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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聖스러운 아우라의 俗화 과정
통권 : 55 / 년월 : 2016년 1,2월 / 조회수 : 1232
-미술 ‘상’, Art Prize, Award, 혹은 Winner이라는 ‘제도’에 관하여-

스러운 아우라의 화 과정

-미술 ’, Art Prize, Award, 혹은 Winner이라는 제도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미술상을 만들고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하는 시상식이라는 제도가 매우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은 사랑과 같습니다. 영감을 줄 수 있고, 사랑처럼 설명하기 힘들고, 사랑처럼 격노하게 합니다. 우리는 미술 없인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 명의 작가가 다른 작가들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에 뭔가 할 이야기가 있고, 이를 말할 용기가 있는 작가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2001터너 상Turner Prize’ 시상자인 마돈나의 연설 중에서

 

우선 지난 2015, 도저히 그 수를 다 헤아리기 힘든, 필경 60여 개가 넘을 미술상(표 참조)을 수상하신 많은 작가 분들께 심심한 축하를 보낸다. 미술상에 관한 글을 쓰려고 보니 몇몇 미술상의 명칭만 떠오를 뿐 정확한 현황이나 그 속내가 잡히질 않았다. 해서 일단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미술상’, ‘미술상 수상자’, ‘미술 수상 제도등의 검색어를 입력하고 나서 열리는 창을 보며 적이 놀랐다. 첫 항목으로 화상畫商’, 아트 딜러에 대한 설명들이 나오고, 그 다음으로 <성남미술상>, <송혜수미술상>, <양현미술상> 등 몇 개의 목록이 보인다. 언론사 뉴스로는 대구의 <이인성미술상> 수상자 발표 기사, 서울 소재 한 대학의 미술상 공모 기사 정도가 첫 화면에 노출될 뿐이다. 그러고는 바로 각종 영화제의 미술상 부문이나, 방송 미술상 분야의 기사들이 줄을 잇는다. 알다시피 인터넷 검색 결과 순위란 사람들의 클릭 수(관심도)에 따른다. 다시 말해 미술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 보아도 되겠다.

일례로 2000년 대구광역시가 대구 출신 작가 이인성(1912~1950)50주기 기념해 제정한 <이인성미술상>의 초대 수상자로 선정된 서용선은 공모전에 출품해 상을 받는 데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큰 상을 받기에는 적격자가 아니다라며 수상을 거부했다.1) 하지만 이 일은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공공기관, 언론기관, 기업, 재단기념사업회, 관련 단체, 미술관, 화랑, 개인 등이 주관하는 우리나라 미술상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중매체나 일반 대중들에게 주목 받지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수상자 선택이 공정했는지, 선정 기준은 적합한 것인지 등에 대한 논쟁 역시 거의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는 듯하다.

 

1922년 6월 열린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를 단체로 관람하는 여학생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우리나라 미술상 현황

 

우리나라 미술 수상 제도의 기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총 23회에 걸쳐 개최한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선전鮮展)2)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18세기 프랑스의 르 살롱 Le Salon’을 본받아 1907년 관전(官展)문부성미술전람회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그대로 답습해서 만든 선전역시 공모전 형식의 관전이었다.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약칭 국전(國展)’ 역시 국가에서 시행한 공모전 형식의 수상제도였다. 국전은 일반 국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우리 미술계에서 지대한 권위와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관 주도의 미술계를 형성하였으나, 이와 동시에 운영의 보수성과 심사의 공정성 문제, 학연, 지연 등을 둘러싼 비판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3)

1981년 결국 국전이 폐지되고 그 다음해 <대한민국미술대전>이 생겼다. 한편 1970년 한국일보사가 개최한 <한국미술대상전>을 시작으로, 1978년에는 동아일보사의 <동아미술제>와 중앙일보사의 <중앙미술대전>이 개최되면서 본격적인 民展의 시대가 열렸다. 이 같은 민전이라는 장()은 당대 미술가들과 지망생들에게 작품 발표의 기회를 확대하고, 그들의 작업을 평가, 승인하는 통로가 되면서 미술계에서 영향력을 넓혀 나갔다. 1970년대 당시만 해도 공모전(국전)과 개인전이 유일한 작가 등용문이었으나 1980년대, 90년대에 들어서 세계적 추세와 마찬가지로 미술 관련 단체나 잡지사, 지역 미술관, 갤러리 등이 새로운 상을 제정하고, 작고작가의 유족이나 원로작가가 제정하는 미술상들이 급증했다. 2000년대가 되면 이 같은 미술상들에 기업들까지 메세나란 명분4)으로 미술상 제정에 나섰다.

현재 국내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미술상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올해의 작가상>, 프랑스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 문화재단이 주는 <에르메스재단 미술상Hermes Foundation Missulsang>을 비롯하여, 기업들이 문화재단을 통해 운영하는 <두산연강예술상>, <양현미술상>, <송은미술대상> 등이 있고, 광주비엔날레의 <Noon 예술상>, 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이중섭 미술상>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미술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우리나라 미술상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미미하며 <올해의 작가상><에르메스 미술상>, 그리고 기업이 주도하는 몇몇 미술상만이 시선을 모으는 실정이다.

 

 

이라는 제도의 권위와 문제점

 

수상하지 못할까 봐 안절부절못하던 게 지금도 생생해요. 그런데 제일 싫었던 건 수상 여부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던 제 모습이었어요. 머릿속 한쪽에선 상을 받기를 원한다고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소리치고, 갈등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어요. () 작가가 작품을 창조해 낸다면 심사위원들은 우승자를 창조해요.” 마틴 크리드(Martin Creed, 2001년 터너 상 수상 작가)5)

 

2005년 무렵 몇 년간 노벨문학상 시즌이 돌아오면 매스컴에서 한 원로시인의 수상을 점치는 기사들이 천연덕스럽게 등장하곤 했다. 해당 시인은 물론이고 관계자들의 인터뷰까지, 마치 며칠 굶은 사람이 남의 밥상 밑에서 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껄떡대고 침 흘리는 것 같은 인상이어서 보는 입장에서도 너무나 낯부끄러웠다. 그때 한 지인이 노벨문학상이 무슨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것인 줄 아나 봐?!”라고 일갈했다. 그렇다. 문학은 물론 미술과 같은 예술에 주어지는 상은 올림픽 기록경기에서 걸게 되는 메달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점은 새삼 부연할 필요도 없다.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예술에, 그것도 미술에 등수를 매겨 상을 준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매학기 강의에서 만나는 미술 전공 학생들을 볼 때마다 이르는 말이 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여러분에게 깊은 존경과 연민을 느낍니다.” ‘예술가의 재능을 타고났다’, 또는 미술(예술)을 업(운명)으로 느낀다는 것은 그저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존재는 평생 동안 끊임없이 자신과 대결하여 늘 새롭게 자신의 작업(작품)을 갱신해야만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아를 지닌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존재와도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표현 언어를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 외롭고 집요한 갈망 속에서 크고 작은 실패의 상처에 시달리는 삶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제 아무리 현대미술의 시대적 요구와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하더라도 작가 개개인이 당면한 창작의 기본 원리란 매한가지라 보는 까닭이다. 여전히 각각의 예술작품은 실험, 즉 예술의 실험이며, ‘각각의 예술작품은 누군가에 의해 삶 가운데 성취되는 미학적 활동의 대상으로서, 예술과 더불어 예술에 따른 삶의 가능성을 묻기 때문에 삶의 실험이기도 하다.6)

따라서 본래 위대한 예술작품과 작가의 가치는 그 자체로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지, 외부의 기준과 평가에 의한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르네 위그가 예술과 영혼에서 밝혔듯이 가치의 세계는 외적인 원천을 가진 경험이 아니라 순전히 내적인 경험에 의해서만 인지될 수 있다.” 또한 예술의 법칙이며 존재이유인 질(), 언어의 바탕인 물적 현실 속에 아무런 표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지극히 어렵고 순전히 정신적인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작품에 부여하는 외적 승인(approval)의 표식이자 경쟁적 스펙타클(competitive spectacle)로서, 이제는 굳건한 제도로 정착한 미술상이 난립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미술가가 미술작품을 창조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소용이나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 미술작품들은 미술의 여러 제도들(화랑이나 미술사, 미술출판, 박물관 등) 내로 순환하면서 비로소 현대세계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상대적으로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가 증폭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다양한 제도들에 의해 형성되고 정의된다. 제도는 사물들의 경계와 관행을 설정해 준다.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박이소 역, 현실문화연구, 2011, p.28.

 

진정한 예술가라면 상에 열광하지 않고 심지어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예술상이 발휘하는 권위적이고 집합적인 인정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더불어 공정성, 폐쇄성, 배타성, 지속성, 정체성 등에서 우려를 낳으면서도 현재 우리나라 미술판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기업 미술상들은 단순히 기업이 예술을 후원함으로써 기업의 평판을 제고하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을 브랜드라는 스펙타클로 포장하면서 동시에 예술로부터 그 아우라의 일부를 점유함과 동시에 예술적 가치와 상업적 가치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그 둘을 호환 가능한 하나의 패키지로 구성하며 미술 본연의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7) 여기에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전 시절부터의 고질적 병폐로 수상의 위계 체계와 그것을 조장하는 과도한 경력주의이다. ‘수상 경력이 추천작가 초대작가 제도로 이어지고, 또 다시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으로’8) 이어지면서 파벌을 형성하고, 속된 이해다툼의 장으로 기능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풍토에서 당연히 파생되는 심사위원과 수상자의 중복, 학연 지연을 둘러싼 심사 비리, 특정 장르의 쏠림 현상, 그리고 평자에 따라서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는 빈약한 작가층 역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다.

 

 

글을 맺으며

 

<올해의 작가상>이 벤치마킹하고 현대미술상의 대표적 모델인 영국의 터너 상(Turner Prize)1984년 첫 수상자를 발표했을 때부터 매번 논란이 될 만한(controversial)’ ‘도발적인(provocative)’ 같은 단어가 동원될 만큼 후보작이나 수상작이 일반인의 예상을 항상 뛰어넘는 비상한(unconventional)’ 작품들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곤 하였다. 그런 터너 상이 2015, 31년 역사 최초로 20대 건축가·디자이너 그룹 어셈블(Assemble)'폴리 포 어 플라이오버'(Folly for a Flyover)를 수상자로 선정해 신선한 화제를 낳았다.

사실 터너 상의 이런 변화는 이미 2012년부터 그 조짐을 보였으며, “일반 대중이 현대미술에 대한 분별력이 생기고 이해가 깊어지면서, 센세이셔널리즘으로 일관하며 노이즈 마케팅을 방불케 했던 1990년대와 2000년대와는 다른 전략적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동안 “‘현대미술의 대중화를 기치로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 속에서 아트스타를 탄생시킴으로써 승자독식시장의 논리를 강화시켜왔으나, 30대의 원숙기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대중적 감성을 담아내고 시대의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사회적 책임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자 모두를 위한 축제로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임근혜 영국통신원)

 

상이란 몇 번을 받아도, 어떻게 받아도 좋은 것이라고들 한다. 그래도 성스러운 아우라를 가진 예술이 이라는 세속화된 당의정을 뿌리치기 힘든 시대에 2006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과 공쿠르 문학상 수상자인 미국인 작가 조너선 리텔(39)의 입장9)은 한번쯤 새겨들을 만하다. 그 전에 어차피 미술상이라는 제도이자 명성과 권위를 생산하는 인정(인증) 형식을 생각할 때,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거부한 사르트르의 다음 발언 역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는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1964년이거나 그 후거나 나는 (노벨상 수상의) 영광에 응할 수 없고 응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 작가는 설령 그것이 가장 명예로운 방식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기관화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 인간과 문화는 기관의 간섭 없이 존재해야 합니다.”

 

미술상에 대한 빈약한 분석을 서둘러 마무리하면서 끝으로 간략하게 덧붙이자면, 기왕에 마련한 미술상이라는 장치가 어떻게 하면 미술계 바깥에서까지 관심과 애정을 받을 수 있게 만들 것인지, 어떤 기획으로 현대미술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힐 것인지 관련된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야 할 터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다양한 아트 플랫폼을 개발하고, ‘수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새로운 미술 언어를 가진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전 예술 자체를 중요시하는 행사에 참여하고 싶은 거지, 작가의 개인적 특성을 중요시하는 행사를 원한 게 아니에요. 전 계속해서 작가로 살아가고 싶어요. 갑자기 어떤 다른 게 되……. 그러니까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스타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아요.”

토마 압츠(Tomma Abts, 2006년 터너 상 수상 작가)10)

[] 국내 미술상 설립 현황

1

수상자 발표

연도

미술상

1948

서울시 문화상 미술 부문

1955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 부문

1969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미술 부문

1981

석남미술상

1984

선미술상

1987

김세중 조각상, 대한민국기독교미술상

1989

이중섭 미술상, 목양공예상, 부산청년미술상, 최영림 미술상

1990

김세중 청년조각상, 석주미술상, 김종영 조각상

1991

월전미술상, 토탈미술상, 가나미술상, 민족미술상, 충북청년미술상

1992

오지호 미술상, 동서미술상

1993

오늘의 미술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미술부문

1995

허백련 미술상, 모란미술대상

1997

모란조각대상, 이당미술상, 청작미술상

1999

이명동 사진상

2000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이인성 미술상

2001

송은미술대상, 하종현 미술상

2002

문신 미술상, 다음작가상, 윤명희 미술상, 동강사진상

2003

이동훈 미술상

2005

송혜수 미술상, 한미사진상

2006

포스코 스틸아트 어워드, 한국미술상

2008

양현미술상

2009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맥화랑미술상

2010

두산연강예술상 미술 부문, (Noon) 예술상(광주비엔날레),

일우사진상, 미래작가상, A3 아시아 현대미술상(Asia Art Award)

2011

일맥아트프라이즈, 김치현 청년미술상

2012

올해의 작가상(국립현대미술관), SIA 미디어아트 어워즈,

에트로미술상, 종근당 예술지상

2013

최민식 사진상

2014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SeMA하나 미디어아트어워드,

군산미술상, 황소연 미술상

[출처] 박지수, 한국 미술 수상제도 연구, 서울대 대학원 미술경영학 석사학위 논문, 2015. 8. pp. 51~52.

 

 

1) 김달진, 늘어나는 미술상, 그 실상과 허상, <코리아아트>, 20021,2월호. p.25.

2) 선전은 식민 문화정책의 굳건한 제도로서, ‘향토색鄕土色으로 대변되는 나약한 서정성을 주조로 하는 고질적인 아카데미즘의 온상으로서, 해방 이후 국전이라는 관전을 통해 환생하는 끈질긴 망령이다.

3) 이구열, 국전과 민전이 부각시킨 신예들, 사회와 역사, 통권 제89, 한국사회사학회, 2011, p.11.

4) 한스 하케(Hans Haacke)'메세나(Maecenas)'라는 용어가 기업들 스스로에게 이타주의라는 아우라를 부여하지만, 그보다는 스폰서(sponsoring)’라는 용어가 기업과 미술계의 자본교환을 더 정확히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5) 세라 손튼, 걸작의 뒷모습, 이대형·배수희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1.

6) 크리스토프 멘케, 예술의 힘, 신사빈 옮김, W미디어 , 2015., pp.96~97 참조.

7) 심보선, <예술상()과 예술장(): 기업 미술상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미술사학보38, 미술사학연구회 펴냄. 참조

8) 김복기, <중앙미술대전 30년의 궤적>, 2008.

9) 내 작품만큼 뛰어난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 문학상이라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문학상이 도대체 문학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10) 세라 손튼, 앞의 책, p.195




#저자 약력
李和英 1962년 서울 생. 미술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서대문문화원 사무국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강사.

rothko62@naver.com
글쓴이 : 이화영
작성일 : 20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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