크와 모바일이 결합한 지금의 매체형식은 이전 매체들의 속성을 모두 통합하면서 동시에 이전 매체들의 속성을 완전히 탈피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읽기와 보기 중심의 이전 매체가 특정 감각에 주로 의존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의 매체는 시각, 청각, 촉각은 물론이고 심지어 후각 정보까지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은 지금의 매체가 감각의 총체화를 기술적으로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이전 매체형식을 흡수한 것이지만, 다르게 보면 매체가 스스로 비매개화immediacy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매체는 분명 하나의 기기로서 객체인데, 지금의 우리에게 매체는 일상적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환경이자 배경 그 자체다. 읽기 위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갈 필요가 없고, 보기 위해 극장과 거실에 앉을 필요가 없다. 지금 여기가 서점이고 극장이다. 매체가 우리를 매체 앞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우리가 매체를 우리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우리는 매체를 기다리지 않는다. 매체가 우리를 찾아온다. 그래서 전자⋅통신매체는 매체형식의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다. 대중이 매체를 인식하기 전에 매체가 대중을 인식하고 있고, 매체가 대중을 강제로 소환하기 전에 이미 대중은 매체 안에서 스스로 참여하고 있다. 포스트미디어는 놀이화된 매체다.

 

 

디지털 퍼스트를 지향하는 웹 저널리즘 2.0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한다. 선택기준은 무엇인가? 제목, 감독, 배우, 장르, 스토리, 주제? 아니면 누군가의 추천? 생각보다 쉽게 고를 수도 있지만 제대로 영화 한 편을 보고 싶다면 꽤 다양한 선택지에 갈등하기 십상이다. 누군가는 감독만 보고 영화를 선택한다. 그러한 선택 기준대로 영화를 보고나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비단 영화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모든 언론매체는 하루 24시간 내내 영화를 상영하듯 뉴스콘텐츠를 채우거나 업데이트해야 한다. 다행히도 전 세계적으로 구축된 통신망 덕분에 다양한 뉴스를 확보할 수는 있지만 모든 뉴스를 웹 사이트에 게시할 수 없다. 온라인 독자가 클릭하지 않는 뉴스콘텐츠는 정보쓰레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콘텐츠의 양이 아니라 콘텐츠의 소비다. 온라인 독자에게 뉴스콘텐츠는 수많은 영화와 비슷하다. 언론사 이름만 보고 클릭하는 사람, 제목만 보고 클릭하는 사람, 분야만 보고 클릭하는 사람 등등. 선택지가 많은 것도 모자라 언론사조차 너무 많아 뉴스 골라 보는 것을 포기했다면 그냥 포털에서 큐레이션한 뉴스를 보거나 SNS에서 사람들이 추천한 뉴스만 봐도 된다. 급한 쪽은 이용자가 아니라 언론매체다. 이미 뉴스정보는 과잉이고 뉴스매체 간 경쟁은 과열이다.

199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인터넷 뉴스매체는 독자들이 알아서 공짜뉴스를 보러 자신들 웹 사이트에 접속할 거라 믿었다. 더구나 이름만 대도 모두가 다 아는 유명 언론사인데 오프라인 브랜드파워가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웹 사이트 중에서 유명 언론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뉴스매체가 접속률 1위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일간베스트>와 같은 가십성 악성루머 사이트보다 접속률이 낮은 뉴스매체가 훨씬 더 많다. 인터넷 뉴스업체가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지난 십년 동안 인터넷 뉴스매체는 종이신문의 온라인 판에 불과했다. 한국 저널리즘의 중심이자 대중성을 확보한 신문사들은 종이신문에 게재를 한, 혹은 게재가 될 뉴스를 마치 라이브러리 구축이나 하려는 듯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물론 『오마이뉴스』와 『딴지일보』처럼 순수한 온라인 뉴스매체도 있었으나, 이들 매체가 과연 대중적인 저널리즘을 행사한 적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렇듯 기존의 뉴스매체와 차별성을 갖지 못한 인터넷 뉴스매체를 ‘웹 저널리즘 1.0’이라고 명명한다면 2010년 이후부터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모바일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를 추구하는 새로운 인터넷 뉴스매체를 ‘웹 저널리즘 2.0’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웹 저널리즘 2.0은 먼저 온라인 뉴스 플랫폼을 오프라인과 다른 형태로 구축하고자 했다. 최근에 『한국일보』 웹사이트가 홈페이지를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리스트 방식의 뉴스 나열에서 플랫디자인 방식의 간결한 뉴스 보기로 개편한 것은 PC 독자뿐만 아니라 모바일 독자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디지털 퍼스트 전략 중 하나다. 또한 『시사in』의 경우 웹사이트 관리저작 도구인 워드프레스(WordPress)로 웹 사이트를 구축하여 온라인에서 뉴스콘텐츠 관리와 편집, 그리고 업데이트를 기자가 직접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디지털 네이티브를 지닌 저널리스트를 양성하고 있다. 한편 뉴스매체 전용 앱app을 개발하여 기존의 PC 독자를 위한 웹web과 다른 모바일 뉴스 플랫폼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기술적 변화가 웹 저널리즘 2.0의 중요한 전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터넷 뉴스의 홈 페이지 기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홈페이지’와 ‘웹사이트’는 인터넷 상에서 전혀 다른 개념이다. 웹사이트는 온라인 네트워크 서버에 하이퍼링크hyperlink가 된 정보를 저장해 놓은 가상적인 집합체를 뜻하고, 홈페이지는 그러한 웹사이트의 첫 화면intro page을 가리킨다. 한 권의 책에서 겉표지가 홈 페이지라면 책 한 권 전체가 웹 사이트에 해당한다. 보통 서점에서 책을 살 때 먼저 책의 겉표지를 확인하고 목차를 보고 그 다음 본문을 읽는 것이 현실공간에서 독서습관이라면 가상공간에서 독자들은 바로 콘텐츠를 클릭해서 보고 링크된 관련 정보를 클릭하거나 검색하여 다른 콘텐츠를 읽어나간다. 가상공간을 탐색하는 독자에게 홈페이지는 그저 수많은 웹페이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 더구나 요즘처럼 포털과 SNS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점점 더 고착화된다면 인터넷 뉴스매체의 홈페이지는 더욱 그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귀찮게 뉴스사이트를 하나하나 즐겨찾기해서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개별 뉴스기사를 클릭해서 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정된 대문 같은 뉴스사이트 홈페이지 대신 사람들은 각자의 출입문으로 뉴스사이트를 드나든다. 뉴스룸에서 하루 종일 고민하여 1면 보도를 헤드라인으로 홈 페이지에다 구성해봤자 온라인 독자들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각자의 취향에 맞거나 관심이 가는 개별 뉴스기사만 보고 나올 뿐이다. 심지어 자기가 들어간 집이 누구네 집인지조차 모른 채. 그런데 이러한 기술적 문제 말고도 더 중요한 문제가 웹 저널리즘 2.0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인터넷 뉴스 콘텐츠가 종이신문의 기사와 어떻게 다른지, 아니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가 문제다.

 

       

웹 저널리즘이 정보혁명의 기수가 되려면

 

2012년 12월 『뉴욕타임스』는 ‘Snow Fall’이란 제목의 디지털스토리텔링 뉴스콘텐츠를 전 세계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미국 워싱턴 주 캐스케이드 산맥에서 일어난 눈사태를 멀티미디어 기술을 이용하여 생생하고 자세하게 재현한 환상적인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의 진수였다. 총 1만 7,000자의 텍스트와 66개의 모션 그래픽 등 비주얼 데이터를 결합한 새로운 포맷으로 태블릿 PC에서도 연동되는 디지털 퍼스트 뉴스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종이신문은 보통 700~1,100자가 기사 한 편의 최적화된 분량인 걸 감안하면 ‘Snow Fall’은 장편 저널리즘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2013년 말부터 최근까지 ‘Snow Fall’과 같은 디지털스토리텔링 뉴스콘텐츠가 적지 않게 만들어졌다. 올해 가장 큰 사건인 세월호 참사를 집중적으로 탐사보도 한 『한겨레신문』의 ‘사월, 哀’와 『중앙일보』의 ‘그 배 세월호, 100일의 기록’은 ‘Snow Fall’에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디지털 퍼스트를 보여준 웹 저널리즘 2.0의 모습이었다. 이들 디지털스토리텔링 뉴스콘텐츠는 마치 기사 한 편이 하나의 웹사이트에 맞먹을 정도로 데이터 저널리즘의 환상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막대한 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뉴스콘텐츠가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닌 수월하고 지속가능한 뉴스콘텐츠로서 웹 저널리즘 2.0의 대표적 모델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정도의 품질을 갖춘 뉴스콘텐츠를 최소한 한 달에 한 편씩만 꾸준히 제작해도 인터넷 뉴스매체의 디지털 퍼스트는 물론이고 웹 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벌어지는 사건을 현상적으로 기사화하는 사건보도를 제대로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에서 시간과 인력의 막대한 소모가 요구되는 이와 같은 뉴스콘텐츠를 제작하려면 뉴스제작도구나 템플릿이 효율적으로 개발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현실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더구나 온라인 독자들의 반응조차 미지근하다. 이런 뉴스콘텐츠에 그나마 관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라도 내는 것은 관련 업종 사람이 거의 전부다. 소비자들마저 외면해버린 비싼 명품은 결국 박물관에나 소장될 유물이 되고야 만다.

웹 저널리즘 2.0이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다. 기술적 완성도나 편리함 역시 조금씩 더 보완해서 언젠가는 내비게이션, 그래픽, 디자인, 이미지와 같은 멀티미디어적 요소가 완벽한 조합을 이룰 날도 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웹 저널리즘이 변해야 하고 또 변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일들이 있다. 온라인 독자들의 참여를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일이다. 그냥 덧글 몇 개 달거나 독자의견란 보내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뉴스콘텐츠 전부를 기자 혼자서 모두 작성할 필요가 있을까? 다수의 대중이 휴대용 디지털미디어를 소유하고 20~30대 대졸자 비율이 OECD 국가 1위인 63%(2011년 기준)나 되는 사회에서 뉴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뉴스콘텐츠 생산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 웹 저널리즘 2.0의 핵심이 아닐까? 『오마이뉴스』 같은 시민기자도 필요하지만 주류 언론매체가 운영하는 권위 있는 웹 저널리즘이 스스로 폐쇄적인 권위의식을 버려야 한다. 기사 전체를 독자들에게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 전문적인 기자가 기사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만 하면 그 기사에 참여하고 싶은 독자가 내용을 덧붙여 기사를 완성시킬 수도 있다. 설사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은가? 사건과 사고,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상은 때론 반복되고 계속되는 일이 허다하다. 과거형 뉴스는 도서관 기록물로 저장되지만 현재형 뉴스는 계속해서 광장으로 호출될 것이다. 뉴스콘텐츠 생산의 개방화는 독자가 매체를 더 적극적으로 끌어당겨 인터넷 뉴스매체가 pull media로 작동하는 데 역동성을 제공할 것이다. 자신이 직접 뉴스 생산에 참여했다면 해당 뉴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에게 해당 뉴스를 소개할 가능성이 높다. 관심과 참여, 지속과 연대는 모든 저널리스트들이 대중독자들에게 바래왔던 덕목이다. 웹 저널리즘 2.0이 지금 바로 해야 할,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뉴스콘텐츠 생산의 개방화다. 이게 이루어진다면 웹 저널리즘은 정보혁명의 기수가 되지 않을까.




#저자 약력
金優泌 1974년 전남 광주 생, 대중문화비평가, 제6회 플랫폼 문화비평상 미디어분야 당선자, redzone404@naver.com

글쓴이 : 김우필
작성일 : 201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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