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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상식의 정치학
통권 : 55 / 년월 : 2016년 1,2월 / 조회수 : 784

시상식의 정치학

 

김대현

 

대상에 공동이 어디 있어? 이게 개근상이야? 선행상이야? (중략) 장난해? 내가 바보야? 시청자가 바보야? 신들린 연기가 어쩌고 난리 난 추현우한테 주자니 100회나 계약 남은 오승아가 지랄을 하겠고, 연기력 논란만 일취월장하는 오승아한테 주자니 시청자가 지랄을 하겠고. 결국 나눠 먹고 떨어져라, 이거 아니야?

- SBS 드라마 <온에어>(2008) 중 오승아(김하늘 분)의 대사

 

 

반복

연말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번화가에 울리는 캐럴이나, 수첩 가득한 송년 모임 일정들은 확실히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연말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것은 매년 같은 시기에 편성되는 방송사의 시상식들이다. 달리 생각하면 연말이란 한 해를 완성하는 최종장이기 때문이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을 정리하고 한 해를 결산하고 싶은 건 아마도 그 완성을 견고하게 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시청자들은 평소 함께 있는 것을 보기 힘든 스타들이 지난 1년 동안 자신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에 대해 평가를 받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보며 한 해가 완전하게 마무리되고 있음을 체감한다.

주의할 것은 시상식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들이 스타들의 모습에 열광해서만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시상식은 축제에 참가한 스타들만이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라 한 해 동안 스타의 모습을 응원하거나 비판하며 꾸준히 지켜봐온 시청자들의 안목 또한 함께 평가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평가의 대상은 스타들만이 아닌 것이다. 시청자들은 스타의 연기력과 프로그램의 작품성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이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유권해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화면에 시선을 집중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집중은 곧 실망감으로 바뀐다. 미래의 스타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신인 연기자는 여러 명의 신인상 수상자들 사이에서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한다. 흥미롭게 보았던 예능 프로그램은 너무나 세분화된 각 분야의 수상작들 사이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대상 후보자가 발표된 후 자신이 지지하던 스타의 수상 소식에 환호를 지르던 사람들은 곧이어 다른 이름이 수상자로 호명되는 것에 깊은 한숨을 내쉰다. 자신의 감식안을 인정받을 기회를 놓친 시청자들은 해마다 반복되는 공동수상, 나눠 갖기 논란 등에 대해 연말 시상식 무용론과 폐지론을 펼치며 방송사를 비판한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시상식은 매해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가? 혹시 시청자와 소통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그건 아닐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이 의견으로 폭주하는 것과 여론을 받아들인 출연자들이 즉각적으로 사과를 하는 모습이나, 아예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이 의견을 교환하며 그 의견을 실시간으로 방송의 서사에 반영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시청자의 의견은 제작진에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혹시 시상식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일까? 그것 또한 이유는 아니다. 청년들의 취업난이 가중되는 시기에 모두가 선망하는 이른바 언론고시를 통과한 방송국 직원들이 모두 함께 그렇게까지 미숙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엔 어렵다. 그렇다면 이유는 한 가지다. 동일한 사항과 동일한 비판이 해마다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 상황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강제가 있다는 것이다.

 

 

시상식의 정치학

 

사실 방송사 시상식을 공정하게 진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모든 사람을 납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대체로 이해될 수 있는 명시적인 기준, 예컨대 시청자들의 선호도를 나타내는 시청률이나 방송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의 작품성 평가, 또는 프로그램의 인기와 무관하게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감안하여 평가를 내린다면 약간의 잡음이 있다하더라도 그럭저럭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다. 어쨌든 판단의 기준은 주어졌고 자료에 대한 해석에서 발생하는 차이는 아주 엉뚱한 결과가 아니라면 개인의 취향 차이로 살짝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사 시상식을 떠들썩하게 하는 문제는 이러한 명시적인 기준이 아니라 외부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기준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보이지 않는 기준 또한 외부로 표시하면 간단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주문이다. 어쨌든 이것은 사회의 곳곳에서 실질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언급될 수 없으며 결코 언급되어서도 안 되는 금기가 되는 기준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각 방송사를 넘나들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 예능인을 생각해보자(또는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다른 분야의 스타를 생각해도 무방하다). 평상시라면 그는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귀한 손님이지만 시상식에서는 오히려 각 방송사의 고민거리가 된다. 누군가에게 대상 아래 등급인 최우수상은 대단한 성과이지만 이전에 대상을 여러 번 수상한 사람에게 최우수상은 오히려 불명예스런 일이다. 그가 지난 1년간 어떤 활약을 했는가와 무관하게 (또는 그가 최우수상에 해당하는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최우수상 또는 그 이하 위격의 상을 받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그는 시상식 이전부터 그 이하의 상을 수상하는 사람들과 애초에 격이 다른 것이다. 상의 기준이 뒤틀리는 것은 이 지점이다. 결국 그의 활약과 무관하게 그가 받을 수 있는 상은 (설령 그것이 공동수상이라 할지라도) 오로지 대상밖에 없다. 상의 권위가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수상자의 권위에 좌우되는 것이다.

 

상의 권위가 수상자의 권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개인의 역량뿐만은 아니다. 이는 방송가에서 오랜 기간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각 직역의 위계질서에도 영향을 받는다.1) 예컨대 희극인들이 그 분야에 10여 년에 걸쳐 종사한 후에야 간신히 받을 수 있는 최우수상을, 인기 영화배우나 아이돌들은 예능 프로그램에 잠깐 걸치기 출연만으로도 간단히 받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동일한 위격의 상이라 해도 받는 사람의 직역에 따라 그 권위가 전혀 달라진다는 말이다. 감격에 겨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과, 미소와 함께 가벼운 멘트로 수상소감이 갈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무리 부인한다 하더라도 직업뿐 아니라 직역에도 귀천이 있는 것이다.

 

신인상도 마찬가지다. 방송사의 신인상을 수상하는 스타들이 오로지 개인의 역량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소박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뒤에는 수많은 스타들이 소속되어 있는 대형기획사들이 포진해 있다. 기획사들은 자신들이 키운 신인이 다른 기획사의 신인들에게 밀리지 않도록 자신들의 영향력을 방송국에 행사한다. 방송 출연 여부에서부터 프로그램 서사의 진행방향까지 신인들은 기획사들이 만든 왕도를 따라 걷는다. 방송국은 그들이 상을 수상할 역량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그들을 지지하는 기획사의 역량에 상을 부여한다.

요컨대 방송국이 행하는 연말 시상식에 논란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은 수상의 기준이 외부로 표시되는 명확한 기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아니 보여서는 안 되는 역학관계로 은밀하게 작동하는 지점에 있는 것이다.

 

 

대상의 평가와 평가의 대상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그렇다면 시상식의 정치학은 도대체 왜 발동하는가? 수상자 간의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명백한 기준에 의해 수상 여부를 심사한다면 논란이 없는 깔끔한 시상식과 함께 방송국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유를 규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것은 방송사 시상식이라는 것이 여타 다른 갈래의 시상식들, 예컨대 영화, 예술, 스포츠 분야 등의 시상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대상들 중에서 어떤 대상을 선택하거나 배제하여 상을 수여한다는 것은 일종의 비평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비평은 언제나 자신이 평가하는 대상과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방송사 시상식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영화에 대해 시상하는 것은 영화가 되지 않는다. 프로야구 시즌이 종료한 후 벌어지는 시상식이 야구경기가 아닌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말에 벌어지는 방송사 시상식은 1년 동안 자사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비평행위임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시상식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연말 프로그램의 하나이다. 다시 말해 방송사 시상식은 연기자와 프로그램이라는 대상을 평가하는 비평행위이지만 이와 함께 시청률과 외부의 평판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평가의 대상이라는 이중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연말에 벌어지는 방송국 시상식은 여타의 프로그램들과 달리 각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집중하여 자신들의 사세를 과시하는 초대형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시상식의 정치학이 발동하는 이유이다. 영화계에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대종상 시상식에서 벌어진 촌극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행사의 권위를 보증하는 것은 행사의 이름이 아니라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와 격이다. 시상식에 출석하는 자에게만 상을 수여한다는 것은 이런 생각에서 기인한다. 방송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시상식이 경쟁사에 비해 초라해지지 않기 위한 노력의 결과는 수상자의 확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시상식에 출석하여 타인의 수상을 축하하는 것을 근본적인 목적으로 삼는 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가 대상을 받을만한 활약을 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으로나마) 대상을 수여하는 것이나. 평소에 방송에서 보기 힘든 영화배우들에게 평가기준이 애매한 상들을 남발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평가의 냉정함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차후 방송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은 모험을 하기보다는 보험을 드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게다가 스타들의 플랫폼을 지상파 방송사들이 과점하고 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한류로 인하여 해외 방송사들과 대형 유선사업자들과 미디어 권력을 분배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들이 새로운 신인을 발굴하여 육성하는 것보다, 기획사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신인들을 모두 모아 한꺼번에 신인상을 수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선택하고 배제하여 특정 기획사의 서운함을 사는 것보다 상의 권위를 잃더라도 대형 기획사와의 관계를 도모하는 것이 향후 방송사의 행보에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시상식의 미래

오래 전 한비자는 상이 권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상이 후하고 믿음이 있어 백성이 상만큼 이로운 것이 없도록 여기게 해야 한다고 했다. 벌의 혹독함과 함께 상의 수여에 기준이 없으면서 그 보상이 후하지 않다면 사람들이 위정자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방송국이 행하는 시상식이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시상식의 정치학이 작동한다 하더라도 애초에 상의 권위란 희소할수록 가치가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상을 받는 것이라면 아무도 상을 받지 않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방송사 시상식이 나아갈 방향은 명확하다. 순간의 이익을 위해 보이지 않는 기준에 따라 상을 수여하는 것보다, 단기적으로는 손실로 작용할 수 있더라도 명백하고 엄정한 기준을 세워 상의 공정성과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연말 시상식이 다시 시청자와 출연자. 그리고 방송사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가 될 수 있을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1) 각 직역의 위계질서를 구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일부 아웃라이어들을 제외한다면 어느 직역이 다른 직역에 비교적 용이하게 호환될 수 있으면 상위직역이고, 그 반대라면 하위직역이다. 예컨대 영화배우는 희극프로그램에 손쉽게 출연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어려운 일이다. 영화배우가 텔레비전 드라마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나 영화제 시상식에서 가수들의 축하공연에 배우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의식의 소산일 것이다.




#저자 약력
김대현(金大賢). 1975년 충남 논산 생. 비평가, 소설가.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불온한 제국』이 있다. nobodaddy@naver.com
글쓴이 : 김대현
작성일 : 20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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