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의 작품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는 남성과 여성을 그린 그림이다. 오이디푸스는 가냘프고 아름다운 청년이지만, 스핑크스는 미인의 얼굴을 한 괴수이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이디푸스 신화와 차이를 보이는데, 에로틱하면서 음산한 느낌이 상당히 독특하다. 금방 흘러내릴 듯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오이디푸스의 옷과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밝은 피부색상 그리고 남녀의 밀착된 구도가 성적 긴장감을 유도한다. 그뿐이 아니다. 독수리의 날개와 사자의 몸을 한 여성의 몸, 먹구름 낀 하늘과 잿빛 식물, 헛딛으면 넘어질 듯이 위태로운 깊은 돌산이라는 공간, 그림 하단에 손과 발로 표현된 도전자의 시체는 음산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동시에 발산하고 있다.

신화 속에서 스핑크스는 테베에 숨어서 여행자를 기다리다가 수수께끼를 내어 답을 맞추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잡아먹어 버리는 괴수였다. 코린트에서 떠나 여행 중이던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와 맞닥뜨리게 되어 그에게 도전을 받는다. "아침에는 네 개의 다리로 걷고 낮에는 다리가 두 개가 되고 밤에는 다리가 세 개로 변하는 생물은 무엇인가?" 오이디푸스는 답을 하는 데 성공했고, 스핑크스는 정답을 듣자마자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었다. 흥미로운 점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의 적대관계와는 다르게 이 그림에서는 섹슈얼리티를 부여했다. 즉, 스핑크스가 마치 오이디푸스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팜므파탈’처럼 표현된 것이다. 이에 반하여 오이디푸스는 굳은 표정으로 스핑크스와 눈을 맞추고 있다. 마치 스핑크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굳은 결심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이디푸스의 몸은 건강한 남성형의 몸이라기보다는 다소 여성적이다. 여성 못지않은 매끄럽고 환한 피부와 근육이 없는 가녀린 몸, 작은 어깨가 그렇다. 다소 관념적인 표현도 눈에 띈다. 마치 공연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이 빛을 강하게 비추어 색상의 대비가 심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스핑크스의 몸은 각각의 구성요소를 붙여넣기를 한 듯 작위적이고 경직되었다. 머리카락과 털들은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결결이 살아있지 않으며 전체적인 양감만이 눈에 띈다. 꿈과 신화 속 이미지가 실현된 듯하다.

이것이 단지 신화 속 이야기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꿈이라면, 스핑크스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스핑크스는 적극적인 포즈를 취한 데에 반하여 오이디푸스는 한 발을 뒤로 뺀 수동적인 포즈다. 꿈속에서 성적인 관계를 유도하는 아름다운 괴물인 몽마(The Nightmare)가 연상된다. 여성형 몽마인 서큐버스(Succubus)는 남성의 꿈속에서는 남성을 유혹하여 정기를 빼앗는 괴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신화 속에서 다루는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의 관계는 대립과 투쟁의 관계이다. 하지만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에서는 그 관계에 섹슈얼리티를 덧 씌었다. 모로는 단지 신화를 재현한 것만이 아니라, 오이디푸스에 자신을 투사하여 성적 판타지를 구현한 셈이다.

<올드보이>

2003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 비 오던 어느 날, 오대수(최민식)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납치되어 15년간 사설감옥에 감금된다. 다시 풀려난 오대수는 복수심에 불타게 되고 ‘누가’, ‘왜’ 그랬는지 추적한다. 오대수는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미도(강혜정)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우진(유지태)이 자신을 가두었음을 알게 된다. 오대수는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그는 자신이 전학 가기 전 이우진과 그의 친누나에 대한 비밀을 말했기 때문에 이우진의 누나가 투신자살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고, 이우진을 찾아간다. 이우진은 그에게 같은 방법으로 복수하기 위해 그를 풀어준 진실을 알리고 미도에게도 알리려 한다. 그러자 오대수는 스스로 혀를 자르며 속죄하고 복수를 마친 이우진은 자살한다. 그 후 오대수는 기억을 지우고 미도와 재회한다.

<올드보이>는 그리스 비극 중 하나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재각색 하였다. 영화 속의 다양한 내러티브들이 비극 작품의 서사와 닮아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어머니를 범하고 아버지를 죽인 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스스로 단죄를 내리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역시 오이디푸스에 준하는 오대수라는 인물이 “왜 자신이 감금되어야 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복수하기 위한 과정을 담는다.

영화나 비극작품을 관통하는 소재는 단연 ‘근친상간’이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어머니와 오이디푸스와의 관계가 근친상간으로 등장했다면, 영화에서는 두 가지의 근친상간이 등장한다. 오이디푸스에 준하는 주인공 오대수와 미도의 사랑과 이수아, 이우진의 사랑이다. 오대수와 미도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연인 사이다. 이수아와 이우진은 남매 관계에 있지만, 영화 속 코드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근친상간을 은유하고 있다. 이수아의 젖가슴을 빠는 이우진의 모습은 구강기의 아이를 연상시키다. 그에게 젖을 물린 이수아의 모습은 시종일관 반사판을 덧댄 듯한 뽀얀 시각적 효과가 돋보이는데, 마치 동정녀 마리아 혹은 어머니가 떠오르는 연출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또 다른 오이디푸스인 이우진의 근친상간의 대상, 이수아는 이오카스테에 준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쟁점은 오대수와 이우진의 관계이다. 오대수와 이우진은 누군가 죽지 않으면 죽는 적대․대립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유지태가 연기한 이우진이라는 인물은 오이디푸스적인 면모를 보이는 동시에 스핑크스의 역할을 한다. 그가 오이디푸스인 오대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살인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대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자이지만, 대칭적으로 이우진은 질문을 던지는 자이자 심판자이다. 그의 최후 역시 스핑크스와 같다. 오대수가 모든 진실에 이르러도 그는 총을 쏘지 않고, 스핑크스가 절벽에서 몸을 던진 것처럼 자살한다. 과거 연인이 자살했던 다리에서의 기억과 현재 그가 있는 엘리베이터 신이 교차 편집되면서 두 공간이 사실은 동일한 맥락 하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우진의 자아는 이미 그 당시에 연인과 함께 다리 밑으로 뛰어든 셈이다.

그런데 그는 왜 오대수를 심판하지 않았을까? 그는 알고 있었다. 오대수가 자신의 데칼코마니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연민했다. 혀를 자르고 필사적으로 웅얼거리는 오대수를 내려다보는 이우진의 복잡한 미소가 클로즈업된다. 자신의 연인을 위해 개처럼 행동하는 비참한 모습에 비웃음을 날리면서도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처럼 무언가를 확인했던 것이다. 분열된 자아, 이미 개(괴물)가 된 자신의 모습을.

스핑크스가 말하기를 인간은 아침에는 네 개의 다리로 걷고 낮에는 다리가 두 개가 되고 밤에는 다리가 세 개로 변하는 생물이다.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오대수는 이상하게도 순식간에 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미도의 모습에 비해 하얗게 머리와 눈썹이 센 모습이 마치 노인 같다. 마지막 신으로부터 전체 서사를 거꾸로 반추해보았을 때, 스핑크스의 “인간”에 대한 거대한 물음(아이-청년-노인)을 연상케 한다. 이우진이 이수아의 가슴을 빨던 모습에서 구강기 아이의 모습을, 50대의 몸으로 깡패들을 때려 부수는 괴력을 지닌 오대수와 시간이 멈춘 이우진의 모습에서 청년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오대수는 아버지의 위치를 점한다. 이우진의 어머니이자 이오카스테에 준하는 이수아를 임신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청년의 모습을 한 이우진에게 아버지가 있다면 그의 연령대일 것이다. 여전히 자신의 이오카스테를 연모하는 이우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오염과 청결에 대한 강박증이 유아성욕 혹은 유아신경증적으로도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우진이 결국 오대수의 남근에 준하는 혀를 잘라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즉, 그는 결국 아버지의 질서인 상징계로 편입되지 않고 상상계에 머물게 된다. 아이가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에 환호하듯, 그는 분열된 자아(오대수)를 본다. 그는 오대수를 통해 자아를 자각하지만, 거울은 유리일 뿐이다. 상상계적 동일시의 과정에서 이미지의 타자성과 동일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홀로 설 수 없는 아이는 영원히 어머니의 품에 안긴다.

따라서 이우진과 오대수는 이중의 상반된 존재론적 지위를 갖는다. 둘은 투쟁과 갈등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통해 자아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우진에게 오대수는 복수의 대상이자 분열된 자아인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했다.

오이디푸스, 이중의 존재론적 지위

영화 <올드보이>와 귀스타브 모로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는 모두 그리스 비극인 『오이디푸스 왕』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또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와의 관계가 주요 쟁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와의 관계에 있어서 두 작품은 차이를 보인다. 모로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에서 스핑크스는 남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치명적인 여성이며 오이디푸스는 그녀의 시험에 든 남성이다. 그들의 이 구도가 작품 전체에 성적 긴장감과 신선함을 부여하고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는 이와 다르다. 오이디푸스에 준하는 오대수는 시험받는 자이면서 이우진의 아버지에 준하는 위치를 점하며 그의 분열된 자아이다. 또한 이우진은 스핑크스(질문하는 자)이자 심판자인 동시에 오대수에게 양가감정을 느끼는 오이디푸스이다. 둘은 투쟁과 갈등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이중의 존재론적 지위를 가졌다. 둘의 관계는 영화를 단순한 액션치정극이 아닌 체액에 젖은 뜨거운 드라마로 승격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