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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종상, 유구한 논란의 역사와 불투명한 심사 시스템
통권 : 55 / 년월 : 2016년 1,2월 / 조회수 : 783

대종상, 유구한 논란의 역사와 불투명한 심사 시스템

 

박우성

 

 

1. 대종상, 자기부정의 촌극

대종상은 정부 주체의 영화상으로 1958년부터 문교부의 주도에 의해 시행되었다. 처음 명칭은 국산영화상이었다고 한다. 1961년부터 그 명칭을 대종상으로 바꾸고 19621회 시상식을 열었다. 이를 기준으로 올해 52회를 맞이한 셈이다. 8회와 9회 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영화 부문)으로 명칭이 잠시 바뀌긴 했지만 10회부터 다시 대종상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그 와중에 행사 주체가 영화진흥공사로 이전되고 25회부터 영화인협회가 참여하면서 공동 주최로 시행되었다. 처음에는 우수작품상, 감독상, 연기상, 촬영상, 음악상, 미술상, 각본상 등 18개 부문에 걸쳐 시상했고, 1973년의 12회부터 우수작품상 외에 최우수작품상과 우수반공영화상 등을 증설하여 22개 부문으로, 다시 1989년에는 공로상 등 4개 부문을 추가 26개 부문을 시상해왔다.

 

 

올해도 대종상 시상식이 열렸고 공중파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혹자는 이를 두고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희극인은 웃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웃기고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관객을 한 번 웃기기 위해 그들이 쏟는 노고를 생각한다면 저런 비유를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다.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는 배우들에게는 수상을 하지 않겠다는 대종상 집행위원장의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시상식 당일 수상자의 참석 여부가 예심과 본심의 절차로 취합된 수상 결과를 가볍게 제압하는 사태, 그러니까 배우의 사적 스케줄이 대종상의 공적 권위를 간단히 꺾어버리는 사태가, 그 누구도 아닌 대종상을 총괄하는 책임자의 입에서 누설된 것이다. 수상자의 참석 여부가 시상식의 성패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다 보니 나온 말실수 정도로 넘기기에는 발언의 강도가 지나치다. 대종상의 주체가 심사의 권위를 부정해버린 것이다. 이 황당한 자기부정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일이 터졌다. 배우, 감독, 제작진 가릴 것 없이 주요 수상자 대부분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참담한 생중계 현장을 여기서 굳이 반복 묘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종상을 비웃기 위해 <개그콘서트>를 끌어들이는 것은 <개그콘서트>에 대한 모독이다. 철저한 계산에 따라 잘 만들어진 촌극과 시대착오적인 자기부정의 촌극은 구분되어야 한다. 대종상은 누군가를 웃기려고 계산하거나 노력하지 않았다. 단지 대종상의 권위를 믿는 대중을 만만하고 웃긴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2. 논란의 유구한 역사

 

누군가는 대종상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논란 상황이 지겹기 때문이다. 주최 측은 영화제로 불리기를 원하는 것 같지만 사실 대종상은 영화제가 아니다. 사실 그것은 공중파의 연기대상처럼 연말 분위기에 편승한 보너스에 가깝다. 대종상도 그저 그 수준에서 가볍게 대하면 그만일지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바로 그랬기 때문에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논란마저도 망각된 채 무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장을 약간 보태 말하자면 그간 대종상은 매년 반복되는 논란과 새롭게 추가되는 논란의 각축장이었다. 더구나 그 논란의 역사에는 단지 한국영화계에서 상이라는 제도가 차지하는 질곡의 역사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한 국가의 태도, 반칙을 불사하는 영화계의 이권 다툼 등, 한국영화사의 질곡이 응축되어 있다.

 

주최 측은 그 동안 대종상이 한국 영화 제작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에 공헌해왔다고 주장하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서 좀 더 흥미롭게 자리를 잡은 것은 그것이 불러일으킨 논란의 역사일 것이다. 참석 여부에 따라 수상 결과를 바꾸겠다는 논란의 최선 버전 외에 황당한 논란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유구하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가며 이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영화인과 일반 관객들이 가장 의아해 하는 대목은 수상작인 <애니깽>이 여전히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고 있는 이유. 당시 <애니깽>을 관람한 영화인은 대종상 출품시한에 맞춰 서둘러 만든 탓인지 마무리 과정에서 허점이 많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1996102436회 대종상 시상식과 관련된 기사의 일부이다. 예심에서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으나 심사위원 9명으로 구성된 본심에서 <애니깽>으로 역전됐다는 점, 시상식 이후 <애니깽> 제작자의 불법 로비 정황이 드러나 대종상 관계자가 검찰에 소환되었다는 사실 등은 차치하자. 근본적으로 그것은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영화의 미학을 평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는 납득하기 힘들다. 심사를 맡은 소위 영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영화의 기본 원리인 편집의 미학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해버린 사태이기 때문이다.

 

1991315일 어느 신문에서도 대종상을 둘러싼 불협화음을 전하는 기사가 발견된다. “출품을 철회한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제작사인 서울필름과 한진 측은 공륜의 심의에서도 무수정 통과된 작품을 반정부, 반미로 규정, 작품상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참을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대종상은 영화진흥공사의 지원으로 치르기 때문에 압력이 없지 않을 수 없는 게 변수.” 수상자가 참석하지 않는 올해의 촌극은 이때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출품 자체가 철회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정부의 압박이 있었다. 반정부와 반미를 다룬 작품은 수상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대종상의 공식적인 심사 원칙에 단 한 번도 직시된 적 없다. 대종상 바깥의 국가권력의 편협한 이데올로기가 대종상 안의 자율적인 세부원칙을 뭉개버리는 상황은 독재정권 하에서 영화계가 처할 수밖에 없었던 비참한 일상이었다. 1919년 대종상에 그 불합리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던 것이다. 대종상은 상이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썼지만 실상 대중문화에 대한 국가의 직간접적인 간섭을 상징한다.

 

돈 줄을 쥔 정부가 심사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촌스러운 작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이는 그간의 악습이 둔탁한 방식으로 돌출된 상황 정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전에는 이보다 훨씬 더 세련된 방식의 개입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1975년 어느 신문은 대종상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최고 상에 걸려 있는 외화 수입 쿼터가 무려 2천만 원짜리 이권이라는 데서 영화업자들은 그것을 따기 위해 경쟁을 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으레 그 뒤에는 적지 않은 잡음과 시비가 일게 마련이었다. 심사위원들을 둘러싼 각종 뒷거래설을 비롯해 수상을 둘러싼 온갖 시비가 뒤따르지 않을 때가 거의 없었다.” 비유컨대 튀어나온 못을 강제로 박는 것보다 못 스스로가 들어가게끔 하는 방식, 즉 타율적인 강압보다는 자발적 동의를 조장하는 것이 훨씬 더 고단수의 지배 방식이다. 이 당시 영화계는 막대한 수입을 보장하는 외화 수입 쿼터를 따기 위해 정부의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이른바 어용영화를 자발적으로 생산했다. 영화 제작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간파한 정부가 열악한 영화제작 환경의 개선에 관심을 두기는커녕 도리어 미끼를 던져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시급한 영화인들이 국가의 시책을 홍보하는 영화를 자발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대종상은 자발적 동의의 달콤하면서도 처참한 유인책이었다.

 

공교롭게도 대종상이 논란거리가 되는 핵심 이유는 가장 오래된 기사에서 발견된다. 물론 그런 지적은 지금까지 수차례 반복해서 제기되어왔다. 중요한 것은 대종상 초창기 때부터 지적되었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 전혀 수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1965년 대종상과 관련된 기사의 일부이다. “심사 결과는 어느 때보다 권위를 상실한 것이란 소리를 들었다. 무엇보다 심사위원 구성에 있어서 불만이 많았다. 심사위원 가운데 단 한 사람의 영화전문가나 영화인이 끼여 있지 않았다.” 사실 대종상을 둘러싼 잡음 중 대부분은 공정성 시비이다. 심사위원의 전문성 문제는 부차적이다. 핵심은 심사과정의 불투명성, 정확히 말해 심사위원이 선정되는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이것이야말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결코 수정되지 않는 대종상 논란의 본질이다. 이를 보다 상세히 살피기 위해 49회 대종상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가 총 22개 부문 중 15개 부문을 수상한 사태의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3. 보수적 노욕이 점령한 심사과정

 

<광해>15관왕을 차지한 것 자체가 문제일 리 없다. 특정 영화가 상을 독식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한다면 주최 측이나 <광해>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다. 훌륭한 영화라면 충분히 독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달리하여 <광해>의 만듦새는 독식의 자격이 있는가? 하지만 이 질문 역시 핵심을 찌르지 못한다. 당시에 출품된 영화들 중 전문가나 대중 모두에게 골고루 지지받은 작품 목록에서 <광해>를 제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작품 평가의 수치화는 일정 부분 주관성이 가미될 수밖에 없고 심사위원 각자의 의견이 절대평가의 틀에서 우연히 일치해버린다면 15라는 숫자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항변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종상은 두 번의 심사과정을 거친다. 예심과 본심이 그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것은 절차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듯 보인다. 특히 <광해>가 독식했던 49회 때는 그간의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예심에 일반 관객의 참여를 적극 도모했다. 그 결과 평소 한국영화를 아끼는 일반 관객 50명이 개인 시간을 쪼개 출품작 모두를 감상하고 치열한 토론과 고심을 거쳐 본심으로 넘어갈 후보작들을 선정했다고 한다. 그렇게 넘어간 작품들을 대상으로 본심위원들 각자가 점수를 부여하고 그것의 합계가 곧 수상작으로 이어졌다. 이렇게만 따질 때 당시 <광해>의 싹쓸이는 상향식 시스템에 따른 투명한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이 지점에서부터 초창기 때부터 반복되어 온 심사위원 자격 논란이 끼어든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광해>에게 상을 안긴 심사위원 대부분의 연령대가 70세 이상의 고령이라는 것, 그 중 몇몇 원로 영화인은 독재 정권 하에서 반공영화를 찍기도 했던 구시대의 전형이라는 것, 뉴라이트 출신 심사위원 일색이라는 것, 요컨대 대종상은 보수 일색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수상작을 선정하는 과정과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광해>나 올해 <국제시장>에게 상을 안겨준 심사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그 상을 심사한 본심 위원들이 선정되는 과정의 불투명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보수 일색의 심사위원 선정은 누가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수상 결과는 간단한 검색만으로 쉽게 확인되지만 아무리 검색해도 찾을 수 없는 본심 심사위원들은 대체 누구인가?

 

나는 지금 고령의 영화인들에게 심사위원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영화인 중 일부라는 사실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 , 특정 세대의 특정 성향을 대표할 뿐이다. 그들의 자격은 ‘1/n’이다. 하지만 대종상은 그것을 곧장 ‘1’로 환원해버린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수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문제시 되는 대종상의 공정성 시비 기저에는 지엽적인 판단과 취향을 전체로 환원하고 둔갑시키는 반민주적이고 불공정한 시스템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예심에 참석한 일반관객의 선택, 수상작으로 결정된 작품과 배우와 제작진의 영광, 그것을 공중파를 통해서 지켜 본 시청자의 박수는 철저히 소외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상이란 말인가?

 

 

4. 대종상, 상이라는 제도의 역설적인 바로미터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상은 불가능하다. 영화는 평가의 대상이지만 그 평가는 절대적이지 않다. 평가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수상 결과, 평가 주체의 권위, 수상 결과에 대한 대중의 동의 여부는 부차적이다. 개인의 호불호에 위배되기 때문에 수상 결과에 불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행사 주체 외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때, 영화의 만듦새보다는 이권 다툼이 먼저일 때, 심사과정이 불투명할 때 논란이 발생한다. 상의 권위는 심사하는 과정의 투명한 절차에서 형성된다. 당연히 그 절차에는 영화라는 매체의 핵심적인 속성에 기반을 둔 전문가적 질문과 토론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불어 특정 영화제의 뚜렷한 개성이 전통으로 자리를 잡아 그것이 대중들에게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 전제되지 있지 않는 상은 사실상 그 존재 의미가 미약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글은 한국영화계에서 상이라는 제도의 위상과 의미를 되새기는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하지만 나는 논의의 폭을 대종상에만 제한했다. 한국영화계에는 여러 영화상이 존재한다. 연말이면 경쟁하듯 쏟아지는 수상 결과는 행사 주체의 개성과 그것에 호응하는 관객의 취향을 반영하며 반향을 일으킨다. 수상 결과를 통해 대중은 자신의 영화 감식안을 확인하거나, 영화미학의 일면을 보듬거나, 자신이 사랑하는 스타의 수상에 박수를 보내거나, 관람 시기를 놓쳤지만 추후 반드시 봐야 할 영화의 목록을 작성한다. 활용하기에 따라 보너스 같은 상이라는 제도는 제법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한국영화계는 제대로 된 상을 가지지 못했다. 물론 대종상 외의 행사 주체가 이 말을 듣는다면 서운할 것이다. 그것과는 달리 투명한 심사시스템을 확보해 나름의 합리적인 수상결과를 내놓는다고 평가받는 상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종상을 중심에 놓고 논의를 진행한 것은 대종상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여타의 상들 역시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정 부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유구한 논란의 역사를 이어온 대종상이 그 불투명한 시스템의 대표적인 사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국영화계에서 상이라는 제도가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된 역설적인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내년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종상은 진행될 것이다. 현재와 같은 불투명한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그 존재 의미는 딱 하나일 것이다. 다른 상들이 그것과 반대로 나아가게 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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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위크 스태프평론가
글쓴이 : 박우성
작성일 : 20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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